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세의 나이에 학위 5개를 가진 박준희 어르신이 저서인 중국견문록을 소개하고 있다. 책상 위에는 1998년부터 취득한 5개의 학위증서.
"자왈(子曰), 사지어도(士志於道), 이치악의악식자(而恥惡衣惡食者), 미족여의야(美足輿議也)."
'거친 옷과 음식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함께 논의하기 어렵다'는 뜻의 논어 속 문장이다.
지난 16일 저녁, 이 문장을 인생 좌우명처럼 여긴다는 어르신을 시내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한학과 고전 문장에 대해선 AI 못지않게 즉답하는 박준희(89·대구 달서구) 어르신이다. '만학도의 전설'로 불리는 그는 지금도 배움을 멈추지 않고 있다.
박 어르신은 "현재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서 졸업할 생각이 안 나더라"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요즘 지역 유치원과 어린이집 6세반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있다.
예천 출신인 그는 6·25전쟁 일어나자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에 자원입대했다. 군 복무 중 야간학교를 다니며 학업을 마쳤고 이후 24살에 결혼해 30년 넘게 섬유회사에 근무하면서 세 자녀를 키웠다.
하지만 늘 가슴 속엔 '공부에 대한 갈증'이 남아 있었다. 정년퇴직 후인 1998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면서 인생 2막이 열렸다.
그는 이후 중어중문학, 일어일문학, 문화교양학, 농학까지 총 5개의 학위를 차례로 취득했다. 지필고사와 라디오 강의로 시작했던 대학생활은 어느덧 컴퓨터 기반의 온라인 수업과 시험으로 바뀌었다. 박 어르신은 "인터넷도 워드도 온라인 강의 평가도 이젠 문제없다. 60대 때보다 집중력은 더 좋아져서 시험 전엔 책을 7~8번은 정독한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공부하는 동안 그는 한자교육진흥회에서 한자 1급을 따냈고, 문화교양학과 전국동문회장상과 평생학습상, 시니어우수학습자상 등도 수상했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만주에 갔던 기억을 따라 그는 성인이 된 후 세 차례 중국을 여행했고, 그 기록을 모아 '중국견문록(성문출판사)'을 펴냈다. 그는 "마을에서 훈장 일을 하셨던 조부의 영향이 컸다. 마당엔 늘 아이들이 천자문을 외우는 소리가 가득했다. 지금도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 같은 조부의 말씀이 귀에 선하다"라며 추억을 꺼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그는 "우리말의 풍성한 어휘와 표현을 후손들이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신문이나 교과서에서 사라진 한자 교육을 되살리는 데 힘쓰겠다"라고 밝혔다.
박 어르신의 이야기는 오늘날 배움에 대한 열정을 잊은 이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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