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영남일보 구상문학상] 황인찬 시인 수상 소감…"고통 속에서도 희망 찾는 일 詩 통해 계속 해나갈 것"

  • 황인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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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02 08:21  |  수정 2024-01-02 08:42  |  발행일 2024-01-02 제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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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시인

문학이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길 바라며 시를 써 왔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비추는 것은 결국 볼썽사납게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일 뿐이라는 사실을 절감하는 나날을 보내왔습니다. 삶이 이토록 초라한데 아름다운 시를 쓰는 것은 기만에 불과하고, 세상이 이토록 참담한데 희망을 노래하는 것은 지나친 순진함이라고 여겨 왔습니다. 그러나 그런 낙담 속에서 문학을 계속하며 배운 것은 그 모든 절망마저 의심하고 검토하는 것이 문학의 소임이라는 뒤늦은 깨달음이었습니다.

올해에도 슬픈 일이 참 많았습니다. 그 모든 슬픔을 이 자리에 열거할 수는 없겠지만, 그 아픔들을 잊지 않고 싶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결코 이해할 수도 없으며 헤아릴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상상하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문학을 통해 배웠으니까요. 저는 삶의 작은 기쁨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크게 즐기는 일이 문학의 좋은 점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슬픔과 더불어 그 슬픔을 견뎌낼 작은 기쁨을 건져내는 일을 시와 함께 계속해 나가고 싶습니다.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를 묶으며 가장 자주 생각한 단어는 '결심'이었습니다. 슬픔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결심, 고통 속에서도 즐거움을 떠올리겠다는 결심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결심들에 저의 보잘것없는 시가 보탬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시에 큰 응원을 전해주신 것은 아직 이루지 못한 그 결심을 언젠가는 이루어 내라는 격려일 것입니다.

구상 시인의 '초토의 시1'은 전쟁 이후 초토가 되어버린 현실 앞에서 죄 없는 미소와 빛나는 내일을 발견하는 시입니다. 학생 시절 구상 시인의 시를 읽으며 인간의 높은 정신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빛과 위안이 될 수 있는지 사무치게 배웠습니다. 고통과 슬픔의 가운데 삶의 희망을 건지는 그 정신을 저 또한 잊지 않겠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의 무거움과 고마움을 깊이 새기겠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시를 읽고 쓰는,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가장 큰 기쁨입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시와 더불어 기뻐하고, 또 슬퍼하고 싶습니다.

☞황인찬 시인은

1988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나 201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구관조 씻기기' '희지의 세계' '사랑을 위한 되풀이' '여기까지가 미래입니다' 등이 있고, 산문집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을 펴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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