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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경천섬은 낙동강 상주보 상류에 위치한 약 20만㎡의 하중도(河中島)로 섬을 둘러싸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비봉산 절벽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내는 생태공원이다. |
◆상주 전 지역이 느림의 삶 추구하는 '슬로시티'
'느림의 삶'을 추구하는 슬로시티. 도심 전체가 슬로시티로 인정받은 상주는 아름다운 자연과 여유가 있는 곳이다. 사실 '슬로시티'라는 도시브랜드는 아무 곳에나 붙일 수 있는 이름이 아니다. 국제 슬로시티 연맹으로부터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5년마다 깐깐한 재평가도 이루어진다. 슬로시티의 인증 기준은 '에너지 및 환경정책' '친환경 인프라 정책' '도시 삶의 질 정책' '농업·관광 및 전통예술 보호 정책' '방문객 환대·지역민 마인드 교육' 등에 해당하는 72개 항목의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이 까다로운 절차를 통해 2024년 1월 기준으로 세계 33개국 291개 도시가 국제 슬로시티로 지정되어 있다.
상주는 2011년 함창읍과 공검·이안면을 시작으로 2017년엔 전 지역이 슬로시티 인증을 받았다. 2022년에도 한 번 더 인증을 받으면서 국제 슬로시티 연맹으로부터 3연속 인증을 받은 도시가 됐다. 1986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지역의 고유한 자원·역사·문화·음식·환경 등을 지역민이 스스로 가꾸어 나가는 슬로시티 운동은 최근 지역 관광자원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상주시는 이를 기반으로 지난 5월 지역민이 중심이 된 '슬로라이프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오감으로 누리는 달콤한 인생'이라는 주제로 펼쳐진 '2024 슬로라이프 페스티벌'은 한복과의 컬래버로 명주의 고장 상주의 전통을 알리는 데도 한몫을 했다는 평가다. 아울러 상주의 아름다운 관광자원도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상주를 찾아본 여행객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상주는 천천히 걷기에 참으로 좋은 도시다. 도시는 깨끗하고, 주변에 좋은 산이 많다. '느림과 힐링의 여행'을 만끽하고 싶다면 상주가 품은 숲을 만나면 된다. 그중에서도 속리산 천왕봉에서 남산 국사봉을 따라 뻗은 소백산맥의 한 자락인 상주의 성주봉이 일상의 쉼표를 찍기에 제격이다.
상주 全지역 국제 슬로시티연맹 인증
성주봉 물놀이·한방사우나 즐기거나
황톳길 맨발걷기·고공데크 산책 힐링
회상나루서 보는 경천섬 노을은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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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성주봉 힐링센터 고공데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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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목재문화체험관. |
성주봉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먼저 상주시 은척면에 위치한 성주봉자연휴양림이다. 작년 한 해만 해도 8만명이 넘게 찾았을 만큼 사랑받는 여행지로 2001년 6월에 개장했다. 이곳에서는 아름다운 '숲속의 집'에서 하룻밤 쉬어 갈 수도 있고, 아이들과 숲을 바라보며 물놀이도 즐길 수 있다. 푸른 숲에 둘러싸인 물놀이장은 깊은 곳과 얕은 곳을 나누어 놓아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인기가 좋은 장소다. 올핸 7월15일부터 8월24일까지 운영한다.
산을 보면 올라야 제맛이라는 이들은 5개 코스로 이루어진 등산로를 따라 숲을 즐기면 된다. 2시간에서 6시간까지 체력에 맞는 코스를 선택하면 되는데, 어느 코스를 오르든 성주봉을 채운 아름다운 노송과 기암을 눈앞에서 영접할 수 있다. 덕이 많고 어진 임금을 뜻하는 '성주봉(聖主峯)'의 이름처럼 성주봉의 후한 덕은 숲 곳곳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시원한 계곡이며, 산행의 피로를 풀어줄 한방사우나며, 숲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힐링센터'까지 없는 게 없다.
그중에서 숲 안쪽으로 더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성주봉 힐링센터로 걸음을 옮긴다. 관광객 30명은 거뜬히 들어갈 수 있는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숲의 자연물을 이용해 만든 다양한 작품들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이곳에는 숲해설가 4명이 상주하며 여행객들의 길벗이 되어 주고 있다. 경력은 짧지만, 누구보다 숲을 사랑하는 김병성 숲해설가와 숲길을 오른다. 힐링센터를 나와 먼저 닿은 곳은 약 10m 높이에 지어진 고공 데크길이다. 땅에서는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아야 할 나뭇잎이며 줄기들이 고공 데크에서는 눈높이에 있다. 깊은 숲에 위치하다 보니 도시의 소음은 새소리와 계곡물 흐르는 소리로 바뀌고, 도심의 피로는 어느덧 씻겨 나가고 없다. 숲의 산소 농도는 20~23%까지 이른다는데 초록의 숲이 내놓은 산소는 뇌를 맑게 해주고, 피로도 말끔하게 없애준다.
"우리는 숲에 가면 편안함과 안정감, 포근함을 느낍니다. 호모사피엔스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가 숲에서 살았으니, 우리의 몸속에는 숲을 사랑하는 DNA가 있는 거죠." 김병성 숲해설가는 '힐링센터'를 찾으면 누구나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성주봉 숲길은 편안함 속에 새로움을 품고 있다. 걷다 보면 다양한 자생 나무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기 때문이다. 숲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숲 산책은 지루할 틈이 없다.
"우리나라 고유 수종 중에 노각나무라고 있어요. 스님들이 어린잎을 따서 차를 끓여 먹기도 하는데, 보기 어려운 나무지만 이곳에서 만날 수 있어요. 성주봉에는 산벚나무도 많습니다. 사실 벚나무라고 하면 일본 수종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많으실 텐데요. 산벚나무는 우리나라 고유 수종입니다. 고려 국력을 과시하기 위한 팔만대장경을 만들 때 가장 많이 사용된 나무도 바로 이 산벚나무였어요."
계절과 계절을, 과거와 오늘을 이어주는 산벚나무를 지나 특별한 장소에 도착한다. 숲해설가들이 '방방장'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아이들의 천국이다. 숲속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트램펄린과 흔들다리가 있다. 소설 '톰 소여의 모험' 속에 등장하는 나무 위의 집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공간도 있다. 2층 형태의 '트리 하우스'를 찾은 아이들은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라며 즐거워한단다. 높이 약 20m의 트리하우스는 바라만 봐도 동화 속으로 빠져들 듯한 신비함을 안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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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00m 길이로 조성된 상주 성주봉 황톳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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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경천섬 범월교. |
이대로 돌아가기 아쉽다면 '걷기'를 사랑했던 20세기 영국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도 울고 갈 '걷기 천국'을 소개한다. 상주의 명소로 이미 많이 알려진 경천섬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에세이 '존재의 순간들'에서 걷기의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걸어가는 동안 내 입술이 저절로 말을 뱉어내는 것 같았다. 대체 무엇이 그런 비눗방울을 불었을까? 하필 왜 그때였을까? 나도 정말 모르겠다.' 결국 천천히 걷는다는 것은 새로운 창작력의 시동을 거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인데, 경천섬 걷기가 도움이 될 듯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강물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하중도인 경천섬에 닿는다. 낙동강 제1경이라 불리는 경천대에 올라 낙동강을 한눈에 내려다보아도 좋고, 그저 경천섬을 유유자적 걸어도 좋다. 걷다가 만난 나무에는 예쁜 종들이 달려 바람과 함께 신비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군데군데 놓인 다양한 포토존이 있는데, 빨간색 공중전화 부스와 빨간색 벤치가 매력적이다. 특히 상주시가 광복 79주년을 맞아 최근에 조성한 무궁화동산은 꼭 한 번 찾아볼 만하다. 우수 원예품종인 배달계, 단심계, 아사달계를 태극 모양으로 이식하여 특색 있는 공간을 연출했다고 한다. 매년 7월과 10월 사이에 끊임없이 피고 지는 무궁화를 통해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는 공간이 된다.
경천섬 걷기가 재미있는 것은 다양한 관광지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경천섬과 연결된 보도 현수교를 건너가면 회상나루 관광지가 이어지는데 낙동강 옛길에 있던 객주촌이며 주막촌, 낙동강 문학관을 만날 수 있어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특히 상주주막은 TV드라마 '상도'의 촬영 세트장을 리모델링하여 만든 곳으로 장소가 주는 재미와 상주의 맛이 어우러져 여행객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풍경을 벗 삼아 파전 한 입을 삼키니 하늘도 해를 조금씩 삼키며 노을을 내어놓는다. 경천섬 노을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무엇이 급할 게 있냐는 듯 노을은 서서히 차오른다. 천천히, 느리게, 하지만 더 많이 채울 수 있는 여행이다.
글=박성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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