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영남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코타키나발루의 봄(상)

  • 이수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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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02 08:31  |  수정 2024-01-02 17:47  |  발행일 2024-01-02 제22면

2024010201000049100002021
변미영 作

일련번호: 27
날짜: 10월 9일
이름: 배춘자
나이: ?
메모: 황 여사 소개

배춘자 씨가 전망대 통유리창 너머로 고개 돌리는 걸 보면서 나는 휴대폰으로 타이머를 맞춘다. 15분. 노인들은 타이머를 싫어한다. 말하는 도중에 어디선가 자꾸 초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조바심 난다며. 오금이 근질거린다고, 좀 민망한 표현을 쓴 노인도 있다. 타이머를 끄면 또, 시간이 얼마나 남았냐고 수시로 물을 거면서. 초반에는 대개 나에 관해 묻는다. 나이며 이것저것. 젊은 애들과 달리, 노인들은 말을 붙여놓고 머릿속으로 다음에 할 말을 고르는 기색은 아니다.

스물세 살, 대학생이고요. 아버지는 우체국 다니고 어머니는 살림하세요. 친가고 외가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오래전에 전부 돌아가셔서 얼굴도 잘 몰라요. 언니는 결혼했고, 오빠는 군대 갔어요.

물론,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사실대로 말했다. 스물다섯 살, 대학은 다닌 적 없고, 아버지는 내가 찾아가야 만날 수 있는 곳에 있지만 내가 잘 찾아가지 않고, 엄마는 손바닥만 한 가게에서 종일 웅크린 채 밀가루 음식을 만들어 돈을 벌고, 친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남은 두 친할머니는 의좋은 척 한집에 살고, 외가 쪽 할머니, 할아버지는 엄마가 고아로 자라 전혀 모르고. 내게는 언니도 오빠도 없다.

그러자 노인들에게서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젊은 애가 어째 노인보다 곡절이 더 많으냐며. 물어서 대답한 것뿐인데 시간이 다 되자 낯빛을 바꾸며 환불해 달란 노인이 나섰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값을 치르는 건데 거꾸로 내 이야기만 들었다고. 환불해 주면서 좀 억울했다. 돈은 돌려줬는데 내 이야기는 돌려받지 못했으니까. 그때부터 각본이 필요해졌다.

배춘자 씨는 나에 관해 묻지 않는다. 이름도, 나이도, 아무것도. 할머니라 하지 말고 배춘자 씨, 하고 이름을 불러줘요. 첫마디를 그리 열었다. 네네. 늙은이 옆집해 줘 고마워요. 네네. 이곳에서는 옆에 앉은 사람을 그리 부른다. 옆집. 사람더러 집이라고. 돈 받고 하는 건데요, 뭘. 그래도요, 늙은이하고 한 마디라도 섞어주는 게 어딘데요. 네네. 통유리창 너머로 비행기 한 대가 막 내려앉을 참이다.

배춘자 씨는 비행기, 타 보셨나요.

이곳에서 말 트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물음도 없다. 바로 눈앞에 비행기가 있으니까. 창밖에 시선을 붙박은 채 배춘자 씨가 안 타봤어요, 한다. 이제껏 만난 노인들과 배춘자 씨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손주뻘인 내게 꼬박꼬박 높임말을 쓰는 것도, 비행기를 못 타 본 게 아니라 안 타봤다 하는 것도 그렇고. 나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얌전히 붙이고 배춘자 씨의 입술을 쳐다본다. 마치, 앞으로 15분 동안 열과 성을 다해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라도 할 것처럼.

배춘자 씨가 비행기를 못 타 본 게 아니라 안 타 봤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건 얼마 전 배춘자 씨의 옆집이었던 배선봉 씨 때문이다. 배춘자 씨와 배선봉 씨는 성(姓)만 같을 뿐, 남매는커녕 친척도 아니다. 물론, 나하고도 그렇다. 배춘자 씨, 배선봉 씨, 나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남이다. 비행기를 타 봤냐는 물음에 배선봉 씨가 못 타 본 게 아니라 안 타봤다고 대답할 때, 배춘자 씨는 배선봉 씨가 자존심이 아주 강한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
(타이머 멈춤)


형사는 이쪽 의사를 묻거나 승낙을 구하지도 않고 녹음기 앱의 버튼을 누른다. 형사나 경찰 앞에서 지은 죄 없이 주눅 드는 사람에겐 당연해 보일 수 있어도 나는 대번에 불쾌해진다. 우리 집이며 엄마 가게를 뻔질나게 찾아와 뭉개던 형사들은 음식을 시켜 먹고 돈을 안 낼 때가 더 많았다. 심지어는 어린 내게 라면을 끓여달란 적도 두어 번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 있는 곳을 엄마와 내가 알면서 모른 척한다고 믿었다.

물론, 그 믿음이 틀린 건 아니었다. 이마에 뜨거운 입김이 닿아 얼핏 잠 깬 밤, 자는 척해야 할 것 같아서 눈은 안 떴지만, 나는 엄마에게 익천(翼川)이란 지명을 반복해서 말하는 아버지 목소리를 들었다. 여태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는 생각에 앞서, 형사를 노려보던 엄마의 상기된 얼굴이 떠오른다. 스테인리스 대접에 얼굴을 박고서 잔치국수를 세상없이 맛나게 처먹는 형사를 향해 엄마는 내가 하지도 않은 질문에 대답하듯 말했다.

아버지는 참다 참다 이제 더는 못 참게 된 사람들을 돕는 것뿐이야.

이곳 여느 노인들처럼 형사도 내 이름과 나이부터 묻는다. 물론, 이번에는 내가 진짜 이름과 나이를 댄다. 형사가 학생이냐고 묻는다. 젊은 애들은 모두 학생일 거란 지겨운 착각. 학생 아닌데요, 할 때마다 죄 없이 죄짓는 기분이 되는 게 싫다. 웬 젊은 애 하나가 노인들 이야기를 들어준답시고 돈 뜯어 간다는 신고라도 들어갔나. 먼저 달라 그런 거 아닌데요, 정자에 드러누워 자고 있었을 뿐인데요, 들어달라니 듣고 주겠다니 받은 것뿐인데요. 그리 말하려 목구멍에 힘을 주는데 벨 소리 울리는 전화기를 윗옷 주머니에서 꺼내며 형사가 묻는다.

학생은 배선봉 씨를 아나요?

학생 아니라니까요, 하는 뜻으로 고개를 젓는데 그게 형사 눈에는 배선봉 씨를 알지 못한다는 뜻으로 비친다. 배춘자 씨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람을 안다고 해야 하나, 모른다고 해야 하나. 배선봉 씨를 안다고 하기에는 아는 게 너무 없고, 모른다고 하기에는 또 아는 게 좀 있는데. 화장실에 갔다가 양손을 바지에 문지르며 다가든 배춘자 씨에게 형사가 신분증을 들이민다. 배춘자 씨가 눈의 초점을 맞추려 오만상을 찡그린다. 사나흘 옆집 사이였던 배선봉 씨가 일주일째 연락이 안 돼 가족들이 찾고 있다는 말에 배춘자 씨 표정이 묘해진다. 눈이 치떠진 건 놀라서 그런 것 같고, 입꼬리가 올라가는 건 즐거워서 그런 것 같은.

지난 두 달간, 배선봉 씨가 날마다 집을 나서 공항에 온 사실을 가족 누구도 알지 못해 형사는 여기까지 오는 데 애를 먹었다. 형사는 주변 탐문을 통해 공항 전철 역내 약국의 약사가 배선봉 씨를 마지막으로 보았다는 정황을 알아냈다. 배선봉 씨는 공항 오는 길에 약국에 들러 늘 자양강장제 한 병을 사 마셨다.

배선봉 씨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약사가 아니라 사실은 당신이란 사실에 자못 뿌듯해하던 배춘자 씨는 연락처를 받은 게 있는지 묻는 형사에게 돌연 눈을 흘긴다. 혹여 돈 냄새를 맡고 배선봉 씨에게 여자라도 들러붙을까 후레자식들이 통화 기록을 대놓고 뒤진다는데 연락처를 어찌 나눴겠냐며 애먼 형사에게 언성을 높인다.

돈 냄새 나는 노인으로 잘 잡아 봐. 외국에선 식당에서 접시 나르다 노인네 말 좀 들어줬다고 팁으로 천만 원짜리 수표도 받고 그래. 혹시 알아? 네 운이 여기서 트일지.

며칠 전, 날 찾아온 J가 전혀 농 같지 않은 투로 말했다. 난 오 분에 천 원이야. 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너랑 나랑 안 맞는 거야. 그 말은 했다.

배춘자 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형사가 자꾸 코를 킁킁거리거나 주변을 둘러본다. 그럴 만도 한 게, 사나흘이나 옆집 사이였으면서 배춘자 씨는 배선봉 씨에 관해 나만큼이나 아는 게 없어 보인다. 한술 더 떠, 배춘자 씨는 형사가 묻는 말에 대답하기보다 형사에게 묻는 때가 더 많다. 배선봉 씨가 어디 사는지, 자식은 몇인지, 젊었을 때는 뭘 하고 살았는지, 물었던 걸 또 묻기도 한다. 배선봉 씨에게서 들었는데 까먹었다고 할 때 배춘자 씨는 빵을 훔쳐먹다 들킨 어린애처럼 낯빛을 붉힌다. 배춘자 씨의 질문에 대답하다 지친 형사가 녹음 앱을 끄고 일어서며 그래도 그냥 가긴 좀 아쉽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배선봉 씨가 갈 만한 곳이 어딘지…, 잘 모르시죠?

*

그렇다고 배춘자 씨가 배선봉 씨에 관해 아주 모르는 건 아니다. 여기서 비행기 타봤느냐는 물음이 말문 트기에 가장 적절하다면, 비행기를 타 본 적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과 말을 이어가기에 또 더없이 적절한 질문이 있다. 배춘자 씨는 배선봉 씨에게 그걸 물었던 때를 또렷이 기억한다.

혹시 비행기를 탄다면 가고 싶은 곳이 어딘가요?

요즘 세상에 비행기 한 번 안 타 본 사람 있을까 싶겠지만 노인 중에는 좀 있다. 안 타 보고 타봤다고 하는 사람까지 합치면 꽤 있다고 봐야 한다. 비행기를 탄다면 어딜 가고 싶은지 물을 때 배춘자 씨는 배선봉 씨가 당신처럼 정말로 비행기를 한 번도 안 타 본 사람이라고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별다른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노인들의 대답은 뻔했다. 의사 진단서-혹은 동반자-가 있어야만 탈 수 있는 비행기에 요행히 오른들 어딜 가겠소, 기껏해야 황천길이겠지. 피안의 기슭 어쩌고 하며 좀 배운 티 내는 노인도 있었다. 배선봉 씨는 그다지 배운 티 나는 사람은 아니었다.

코타키나발루.

부쩍 귀가 안 들리면서 배춘자 씨는 못 들은 말 되묻기가 세상에서 제일 모양 빠지는 일로 여겨졌다. 되묻지 않기 위해서는 들은 척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들은 척도 하기 힘든 말이 있는데 배선봉 씨 대답이 딱 그랬다. 남 속도 모르고 조개처럼 맞물려있던 배선봉 씨의 입이 헤 벌어졌다. 거길 생각만 해도 미치게 좋다는 듯. 배춘자 씨는 그 외계어 같은 단어를 한 번 더 말해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배선봉 씨의 푸르스름한 입술을 쳐다보았다.

코가크니별루, 처음엔 나도 그리 외웠수다.

코,가,크,니,별,루.

배춘자 씨가 한 글자씩 짚어 발음할 때마다 장단 맞추듯 배선봉 씨가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렇게 처음 마주 본 배선봉 씨 얼굴에서 유독 코가 크게 보여 배춘자 씨는 반사적으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바람에 다음 말이 분명하게 발음되지 않았다.

그긴 왜 그려는 건데요.
자전거를 타려고요.

(5분 추가)

학생은 그곳을 아나요?

코타키나발루. 나는 그곳을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한다. 이리된 마당에 여행이나 가자며 J가 줄기차게 입에 올리고 있는 곳이라 안다. 요즘 젊은 애들 사이에서 가을 여행'핫플레이스'라지만, 난 한 번도 가 본 적 없으니 어떤 곳인지는 모르고. 배춘자 씨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열어 검색창에 단어를 찍어 넣는다.

검색어: 코타키나발루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 북서단에 자리한 섬. 푸른 바다와 밀림, 동남아 최고봉 키나발루산이 한데 있는 천혜의 휴양지다. 해안을 따라 눈부신 백사장이 즐비하고, 최고급 리조트가 절경 속의 휴양을 갈망하는 여행자를 유혹한다. 이슬람 국가지만 종교가 자유롭고 다양한 인종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도 흥미롭다.-jisikpedia

내가 읽어주는 내용을 배춘자 씨는 듣는 것 같지 않다. 검지로 허공에 대고 점을 찍으며 뭐라고 웅얼대는 양이 창 너머 비행기 몸통에 가로 박힌 영어 철자를 읊는 것 같다. 노인들은 잘 그런다. 갑자기 어디 딴 세계로 빠져드는 듯 그런다. 늘어진 눈꺼풀에 가려 가뜩이나 작아진 눈동자가 매직아이 그림을 보듯 아득해지곤 한다. 신나게 말하다가도 어느 순간, 느닷없이 그런다. 그럴 때 대개, 나는 기다린다. 노인들이 그러는 동안 시간이 멈추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정한 시간을 채우기만 하면 되니까.

타이머로 33초가 지나는 지점에서 내가 배춘자 씨의 팔꿈치를 살짝 건드린다. 배선봉 씨가 비행기를 탄다면 코타키나발루에 가 자전거를 타고 싶댔다고 짚어준다. 배선봉 씨가 왜 하필 거기서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지 나도 조금은 궁금해서.

거긴 길거리에 자전거 타는 사람이 없다지요.

설마. 말레이시아 같은 동남아엔 발에 차이는 게 자전거일 텐데. 내가 검색창에 다시 단어를 찍어 넣는다. 학생, 그거 들여다보는 시간은 빼주는 거지요. 아, 뭐, 네네.

검색어: 코타키나발루+자전거+없다

코타키나발루에는 동남아시아 다른 나라와 달리 거리에 자전거가 전혀 없다. 날이 덥기도 하지만 산유국이라 기름값이 싸고 자동차를 나라에서 2~3년간 무이자로 융자해 사게 해주는 덕에 다 자가용을 타고 다닌다.-jisikpedia

배춘자 씨가 듣고도 기억 못하는, 혹은 배선봉 씨가 굳이 언급하지 않았을 어떤 날, 어떤 경로로 배선봉 씨는 코타키나발루 길거리에 자전거 타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대번에 배선봉 씨는 코타키나발루 길거리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당신의 이름처럼 선봉이 되기 위해서였다. 배선봉 씨는 구십 평생 살아오는 동안 어디에서건 무엇에서건 선봉이 돼 본 적이 없었다. 배선봉 씨를 아는 사람들은 배선봉 씨가 이름처럼 선봉이 아닌 것을 조롱하고 비난했다. 배선봉 씨는 자신의 이름이 선봉이 아니었다면 그런 대접을 받지 않거나 덜 받았을 거라 여겼다.

이름값 못한다는 이유로 받아온 설움을 토로하려 배선봉 씨가 입술을 달싹이는데 배춘자 씨가 이름 이야기가 났으니 말인데요, 하며 말을 챘다. 우리 아버지가 날마다 봄날 같으라고 내 이름을 춘자라고 지었대요. 아, 그랬군요. 배선봉 씨가 좀 전에 못다 한 말을 이으려는데 배춘자 씨가 또 말을 챘다. 자전거 이야기가 나서 말인데요, 아버지가 오빠하고 남동생들한테만 자전거 타기를 가르쳐 줬어요, 날마다 봄날처럼 살라면서 우리 아버지는 어째 자전거도 안 가르쳐 줬을까요. 배선봉 씨는 배춘자 씨가 말끝에 울먹일 정도로 설움에 북받치자 조금 전 당신의 설움을 그만, 잊어 버렸다.

나 역시 자전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아버지한테서 자전거를 배웠다고 말할 수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몇 년 만에 나타난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왔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가르쳐 주마 할 때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던 건 비단 오랜만에 본 아버지가 서먹해서만은 아니었다. 나는 이미 자전거를 타는 정도가 아니라 핸들을 안 잡고도 균형을 잡을 줄 아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에게 뒤를 붙잡힌 자전거는 무거워 잘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 등짝에 대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넘어지려는 쪽으로 핸들을 돌려. 자전거를 못 타는 척하느라 낑낑대면서 뭐가 좋다고 나는 실실 웃음이 샜다.

등 쪽에서 다급한 휴대전화 벨 소리가 나더니 뒤가 가뿐해졌고, 나는 아버지가 손을 놓았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홀연, 흔해 빠진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아버지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던 아이가 문득 뒤돌아보면 자전거 뒤를 붙잡고 있는 줄 알았던 아버지가 저만치서 양팔을 들고 환호하는…. 그걸 따라 할 요량으로 나는 최대한 뒤뚱거리며 자전거를 조금 더 몰다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치켜들고 있어야 할 아버지의 양팔은 형사에게 붙들려 있었다. 아버지 손목에 채워진 쇠고랑이 봄 햇살을 받아 속절없이 반짝였다. 나는 눈물이 솟구칠 정도로 부아가 났다. 엉터리. 날마다 봄 햇살처럼 웃고 살라며.

그때를 생각하느라 내가 매직아이 보는 눈이 되어 있는 동안에도 배춘자 씨 입술은 쉼 없이 움직인다. 얼핏, 말을 멈춘 배춘자 씨가 옆눈으로 나를 본다. 방금 내게 뭔가 물었다는 뜻이다. 물론, 나는 그게 뭔지 모른다. 이럴 때는 되물으면 된다. 배선봉 씨 갈 만한 곳에 관해 형사가 물을 때 왜 코타키나발루 이야기는 안 하셨어요? 과연, 배춘자 씨는 방금 내게 뭘 물었는지 깡그리 잊을 만치 화들짝 놀란다. 

아까 그이가 아들이 아니라 형사요?

(하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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