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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운 문화부장 |
일부 문화계에서 대구 중구 향촌동에 조성 중인 '한국전선문화관'(이하 전선문화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걱정하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이웃한 향촌문화관과의 차별성이 있느냐이다. 둘째는 콘텐츠의 지속성 여부다. 전선문화관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해되지만 일부의 우려는 단언컨대 기우다. 그럼, 하나하나 따져보자
먼저 '향촌문화관의 차별성이 있느냐'의 문제다. 결론부터 말하면 향촌문화관과 전선문화관은 정체성과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향촌문화관은 6·25 전쟁 피란시절 문화예술인들이 머물며 교류했던 향촌동 일원의 모습을 재현한 곳이다. 한마디로 생활상 중심이다. 하지만 전선문화관은 생활상이 아닌 작품 중심이다. 전쟁 당시 문화예술인들은 포연에 휩싸인 전장 속으로 종군하며 시대의 참상을 기록했다. 더러는 전란의 심연 가까이에서 전쟁의 참화를 몸소 받아들이며 펜을 들었다. 문학은 물론 음악, 미술, 영화, 연극 등 장르 불문이었다. 그들의 작품은 지금 명징한 기록으로 남았다. 전선문화라는 독특한 장르로 대한민국 문화사에 큰 축을 이루고 있다. 지금까지 뿔뿔이 흩어져 있던 당시의 작품을 집대성하고 재조명해 콘텐츠화하는 곳이 바로 전선문화관이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또 다른 문제는 '소재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어 지속성이 있느냐'이다. 이 역시 기우일 뿐이다. 1950년에서 1953년 사이, 3년여간 문화예술인들이 발표한 작품은 무궁무진하다. 문예잡지 '전선문학' '전선시첩'은 기본이다. 당시 출간된 출판물들이 거대한 산맥을 이룬다. 전상렬의 '피리소리', 유치환의 '보병과 더부러', 김동리의 '귀환장정', 박양균의 '두고 온 지표' 등 이미 대구문학관에서 수집해 소장하고 있는 작품집만 수십 권이다. 향후 대구문학관과 협업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신문매체에 발표한 작품도 무한하다. 전쟁 당시 하루도 휴간하지 않고 발행된 영남일보에는 그들의 작품이 셀 수 없을 만큼 실려 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스크랩한 작품만 수백 건이 넘는다. 영남일보뿐만 아니다. 전쟁이 소강기에 들어가면서 휴간했다 다시 지면을 발행한 전국의 신문에도 상당수의 작품이 남아있다. 대부분 대구 피란문화예술인이 보낸 작품들이다. 전선문화관이 들어서 당시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발굴한다면 무한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실제 대구시는 전선문화관을 통해 구상, 박두진, 박목월, 유치환 등 유명 작가들의 미발굴 작품을 새롭게 조명하는 장도 마련한다.
뿐만 아니다. 전쟁기에 대구에서 창간된 청소년잡지 학원도 전선문화의 한 축이다. 청소년 잡지지만 피란문화예술인들이 대거 필진으로 참여해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학술적인 자료도 방대하다. 그동안 전선문화를 깊이 있게 연구한 논문이 상당하다. 논문자료를 근거로 학술의 장을 연다면 이 역시 무한한 자원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문학에 그치지 않는다. 음악, 미술, 영화, 연극 등 장르를 불문한 작품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이러한 작품들이 전선문화관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다면 대구는 무한한 자산을 갖게 된다. 이 시대의 작가들이 선배 세대의 작품을 새롭게 해석해 또 다른 작품이 나온다면 금상첨화다.
매번 강조하지만 전선문화는 '대구만의 독특한 콘텐츠'다. 서울에도 없는 우리 지역에만 있는 자산이다. 그 자산이 전선문화관을 통해 빛을 본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지적하고 우려하기보다는 응원해야 할 때다.
백승운 문화부장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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