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메일] 낙태법의 입법 공백

  • 배정순 〈전〉경북대학교 초빙교수
  • |
  • 입력 2025-07-28 06:40  |  발행일 2025-07-27
배정순 〈전〉경북대학교 초빙교수

배정순 〈전〉경북대학교 초빙교수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낙태죄에 대한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국회는 같은 해 12월까지 추가적인 입법을 하지 않은 채 시한을 넘기면서, 낙태죄는 입법 공백 상태가 6년째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주요선진국은 낙태죄를 형법에 규정하되, 임신 중 일정 기간 허용 조항을 두고 있다. 일부 법률가나 국회의원들이 주요 선진국이 낙태가 합법화된 것처럼 말하였던 것은 낙태죄에 대한 반감과 수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낙태죄를 여성만 처벌하는 조항에 많은 여성들이 차별적 조항이라며 분개했지만, 낙태 시술 이후 생물학적인 부의 정체를 특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남성에 대한 처벌 조항을 법적으로 두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존 법률에서도 낙태를 강요하는 남성이나 의료진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었고, 산모의 건강상 문제나 성폭력 등의 상황도 낙태가 허용되고 있었다. 성인 살인죄가 무기징역이나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데 비해, 낙태죄는 1년 징역 또는 200만원의 벌금형으로 비교적 처벌이 가벼우며 처벌된 사례도 거의 없었다. 이를 두고 낙태죄가 사문화 되었으니 폐지하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법이 최소한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선언적인 의미마저 포기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남인순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한(11인)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우선 헌법불합치 이후 낙태법 공백으로 낙태가 '비범죄화' 되었다고 전제한 것부터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비범죄화는 합법화를 의미한다. 헌법재판소의 불합치판결 어디에도 낙태합법화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지난 23일, 만삭의 태아를 낙태 시술하고 SNS에 관련 영상을 올린 임산부와 수술 집도의 및 병원장을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은 작년 6월, 태아를 제왕절개 수술로 출산시킨 뒤 냉동고에 넣어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낙태법 공백에서도 후기임신의 낙태를 살인에 준하여 판단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서도 이번 법률발의안이 헌법재판소의 판결 취지에 위배되며, 헌법정신을 왜곡하고 의료적 관점에서도 문제가 많다며 강력한 반대의견서를 발표했다.


이번 발의안에서 낙태나 임신중절 대신 임신 중지로 바꾸려는 것은 낙태의 의미를 희석하는 의도로 보이나, 그렇다고 낙태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낙태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성적자기결정권이 제대로 존중될 수 있도록 책임의 성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낙태약을 미성년자 구분 없이 누구나 쉽게 구입하게 해서도 안 된다. 국립의료원 낙태관련 세미나에서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낙태약이 낙태 시술보다 더 안전하다는 결과는 없다. 오히려 전문의를 통한 시술이 홀로 복용하는 약물에 비해 사후 조치 등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의견은 있었다. 낙태약의 위험성을 폭로한 영화, '언플랜드'에서 이미 낙태약의 실상을 알린 바 있다.


주요 선진국은 여성들의 건강과 안전, 현실적인 어려움을 고려하여 일정한 임신 기간에 낙태 시술을 허용하고 있다. 태아 생명이 인간 생명의 시작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의 권고는 비록 어렵지만 생명권과 선택권의 조화로운 구현이다. 한국이 민주주의 문명국이라면 거기에 걸맞은 합리적 입법이 이루어져야 한다. 낙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후기 임신까지 무제한 낙태를 허용하는 것은 폭력적이고 후진적인 입법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임신과 출산, 낙태와 피임 등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여성들이 보다 합리적이고 안전한 선택을 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