[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Ⅰ대구경북 소멸보고서] 베트남과 '운명 공동체' 꿈꾸는 봉화군

  • 오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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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13 20:01  |  수정 2023-11-09 15:22  |  발행일 2023-08-14 제4면
봉화군, 국내 최초 베트남 타운 조성 추진
베트남 국가주석에 건의, 지난 6월 용역
봉화 창평리 '충효당' 베트남 이민자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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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 있는 충효당(忠孝堂)은 한 베트남 리(LY) 왕조(1009~1225)의 국내 유적지이자 국내 화산 이 씨의 집성촌이다. 오주석 기자
경북도 최북단에 있는 봉화·영양·청송(일명 B·Y·C) 군민들의 평균 연령은 57.2세로 경북 평균보다 10살가량 많다. 청년들이 농촌을 등지고 도시로 떠나면서 마을 곳곳엔 노인들만 가득하다. 주변이 온통 산과 밭으로 둘러싸인 개발제한 구역이라 변변한 사업체나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 지자체가 돌파구로 삼은 것은 외국인이었다. 외국인을 적극 수용해 침체에 빠진 지역 경제 활성화를 노리고 있다.


봉화군은 베트남 사람들과 '운명 공동체'를 꿈꾼다. 단순한 이웃사촌을 넘어 국내 최초 '베트남 타운' 조성에 도전하고 있다.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 있는 충효당(忠孝堂)은 국내 베트남 이민자들의 '성지'로 손꼽힌다. 봉화군이 베트남 타운 조성을 추진 중인 충효당 일대는 베트남 역사상 최초로 중국의 책봉체제에서 벗어나 장기집권을 이룩한 베트남 리(LY) 왕조(1009~1225)의 국내 유적지이자, 한국에 1천200여 명이 분포한 화산 이 씨의 집성촌이다.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466호인 충효당은 오늘날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연결고리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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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 있는 충효당(忠孝堂) 모습. 오주석 기자

실제 2018년 응 웬 부 뚜 주한베트남 대사가 한국에 흩어져 있는 베트남 선조의 흔적을 찾기 위해 충효당을 방문한 이후 수많은 베트남 특사들이 찾을 정도로 관계가 깊다. 충효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고택이다. 13세기 초 고려시대. 당시 베트남 리 왕조는 외척인 진수도((1194~1264·陳守度)의 역성 혁명으로 나라의 운명이 급속히 기울던 시기였다. 정변 이후 나라의 전권을 빼앗겨 숙청 위기에 몰린 이용상(6대 혜종의 마지막 왕자)은 바다를 건너 고려로 넘어와 화산 이씨라는 성을 하사받고 귀화했다. 고려에 정착한 이용상과 그 자손들은 외적의 침입에 맞서 혁혁한 공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13대손인 이장발(1574~1592)은 19세 나이로 왜구와 싸우다 문경새재에서 전사했다. 그 애국심을 기려 화산 이씨의 집성촌인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 충효당이 세워졌다.

 

2018년 한국으로 귀화한 황선화 씨는 "베트남 왕자를 기리는 유적을 한국이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 매달 커뮤니티를 통해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다"라며 "연결고리가 있기에 베트남과 한국 간의 거리가 멀지 않게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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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한국-베트남 문화교류 캠프에서 도옥 루이엔(하얀 옷) 베트남공동체 대표와 참석자들이 봉화군 충효당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봉화군 제공〉

베트남 역사를 간직한 충효당을 중심으로 베트남 타운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현재 충효당 주변은 슬레이트 지붕 형식의 오래된 주택과 창평저수지에서 흘러나오는 강줄기가 한데 어우러져 베트남 현지 마을을 연상케 한다. 또 화산 이씨 직계 종손 10여 명이 주변에 거주하는 등 베트남 인구 유입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도옥 루이엔 주한베트남공동체 대표는 "베트남 사람들 역시 열심히 자아를 실현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품고 한국에 온다"라며 " 충효당은 베트남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만큼 한국에 살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의 정체성을 찾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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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타운 조성이 추진되는 경북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 일대. 봉화군 제공
봉화군은 베트남 타운 조성을 민선 8기 공약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11만 8천여㎡ 규모 부지에 베트남 전통 마을과 리 왕조 유적지 재현 공간, 연수·숙박시설, 문화공연장 등을 조성해 충효당 일대를 관광 명소화하는 목적이다. 2027년까지 총 2천억 원을 투입해 인구 소멸 위기를 벗어나겠다는 입장이다.


봉화군은 지난해 12월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에게 국가정책사업화를 건의했으며, 올해 6월 봉화 베트남 마을 조성사업 용역에 돌입했다. 봉화군은 봉성면 창평리에 베트남 타운이 완공되면 소비 증대에 따른 관광 교류 활성화는 물론 베트남 이주민 증가로 시너지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박현국 봉화군수는 "경북도 최북단인 봉화군이 지역의 자립을 위해선 관광 등 부가 사업 확장이 필요하다"라며 "정착 이주민들이 지역의 경제적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라고 말했다.


봉화군이 베트남 사업에 뛰어든 건 베트남의 가능성 때문이다. 현재 베트남은 1억명 이상의 인구에 평균 연령이 32세로 '젊은' 국가다.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로, 평균 연령 44.5세인 한국보다 12살이나 어리다. 베트남 출신 엄마와 함께 사는 다문화 가정도 상당한 편이다. 지난해 말 기준 경북의 다문화 가구(1만5천58가구) 중 베트남 출신 다문화 가구는 4천 768가구로 가장 많다. 경북의 일상 깊숙이 베트남이 들어와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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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당(忠孝堂)이 위치한 경북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 마을 주변에 빈 집이 곳곳에 방치돼 있다. 오주석 기자
저출산과 고령화로 오는 2070년이 되면 한국의 인구 수는 3천 766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세계 최하위 수준의 합계출산율(2022년 기준 0.78명)을 기록한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수는 2020년 15%에서 2070년 46%로 치솟을 것이란 비관적인 관측도 나온다. 결국 한국의 인구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외국인을 수용하는 자세가 요구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화산 이씨 종친회 이시창 사무국장은 "충효당 일대에서 터를 잡고 사는 주민들 대부분이 80대 이상 노인이다. 그 분들의 빈자리를 한 뿌리인자 친척인 베트남 이민자분들이 채워준다면 경북을 넘어 대한민국의 모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주석기자 farbrother@yeongnam.com
※이 기사는 대한민국지방신문협의회와 지방시대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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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 기자

영남일보 오주석 기자입니다. 경북경찰청과 경북도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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