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중순 계명대 명예교수
이름을 바꾸어 인격을 탈바꿈하는 것은 새로운 가치 창조의 방식 가운데 하나다. 바뀐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된다. 싯다르타가 붓다로,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예수가 그리스도로, 사울이 바울로, 무함마드가 알-나비 혹은 알-라술로 이름이 바뀌는 경우가 그러하다. 회심을 통한 종교적 소명의 언어적 형상화라고 할 수 있다. 문명사나 정치사의 큰 전환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로 이름이 바뀌면서 로마 제국이라는 새로운 질서의 상징이 되고, 테무진이 칭기즈칸으로 바뀌면서 유목세계의 족장에서 세계 제국의 창건자가 된다. 알렉산더가 이슬람 세계에서 이스칸다르(Iskandar)로 바뀌는 것 역시 문명 전환의 계기가 되는 경우다.
알렉산더가 누구인가? 그는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젊은 군주로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고, 인도와 중앙아시아까지 세력을 떨쳤다. 그중에서도 페르세폴리스의 위대한 문명을 파괴한 것은 그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던 끔찍한 사건이었다. 동방의 입장에서 보면 알렉산더는 침략자이자 문명 파괴자였음에 틀림없다. 서양이 동양보다 우월하다는 왜곡된 문명사의 도식을 만들어 준 원흉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는 이러한 알렉산더를 '대왕'이라 불렀고, '동양의 무지'를 깨우쳐 준 문명의 개척자로 추켜세웠다. 아닌 게 아니라 알렉산더가 막상 피정복지에서 이스칸다르라는 이름으로 숭배되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즈베키스탄은 사마르칸트의 미녀 록사나가 알렉산더, 즉 이스칸다르의 아내가 되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한다.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서남아시아 여러 곳에서는 알렉산더가 남긴 많은 정복의 행적들이 이스칸다르의 이름으로 버젓이 기억되고 기념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말레이시아조차 이스칸다르 푸트리라는 대도시를 건설하여 왕권 기원 신화의 근거지로 삼는다.
이스칸다르는 '쿠란'에서 두 개의 뿔을 가진 이상적 통치자로 등장한다. '샤나메'와 '이스칸다르나메' 등의 서사시에서는 정복자로서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피정복지의 문화에 감화된 존재로 나타난다. 동방의 문명을 계승하거나 예언자적 지혜를 가진 인물로 받아들여지는가 하면, '정신적 영웅' '문명교류자' '철인'으로 신화화되기도 한다. 실제로 알렉산더에게 페르시아는 단순히 정복의 대상이거나 야만의 땅이 아니라 매혹적인 문명의 땅이었다. 그는 아케메네스 제국을 창건한 적국의 지도자 키루스왕의 파괴된 무덤을 복원하고 경배하였다. 그리고 정치적 통합, 법과 관용이라는 정치 철학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문명에 깊이 매료되어 그들의 풍습을 존중하고 그들과의 혼인을 장려했는가 하면, 스스로를 페르시아 문명의 계승자로 자처하며 문화적 융합과 현지화 정책을 펼쳤다. 그리고 점령군 혹은 정복자라는 자기 부정하고, 서로 다른 문명 사이의 중재자이자 혼종화의 주체로 인격을 탈바꿈하여 새로운 문명의 창조자로 거듭났다. 그리고 드디어 동방의 군주 이스칸다르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오늘날, 한국문화의 세계적 상징이 된 K-컬처의 우월한 인문지리학적 위치는 알렉산더의 기세와 다르지 않다. K-컬처의 내용들이 인류 문명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제고시키는 키워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름을 이스칸다르로 바꿀 만큼 자기 부정을 통한 인격의 탈바꿈이 따라야 한다. 더욱 적극적으로 '다른 것'들을 내 안에 녹여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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