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읽씹'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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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7-08  |  수정 2024-07-08 07:19  |  발행일 2024-07-08 제23면

축약어는 휴대폰 대중화가 낳은 언어문화이자 소셜 미디어 시대의 대세다. 강추, 영끌, 열폭, 빛삭, 최애, 진상, 존버는 기본이다. 소시는 걸그룹 소녀시대, 완자는 완벽한 자율학습을 말한다. 훨씬은 훨로 줄었고 짜증은 짱으로, 진짜는 찐으로, 짝퉁은 짭으로 압축됐다. 영털은 검찰에 불려 가면 영혼까지 털린다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스텐도 스테인리스 그릇의 약어다. 심지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아로 통용될 정도다. 간편성과 실용성, 강렬한 임팩트를 중시하는 트렌드가 언어에 녹아든 셈이다. 이러다간 훈민정음도 훈정이라 할 수 있겠다 싶다.

요즘 언론을 도배하는 '읽씹'도 '읽고 씹다'의 축약어다. 문자 메시지를 받고도 답신을 보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읽고 씹는다? 맹랑하고 재미있는 표현이다. 2017년 방영된 KBS2 주말 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복녀(송옥숙)는 며느리 혜영(이유리)에게 "니가 감히 시어머니 문자를 씹어?"라고 다그치며 분을 삭이는 장면이 나온다. '읽씹'이 관용어로 굳어진 지 오래라는 얘기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김건희 여사 문자 메시지를 씹은 이른바 '읽씹' 사건이 진실게임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김 여사의 사과 의사를 묵살했다"는 비난에 한 전 위원장은 "사과하기 어렵다는 취지였다"고 반박한다. 용산의 전당대회 개입 논란도 불거졌다. 지난 1월 대통령실의 한 비대위원장 사퇴 요구를 촉발한 '읽씹' 파동이 국민의힘 전당대회의 변수로 떠올랐다. 당권 후보 간 득실은 어떻게 귀결될까.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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