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속에 삶이 무너졌다”…20대 영농후계자, 화마 속 절규

  • 피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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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10 21:17  |  발행일 2025-08-10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심각한 화상 피해를 입은 20대 영농후계자가 7일 영남일보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피재윤 기자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심각한 화상 피해를 입은 20대 영농후계자가 7일 영남일보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피재윤 기자

지난 3월,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산과 농장을 가리지 않고 지역을 집어삼켰다. 안동시 임하면 한 돈사에서 일하던 20대 청년 A씨는 그 불길 속에서 삶이 송두리째 뒤집혔다. 후계농을 꿈꾸며 축산업을 배우던 그는 다가오는 화마를 막기 위해 물을 뿌리다 전신에 2도 화상을 입었다. 얼굴과 등, 팔이 심하게 손상됐다.


그날 이후 A씨는 4개월간 생사를 오가는 입원 치료를 받았고, 지금도 주 2회 피부 재건 수술과 통원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병원비는 이미 2억 원을 넘었다. 지자체로부터 5천만 원의 지급 보증을 받았지만, 나머지는 전부 가족의 부담이다.


A씨 가족은 전국의 화상전문 병원을 전전하며 하루라도 빨리 회복되기를 바라지만, 경제적 부담과 미래에 대한 불안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는 "한 번 병원 갈 때마다 100만 원 이상이 나옵니다. 안 할 수가 없다"며 말했다.


육체적 상처보다 더 깊게 남은 건 트라우마다. 불에 탄 가축들 등 그날의 악몽이 생생하다. A씨는 사고 이후 트라우마로 단 한 번도 농장에 돌아가지 못했다. 수년간 준비한 후계농의 꿈도 산불과 함께 사라졌다. 그러나 제도는 이 청년의 절망을 보듬지 못했다. 화재 피해 확인 과정에서도 '동물 피해'는 인정되지만, 정작 사람의 부상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가족은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실질적인 보상을 받은 적이 없다고 호소했다. 산불 피해를 입은 농업인의 경우 '재난지원금'이나 '재해보상금'이 동식물 피해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인명 피해는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것이다.


A씨 가족은 억울함을 국민청원에 호소했지만, 한 달 내 5만 명 동의라는 높은 문턱 앞에 발이 묶였다. 전문가들은 현행 농업 재해 보상 체계가 '생산 자산 보호'에만 치우쳐 있어 재난으로 삶의 기반을 잃은 농업인 개인에 대한 보호 장치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현재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과 '농어업재해대책법' 등으로 이원화돼 있어 인명 피해자의 경우 지원 근거가 모호하다는 점도 문제다. 법·제도 정비 없이는 제2, 제3의 A씨가 계속 나올 수 있다는 경고다.


A씨의 사례는 단순한 개인의 불운이 아니다. 농촌의 미래를 짊어진 후계자가 국가 재난 속에 쓰러졌지만, 치료비조차 감당하지 못해 꿈을 포기하고 있다. 통계로는 '1명'에 불과할지 몰라도 그 한 명의 삶에는 가정, 지역, 공동체가 함께 얽혀 있다.


A씨는 여전히 치료를 받고 있다. 화상의 흉터보다 깊게 새겨진 상처가 치유되려면 시간도, 사회적 연대도 필요하다. 가족의 바람은 단순하다. "우린 도움을 바라는 게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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