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APEC 정상회의와 틸리쿰빌리지

  • 박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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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1-15  |  수정 2025-01-15 06:55  |  발행일 2025-01-15 제26면
미 블레이크섬서 첫 정상회의

32년 만에 경주가 바통 이어

역사 유산·운영 능력 이미 갖춰

국민적 관심과 배려 더해지면

인상적인 회의 치러낼 수 있어

[동대구로에서] APEC 정상회의와 틸리쿰빌리지
박종진 경북도청 팀장

1993년 11월20일 오전 8시45분쯤(현지시각) 미국 시애틀 연안 블레이크섬 선착장. 영상 5℃의 쌀쌀한 날씨에 바람도 제법 불었다. 파도가 일렁이는 선착장에 어느새 한 대의 배가 모습을 드러냈다. 배는 곧 접안을 시도했다. 얼마 후 배가 제자리에 정박하자 승선객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선두로 장 크레티앙 캐나다 총리,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 피델 라모스 필리핀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이 차례로 하선했다. 이어 호소카와 일본 총리, 폴 키팅 호주 총리, 짐 볼저 뉴질랜드 총리, 추안 릭파이 태국 총리 등 나머지 국가 지도자들도 뒤를 따랐다.

이들은 곧바로 '틸리쿰 빌리지'란 팻말이 붙은 섬 입구를 통과해 20여m 떨어진 통나무집으로 향했다. 작은 통나무집에서 열린 이날 행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단체(APEC)의 첫 정상회의였다. 아·태지역 최초로 열린 다자간 정상회의란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회담 형식도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다. '리트리트(격없이 편안한)' 방식으로 진행된 것.

미 정부 관계자들이 회의 장소를 블레이크섬으로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블레이크섬은 APEC 각료회의가 예정돼 있던 시애틀과 인접한 휴양지다.

여의도보다 약간 작은 크기로 해양주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그만큼 해변 경치가 아름답다. 또 인디언 생활 방식이 전해지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민간사업자들이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만든 시설임에도 틸리쿰 빌리지와 인디언식 연어구이는 지역의 명물로 꼽힌다.

앞서 카터 전 미국 대통령도 조지아주지사 시절 이곳에서 전국주지사회의를 주재하면서 연어요리를 먹었다고 알려져 있다.

각국 정상과 격없는 대화를 위한 최적의 분위기와 함께 '짧지만 긴' 미국의 역사성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32년의 세월이 흘러 2025년 APEC정상회의는 '천년 고도' 경주에서 열린다. 경주는 불국사, 오릉, 첨성대 등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해도 손색없을 만큼 다양한 역사·문화 유산을 품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품은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경주는 제7차 세계 물포럼, 제14차 세계유산도시기구 세계총회 등 다양한 국제행사를 꾸준히 유치해 성공시켜 왔다.

아름다운 자연, 한국 전통문화와 더불어 대규모 국제대회 운영 능력까지 갖춘 셈이다. 이에 더해 경북도와 경주시는 APEC정상회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13일에도 경북도는 150여 명의 직원과 함께 성공적인 정상회의 운영을 위해 5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를 가졌다. 실·국별로 다양한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고, 보완에 보완을 거쳐 제안들을 실현시켜 나갈 계획이다. 정부 차원의 아낌없는 지원만 추가된다면 성공적인 운영은 따 놓은 당상이다.

이에 더해 APEC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지역민의 배려와 친절이 더해진다면 어느 때보다 인상적인 정상회의를 치러낼 수 있다. 첫 정상회의가 열린 블레이크섬 틸리쿰빌리지의 '틸리쿰'은 인디언말로 '친절하다'란 뜻이다. APEC정상회의 일정은 내달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젠 도민을 넘어 국민의 시간이다

박종진 경북도청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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