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영남일보 구상문학상] 수상작 - 황인찬 시집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문학동네/2023.6.15)

  • 황인찬 시인
  • |
  • 입력 2024-01-02 08:21  |  수정 2024-01-02 18:18  |  발행일 2024-01-02 제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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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규선 作
표지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황인찬

눈을 뜨자 사람으로 가득한 강당이었고 사람들이 내 앞에 모여 있었다 녹음기를 들고 지금 심경이 어떠시냐고 묻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꾸 말을 하라고 하고 그러나 나에게는 할 말이 없어요 심경도 없어요 하늘 아래 흔들리고 물을 마시며 자라나는 토끼풀 같은 삶을 살아온 걸요

눈을 다시 뜨니 바람 부는 절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 뛰어내리셔야 합니다 지금요 더 늦을 순 없어요 자칫하면 모두가 위험해져요

무서워서 가만히 서 있는데 누가 나를 밀었고

눈을 뜨면 익숙한 천장, 눈을 뜨면 혼자 가는 먼 집, 눈을 뜨면 영원히 반복되는 꿈속에 갇힌 사람의 꿈을 꾸고 있었고

그러나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군
애당초 마음도 없지만

눈을 뜨니 토끼풀 하나가 자신이 토끼인 줄 알고 머리를 긁고 있었네

좋아,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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