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핫 토픽]산불의 상처, 웃음으로 다시 걷는 의성

  •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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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6-13 07:20  |  발행일 2025-06-13

경북 의성은 얼마 전 산불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수천 헥타르에 이르는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고, 문화재와 종교시설도 함께 사라졌다. 봄마다 노오란 산수유로 사람들의 발길을 끌던 마을은 순식간에 그 흔적을 잃었다. 관광객은 끊겼고, 마을은 조용해졌다.


사실 의성은 원래도 관광 자원이 풍부한 지역은 아니었다. 그런 의성에 다시 사람들의 발길이 조금씩 이어지고 있다. 계기는 뜻밖이었다. 유재석, 이동욱, 남창희, 이상이 등이 출연한 웹예능 '깡촌캉스' 덕분이다.


'깡촌캉스'는 특별한 설정도, 화려한 연출도 없었다. 그저 시골 마을에서 하루를 보내며 밥을 먹고 산책하는, 말 그대로 '별일 없는 하루'를 담았다. 그런데 그 '별일 없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별일은 없지만, 웃을 일은 많다"는 자막 아래 네 사람이 웃고 떠드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마음을 열었다.


방송 초반 등장한 '달라스햄버거'는 단숨에 들러야 할 디저트 핫플로 떠올랐다. 어릴 적 먹었던 추억의 맛이라는 댓글에는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이 여운을 지역 여행사가 놓치지 않았다. '사촌캉스'라는 이름의 1박 2일 여행 상품이 기획됐고, 수익 일부는 산불 복구에 쓰인다. 콘텐츠와 화제, 관광과 기부가 하나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지역 회복의 길이, 자연스럽게 그려지고 있다.


이쯤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그들은 왜 의성을 택했을까?" 유명 관광지도 아니고, 푸른 숲과 산수유도 사라진 마을을 왜 골랐을까. 단지 조용한 시골이어서였을까. 혹시 그들은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먼저 가서 "괜찮다"고, 다시 와도 된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부끄러웠다. 지역 언론 기자이자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왜 나는 이런 일을 먼저 하지 못했을까. 같은 지역 콘텐츠 제작자로서, 왜 그 상처를 외면했을까. 대신 해줘서 고마운 마음과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함께 밀려왔다.


유튜브 댓글 중 "이런 예능 하나가 지역을 살릴 수도 있구나"라는 말이 있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사람들이 찾아간 건 연예인이 아니라, 방송 속 마을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표정, 천천히 걸을 수 있는 골목이었다.


산불 같은 재난은 언제든 다시 닥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는 힘은 생각보다 단순할지도 모른다. 웃음이 담긴 방송 한 편, 따뜻한 한 끼 식사,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이 지역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 의성이 지금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내가 먼저 시작하지는 못했지만, 이번 주말 나는 다시 의성을 찾을 생각이다. 달라스햄버거를 먹고, 시간이 된다면 인근 안동까지 들러볼 참이다. 산불이 남긴 상처는, 결국 사람이 찾아가야 치유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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