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교육] 오직 모를 뿐

  • 정재걸 대구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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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15  |  수정 2024-02-27 19:41  |  발행일 2024-01-15 제11면

'내 몸은 내가 아니다.' '내 마음은 내가 아니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다. 물론 깨닫지 못한 사람도 내 몸과 내 마음이 내가 아니라는 말을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태어날 때와 비교하여 늘어난 내 몸은 모두 내 몸 밖에서 취한 물과 공기와 햇볕과 음식물이다. 그래서 내 몸은 내가 아닌 모든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내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내 마음 역시 부모와 친구와 매스컴과 책과 선생님에 의해 만들어졌다. 본래 '나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내 몸과 내 마음이 내가 아니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숭산스님은 '오직 모를 뿐'이라고 대답했다. 모른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것이 깨달음이라는 뜻이다. 진정한 나는 누구인지, 어디에 존재하는지 생각으로는 결코 알 수 없다. 진정한 나는 생각 밖에 있다. 그것을 생각으로 알려고 하는 것은 그림자를 떼어내려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이고, 꿈속 사람이 꿈 밖의 세계를 알려고 하는 것과 같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진정한 나를 찾는 일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하고, 심행처멸(心行處滅)이라고 한다.

진정한 나는 보는 자다. 내 몸을 보고, 내 생각과 느낌을 보는 자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진정한 나에게서 멀어진다. 그래서 네티, 네티(아니다, 아니다)라고도 말하고, 입을 열면 즉시 어긋난다(開口卽錯)고 말하는 것이다. 보조국사 지눌은 수심결(修心訣)에서 '만일 깨달음을 구하고자 하면 바로 깨닫지 못할 것이다. 다만 깨달음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 이것이 곧 견성이다.(若欲求會 便會不得 但知不會 是卽見性)'라고 말했다.

숭산스님은 모르는 마음은 모든 생각을 끊어 버리게 하고 나만의 상황, 나만의 조건, 나만의 견해를 소멸시키게 한다고 말했다. 내가 생각을 하면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은 달라진다. 그러나 내가 생각을 끊으면,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 그리고 일체중생의 마음이 같아진다. 생각이 없을 때 우리는 완전하다. 완전하지 않음은 무언가를 만든다는 말이고, 무언가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뜻이다. 나와 너, 주관과 객관의 분리가 이것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숭산스님은 오직 모를 뿐인 마음으로 곧바로 나아가라고 말한다. 모르는 마음은 어떤 생각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은 끊임없이 미래로 달린다. 우리는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결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생각은 끊임없이 달리며 다양한 상황을 떠올리고 그 전개과정을 추리한다. 그런 생각의 99%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바이런 케이티는 어떤 불편한 생각이나 감정이 일어나면 바로 '과연 이것은 진실인가?'라고 질문하라고 가르쳤다. 그 질문의 끝은 물론 숭산스님과 같이 오직 모를 뿐이다. 제자들에게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말로 가르침을 편 숭산스님은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마음이 모든 전생의 업을 정화시켜 줄 뿐 아니라 지금 당면한 복잡한 갈등을 치유해줄 수 있는 치료제라고 했다.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양극화로 인한 갈등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닐 뿐 아니라 가장 심한 나라 중 하나다. 얼마 전에는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야당 지도자를 테러하는 사건이 있었다.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야당 정치인들을 모두 빨갱이라고 욕하며,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여당 정치인들을 모두 친일파라고 미워한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나와 다른 주장을 소개하는 정보가 아니라 내 믿음을 정당화하는 정보만을 계속 올리기 때문에 이러한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진다. 요즈음 단체 모임이나 단톡방에서 종교적 신념과 함께 정치적 견해도 절대 말하거나 올리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 되었다.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인한 갈등은 가족이나 친구 사이마저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지금 나의 정치적 신념이 과연 옳은가? 당면한 이 문제에 대한 내 판단이 옳은가?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우리는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말했다. 믿음이나 판단으로 인한 갈등이 생기면 바이런 케이티처럼 이 믿음과 판단이 과연 진실한가 물어야 한다. 이 물음의 최종 결론은 숭산스님과 같이 '오직 모를 뿐'이다. 나는 누구인가? 오직 모를 뿐.
<대구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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