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수집 어르신 라면 무료 제공'·'얘들아 밥한번 편하게 먹자'…구미시 황상동의 나눔천사들

  • 박용기
  • |
  • 입력 2024-07-12 15:33  |  수정 2024-07-12 19:32  |  발행일 2024-07-12
남산골 우리밀 100% 칼국수 정인식씨 폐지 줍는 어르신에게 라면 무료 제공
다온 보리밥 정다운 씨 결식 아동에 식사 무료 제공

경북 구미시 황상동에 있는 한 식당 주인의 어려운 이웃을 도운 사연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지며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10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폐지 어르신께 라면 나눔 하는 이 업소를 칭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 A씨는 "구미에 황상동이라는 동네가 있다. 주로 서민들이 사는 동네 특성상 폐지 줍는 어르신들이 많다. 지나가면서 봐도 몇 분은 바로 만날 수 있을 정도로 폐지 어르신이 많다"며 "그런데 오늘 지나면서 한 식당에 '폐지 수집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라면 무료로 드립니다'라고 써 붙여진 것을 발견했다. 가뜩이나 장사도 안되는 동네인데, 이렇게 나눔을 실천하는 분이 있어서 흐뭇하다"고 썼다.

 

A씨가 칭찬한 식당 주인은 남산골 우리밀 100% 칼국수를 운영하는 정인식(71) 씨다.

 40여 년 전 구미로 온 정 씨가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식사를 무료로 제공한 것은 2013년부터다.

 

경북 상주 출신으로 초등학교 졸업 무렵 부모님을 잃은 정 씨는 그간 힘든 시절을 보냈다.

헌혈 후 손에 쥐어지는 식권 한 장으로 10대 후반을 버텼고 밤에는 마굿간, 기와 굽는 아궁이에 몰래 들어가 긴 밤을 지냈다.

 

정 씨는 "배고픔의 서러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며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거리를 나설 때 드는 그 자괴감은 겪어보지 않고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라면 제공 뿐이 아니다. 정 씨는 그간 폐지를 주워가며 홀로 어렵게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자신이 만든 칼국수와 생필품을 무료로 제공해왔다. 

 

하지만 생계가 아닌 소일거리로 폐지를 줍는 이들은 정중히 돌려보낸다.

 

정 씨는 "로또에 당첨돼 무료급식소를 해보고 싶다. 특히 멀리 있는 분들을 위해 차량을 구매해 이동식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고 싶다"며  "한때 방황했던 내 경험을 청소년들이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청소년 선도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

 

구미시 황상동에는 정 씨 외에도 어려운 아이들에게 따듯한 밥을 제공하는  30대 사장도 있다.

다온 보리밥 가게를 운영하는 정다운(34) 씨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이 가게 입구엔 '밥 한번 편하게 먹자'라는 제목의 안내문이 있다. 

안내문에는 '가게 개점을 준비하며 결식아동 급식 카드를 알게 됐는데 결식아동들에게 지원되는 식사 금액으론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돼 고민 끝에  내린 결론. 그냥 안 받을랍니다'고 적혀있다.

 

안내문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얘들아, 삼촌이 어떻게 알려야 너희들이 마음 놓고 편하게 올 수 있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삼촌이 그 연령대의 감수성을 느낀 게 너무 오래된 일이라 모르겠더라. 그냥 삼촌 가게 와서 건강한 밥 한 끼 먹고 갔으면 좋겠어. 대신 가게에 들어올 때 쭈뼛쭈뼛 눈치 보면 혼난다. 다 먹고 나갈 때 급식 카드와 함께 미소 한번 보여주고 갔으면 좋겠다. 매일매일 와도 괜찮으니 부담 갖지 말고 웃으며 자주 보자.' 

 

동네의 친근한 오빠, 형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 씨는 "한창 영양에 신경 써야 할 아이들이 걱정됐다"며 "많은 아이가 오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이 당당하고 자신있게 건강하고 따뜻한 한 끼를 먹고 갔으면 한다"고 했다.

 

박용기기자 ygpark@yeongnam.com

기자 이미지

박용기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