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시간을 품고 미래를 잇다]6. 자연과 사람의 상생, 상주 공검지(공갈못)](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505/news-p.v1.20250429.46b37c556df94f9dbac9b50e8358010c_P1.jpg)
상주 공검지(공갈못) 전경. 상주 농민의 삶의 일부이자 다양한 동식물과 공존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축조 당시엔 남한 최대 규모
지금도 4대 못 가운데 하나
대표적 쌀 주산지의 마중물
관련 설화 12가지 한시 58편
농민들 정신적 지주 자리매김
수달 너구리 등 포유류 13종
법정 보호종 포함 조류 49종
습지보호지역 일원에서 서식
공검지(공갈못)에 어둠이 찾아들면 연잎 사이로 물결이 출렁인다. 잔잔한 수면에 파장을 일으킨 주인공은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인 '수달'이다. 야행성인 수달은 공검지(공갈못)의 풍부한 어종을 토대로 이곳에 터를 잡았다. 수달이 먹이활동을 위해 물속을 오가는 사이, 역시 물을 좋아하는 고라니가 슬며시 주변 풀숲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잡식성인 너구리는 곤충이며 나무 열매 등을 찾기 위해 후각을 발휘하고, 오소리가 갈대숲을 누빈다. 날이 밝아 물가 주변을 걷다 보면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인 '삵'의 배설물이 발견된다. 침엽수림의 열매를 먹는 청설모며 다양한 새들이 오가는 모습은 형형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준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121호이자 2011년 6월 환경부에 의해 국내 최초로 논 습지로 지정된 후 '습지 보호구역'으로 관리되고 있는 공검지(공갈못)의 모습이다. 지금은 자연과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있지만, 사람에 의해 농업용 저수지로 축조되어 상주 들녘을 풍요로 물들게 했던 농민들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준 소중한 장소. 공검지(공갈못)는 상주 농민의 삶의 일부이자 다양한 동식물과 공존하는 생태계의 보고였다.
![[상주, 시간을 품고 미래를 잇다]6. 자연과 사람의 상생, 상주 공검지(공갈못)](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505/news-p.v1.20250429.1011bffc84c948e09af15e0ae330808d_P1.jpg)
상주 공검지(공갈못). 예나 지금이나 '상주'하면 '윤기 나는 쌀'이 먼저 떠오를 만큼 대표적인 쌀의 주산지인데, 공검지(공갈못)는 이 같은 영남 지역 최대의 곡창지대에 물을 대어주는 역할을 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상주 농업 역사의 마중물이 된 저수지
상주시 공검면 양정리에 들어서면 '농경문화의 발상지 공검면'이라는 기념비를 만날 수 있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하천이 형성되고, 비옥한 충적평야가 발달하게 된 상주는 일찍부터 경상도 농업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예나 지금이나 '상주'하면 '윤기 나는 쌀'이 먼저 떠오를 만큼 대표적인 쌀의 주산지인데, 공검지(공갈못)는 이 같은 영남 지역 최대의 곡창지대에 물을 대어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또한 최근 스마트 농업으로 농업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는 상주의 농업 선진화가 뿌리 깊음을 공검지(공갈못)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상주에서 벼가 대규모로 재배된 것은 원삼국시대(삼한시대)로 추정되는데, 이미 그 당시에 자연 저수지인 공검지(공갈못)에 둑을 쌓고 물을 막아 활용하는 시설인 제언(提堰)을 축조하여 관개시설을 확보함으로써 선진 농업을 구현했던 것이다.
당시 공검지(공갈못)는 둑길이 430m, 둘레 8.5~8.9㎞, 평균 깊이 2~3m인 대형 저수지로 남한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지금도 4대 못 중 하나로 불리고 있다.
공검지(공갈못)에 대한 중요성은 고서를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초의 기록은 고려사(高麗史·1451년)에 나오는데 “상주목에 큰 못이 있는데 공검지이다. 1195년(명종 25)에 사록(司錄) 최정빈(崔正彬)이 옛터를 따라 제방을 쌓았다"라고 적혀있다. '상산지(商山誌 1717)',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1425)' 등 1717년부터 1832년을 아우르는 다양한 지리서에는 총 42개의 저수지가 나오는데, 그중 가장 큰 저수지가 공검지(공갈못)였다는 조사 내용도 찾아볼 수 있다.
공검지(공갈못)는 18~19세기에 걸쳐 제작된 고지도 20여 종에서도 확인이 되는데, 1861년 김정호 선생이 제작한 대동여지도에는 영남 지역의 저수지로는 유일하게 공검지(공갈못)와 밀양 수산제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만큼 대표적인 저수지였다는 얘기다.
영남 지역을 대표하던 공검지(공갈못)는 그러나 이후 점차 그 규모가 줄어들게 된다. 1924년, 주변에 경북선 철도를 부설하면서 그 규모가 축소되고, 1959년에는 서남쪽으로 3.5㎞ 떨어진 곳에 오태저수지가 새로 생기면서 농업용 저수지의 역할도 내주게 된다. 지금의 공검지(공갈못)는 상주시가 1993년에 면적 1만 3천18㎡(3천938평), 수심 3~4m로 못의 일부를 복원한 것이다.
복원 및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의 발굴 조사 과정에서 의미 있는 역사적 유물들이 발견되어 세간의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2009년에 1천400년 전 제방 축조 수법을 보여주는 대규모 목재시설과 층층이 쌓아 올린 제방층, 이를 보호하는 말뚝 등 옛 제방의 구체적인 흔적들이 처음으로 발견된 것이다. 고대 제방 유적에서 부엽 공법과 목재시설이 함께 확인된 것은 국내 최초로 고대 선조들의 수리 토목기술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성과였다. 공검지(공갈못)는 이로써 농업 중심 국가의 발전사를 품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도 자리매김을 했다.
![[상주, 시간을 품고 미래를 잇다]6. 자연과 사람의 상생, 상주 공검지(공갈못)](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505/news-p.v1.20250429.5f44e1f912764811bb04cc5467e5a383_P1.jpg)
상주시 공검면 양정리에 들어서면 '농경문화의 발상지 공검면'이라는 기념비를 만날 수 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전설과 호수 문화의 정수
백성의 삶 깊숙이 스며들어있었던 공검지(공갈못)는 겉으로는 농업 발전사의 중심에 있었지만, 농민들의 마음 속에서는 정신적 지주의 역할도 했던 듯하다. 공검지(공갈못)와 관련되어 전해지는 수많은 설화를 통해 당시 농민들에게 '공갈못'이라고 불렸던 이곳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고상안(高尙顔)의 '태촌집(泰村集)'에 “얼음이 얼면 용이 얼음 위에서 밭갈이를 하여 얼음이 갈라 터지는 형상을 보고 이듬해의 풍흉을 점쳤다."라는 용경 설화가 전하는데, 농민들은 공검지(공갈못)의 얼음의 두께나 어는 시기를 통해 겨울의 강도나 다음 해의 농사 상황을 가늠했다. 공검지(공갈못)의 크기와 관련된 설화도 전해지는데, “볶은 콩 서 되를 하나씩 먹으면서 말을 타고 공검지를 돌면 콩이 모자란다."는 표현은 그만큼 농민들에게는 든든하고, 큰 못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저수지의 이름인'공검지'와 '공갈못'은 여전히 함께 불리고 있는데, 공검지에 대한 최초의 기록인 고려사(高麗史·1451년)를 포함해 세종실록지리지, 상산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대부분의 문헌에는 '공검지'라 표기되어 있다. '공갈못'이라는 독특한 이름은 설화 속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 문신인 홍귀달(洪貴達·1438~1504년)의 '명삼정기(名三亭記·1490년)'에서는 저수지를 쌓는 과정에서 사방의 물이 하도 많아 둑이 계속 터지자 사람들이 '공갈'이라는 이름의 아이를 묻어 둑을 쌓았고, 그 뒤론 둑이 더는 터지지 않아서 '공갈못'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매아설화가 전해진다.
매아설화를 포함해 12가지나 되는 다양한 설화와 15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58편이 전해지는 한시, 그 외에도 공검지(공갈못)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노래도 있다. '상주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처자야'라는 구성진 가락으로 시작되는 '채련요'는 '공갈못 연밥 따는 노래'로 당시 공갈못이 단순한 저수지를 넘어 지역 주민들의 일상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상주, 시간을 품고 미래를 잇다]6. 자연과 사람의 상생, 상주 공검지(공갈못)](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505/news-p.v1.20250429.61b7af013bd4494583f11d366d563111_P1.jpg)
상주 공검지(공갈못) 역사관의 출토 목부재 전시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자연과 사람이 함께 하는 생태공간이 되다.
자연의 힐링 공간으로 많은 이들이 찾는 지금의 공검지(공갈못)의 모습은 1993년에 일부를 복원한 후 논으로 이용되던 부지를 매입하여 1997년~2010년에 걸쳐 재조성한 것이다. 현재의 면적은 13만9천127㎡로 상주시가 이후 꾸준히 연지와 제방, 탐방로를 조성 및 관리하고 있다.
공검지(공갈못) 제방을 따라 만들어진 둘레길을 천천히 걸으면 약 40분 정도에 한 바퀴를 둘러볼 수 있다. 그사이 다양한 동식물을 마주하며 생태환경에 빠져들게 된다. '2023년 상주 공검지 습지보호지역 생태계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공검지 습지보호지역 일원에서 관찰된 포유류는 두더지, 너구리, 삵, 수달, 족제비 등으로 총 6목 10과 13종이 서식한다. 상주 공검지와 주변 지역에 확인된 조류는 총 11목 29과 49종으로 1천624개체인데, 그중에는 법정 보호 조류인 큰기러기와 황조롱이도 있다. 가장 많이 마주치는 조류는 참새, 붉은머리오목눈이, 멧비둘기, 큰기러기, 흰뺨검둥오리 순이다.
6월 말부터 8월 초까지는 더 특별한 만남이 시작된다. 공검지(공갈못)의 고요한 물결 위에 피어난 연꽃 행렬은 바람 한 점 없이도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분홍 비단같이 펼쳐진 연꽃의 장관은 그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으려는 작가들과 관광객들로 상주의 명소가 되었다. 초여름 연꽃의 은은한 향에 취했다면 가을에는 '공갈못 연밥 따는 노래'가 저수지를 가득 채우는 축제를 찾아보자. 공검면 발전협의회에서는 공갈못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 공갈못을 사랑하는 주민들의 마음을 나누기 위해 작년 11월에 제1회 공갈못 축제를 개최했다. 올해도 작년과 같이 가을에 제2회 공갈못 축제가 개최될 예정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환경 교육 및 역사 교육의 공간으로, 시민의 쉼터이자 힐링의 공간으로, 다양한 삶의 터전으로 공검지(공갈못)는 1천400 년 전에도 그랬듯 지금의 우리 곁에서도 묵묵히 일상을 함께 하고 있다.
글=박성미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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