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영화 '서울의 봄'과 '암살'의 은유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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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07  |  수정 2023-12-07 06:56  |  발행일 2023-12-07 제22면
시대정신과 선-악의 이분법
진압·독립군 정의 편에 등치
가족 후손들 고초·곤궁한 삶
질곡의 역사 옆에 있는 영화
후세에 진실 알려 정화기능

[박규완 칼럼] 영화 서울의 봄과 암살의 은유
논설위원

#1 "역사가 스포일러"라고 했던가. 누구나 아는 뻔한 결말인데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영화 '서울의 봄'은 질곡의 현대사 한가운데를 들춘다. 1979년 12월12일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이 수도 서울에서 벌인 군사반란을 촘촘한 서사로 엮어낸다. 그날 밤 9시간이 결국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과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의 대결로 응축되며 불의와 정의의 싸움이란 프레임을 구축한다. 주도면밀한 복선(伏線)이다.

때론 역사는 잔인하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입니까?" 영화 속 전두광의 대사처럼 성공한 쿠데타로 불의한 정권이 탄생했다. 그 정권의 슬로건이 '정의사회 구현'이었다니. 반란을 주도한 정치군인들은 5공화국에서 진급도 하고 장관도 하고 국회의원도 하며 개국공신의 권세를 누렸다. 하지만 장태완 수경사령관을 비롯해 진압군 편에 선 실존 인물과 가족은 멸문지화의 고초를 겪는다.

'서울의 봄'은 '대중적 코드'에 충실했다. 개봉 14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동원한 자력(磁力)이기도 하다. 팩트 위에 적절히 허구를 얹어 생동감과 긴박감을 유발해낸다. 경북궁 앞 대치 장면이 '윤색의 테크닉'이다. 상업영화의 한계도 넘어섰다. 흥행에만 천착했다면 오히려 흥행을 견인한 '감동'이 없었을지 모른다. 느릿한 엔딩곡은 마치 레퀴엠처럼 스러져간 '참군인'들을 위무한다.

#2 2015년 개봉한 영화 '암살'은 일제강점기인 1933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경성, 상해, 만주로 공간적 무대를 확장한다. 김원봉이 상해 임시정부로 찾아와 친일 사업가 강인국과 간도 참변의 주범 가와구치 소장의 암살을 제안하고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속사포' 추상옥, 폭발물 전문가 황덕삼이 암살조로 꾸려지는데…. 항일투쟁의 무거운 소재를 액션활극으로 버무린 내공, 쌍둥이 자매를 등장시킨 인물 설정의 상상력이 재미를 더한다. 괜히 1천만 관객이 봤을까. 안옥윤은 경북 영양 출신 항일투사 남자현이 모델이다.

'암살'에도 시대정신이 녹아 있다. 결정적 순간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해방 후 경찰 고위직으로 출세한 밀정 염석진(이정재)은 반민특위에 회부되지만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는다. 그 무죄는 친일파 전체에 대한 무죄를 은유한다. 그러나 안옥윤은 거리에서 염석진을 처단한다. 법을 대신한 단죄다. 그녀의 총구와 반민특위를 해체해 친일청산의 소명을 팽개친 이승만 정권이 묘하게 오버랩 된다.

#3 '서울의 봄'과 '암살'을 관통하는 코드는 시대정신과 선과 악의 이분법이다. '서울의 봄'은 12·12가 군사반란이었음을 각인하고, '암살'은 독립군의 신산했던 족적과 희생을 조명하며 친일청산이란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각각 다른 영화이지만 정의의 편에 진압군과 독립군이 등치하는 구도를 형성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진압군 가족이 인고의 시간을 보냈듯 항일투사 후손들은 곤궁한 삶을 이어간다. 반면, 반란군과 친일파는 득세하고 호사를 누린다. 이 역사의 아이러니를 영화는 놓치지 않는다.

영화가 진압군과 독립군의 비극을 완전히 치유하진 못한다. 그러나 그 아픔을 어루만지며 역사적 진실을 후세에 알려 준다. 일종의 정화기능이자 역사 바로 세우기다. 정의의 카타르시스다. 영화는 질곡의 역사 옆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본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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