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19세 때 6·25에 참전안 구순의 곽임용옹 "하루 1천명 소집되면 1천명이 죽어나갈 정도"

  • 진정림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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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6-19  |  수정 2024-06-19 08:03  |  발행일 2024-06-19 제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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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성군민체육관에서 열린 '달성군보훈가족 감사한마당' 행사에서 곽임용 옹이 6·25참전 유공자 대표로 대구보훈청장 표창장을 받고 있다. <곽임용 옹 제공>

"그 당시에는 하루 1천 명이 소집되면 1천 명이 죽어 나간다는 말이 있었다. 며칠을 굶고도 싸우러 갔다. 건빵 한 봉지로 끼니를 때웠다."

6·25 참전 유공자 곽임용(93·달성군 화원읍) 옹은 한국전쟁 발발 당시 19세였다.

어린 나이에 징집돼 제주도에서 훈련을 받고 38선이 위치한 경기도 연천 최전방에서 3년간 복무하고 휴전 후 만기 제대했다. 20사단 창설병이며 밤마다 암호 수령 해서 연대에 보고하는 연락병 업무를 맡았다. 잘 때도 전화기를 귀에 대놓고 쪽잠을 잤다.

곽 옹이 들려주는 최전방에서의 상황은 영화처럼 살벌했다. 인민군이 밤새 공중을 빙빙 돌며 조명탄을 쏘고 폭탄을 떨어뜨리면서 밀고 내려왔다. 새벽이면 다시 아군이 밀고 올라가는데 불에 탄 잿더미에 무릎까지 푹푹 빠졌다. 그렇게 뺏고 뺏기는 싸움이 반복됐다.

"총알이 아무리 쏟아져도 안 맞는 사람은 안 맞더라.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던 사람이 폭탄 파편이 옆구리를 파고들어 와 창자가 쏟아졌는데 내 이름을 부르면서 죽었다"라며 70년이 지난 지금도 엊그제 일처럼 선명한 듯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곽 옹은 최전방에서 한국전쟁을 온몸으로 겪은 역사의 산증인이다. 6·25참전용사회 달성군지회 화원읍지부장을 2023년까지 지냈다. 지난 4월엔 '달성군보훈가족 감사한마당' 행사에서 대구보훈청장 표창장을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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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성군민체육관에서 열린 '달성군보훈가족 감사한마당'에 설치된 포토존에서 곽임용 옹이 배우자 문윤선씨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곽임용 옹 제공>

곽 옹의 고향은 달성군 현풍면이다. 그는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전쟁 중에 형과 남동생을 모두 잃었다. 시집간 누나가 곽 옹을 군대에 보내놓고 3년을 하루같이 정안수 떠놓고 시집 식구 몰래 빌었다. 그러던 중 꿈속에서 비슬산 용이 내려와 이제 기도를 그만해도 된다고 선몽을 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정확히 3일 뒤 곽옹은 기적처럼 다친데 없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직도 누이 덕에 전쟁터에서 목숨을 건졌다고 믿는다.

곽 옹은 28세때 문윤선(당시 22세)씨와 가정을 꾸려 슬하에 5남매를 두었다. 자식을 키우기 위해 옷장사, 목수일, 만물상회, 덤프트럭 사업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화원 전통시장에서 꽈배기 장사를 해 방앗간도 차렸다. 현재는 막내딸과 외손녀가 대를 이어 방앗간을 운영 중이며 '60년 전통 3대가 함께하는 방앗간'으로도 유명하다.

곽 옹은 요즘 젊은 세대에게 당부의 말도 남겼다.

"요즘 젊은이는 개는 키우면서 애는 안 낳는다. 우리는 그 난리를 겪고도 아기 생기는 대로 낳아서 키웠다. 고생스레 5남매 키웠지만 뒤돌아보니 흐뭇하다. 그 어떤 부자도 부럽지 않다. 요즘 젊은이는 낳지도 않고 미리 포기한다. 정부는 젊은이가 결혼하고 아기 낳아 키울 수 있는 대책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

진정림 시민기자 trueforest@naver.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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