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뇌로 살 것인가, 종양으로 살 것인가

  • 김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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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13 13:12  |  발행일 2025-08-13
신경세포가 되어 뇌로 살 것인가, 암세포가 되어 종양으로 살 것인가?
문제일 디지스트 뇌과학과 교수

문제일 디지스트 뇌과학과 교수

여러분은 혹시 이런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나요? 우리 사회는 건강한 뇌처럼 활기차게 소통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자기만 커지려 다른 세포들을 억압하는 병든 종양처럼 변해가고 있을까요? 오늘, 향기박사가 과학 논문 속에서 발견한 놀라운 세포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여러분의 답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향기박사의 지도교수님은 늘 "박사(Doctor of Philosophy)라는 이름에 '과학'이 아닌 '철학'이 담겨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과학 논문을 읽으며 세포를 사람처럼, 세포 조직을 우리 사회에 비춰보는 습관이 생겼죠. 오늘은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두 편의 '인생 논문'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1993년, '네이처(Nature)'지에 실린 무밍 푸(Mu-ming Poo) 교수님의 논문입니다. 이 연구는 신경세포의 생존과 성장에 중요하다고 알려진 신경영양인자, 특히 'BDNF(뇌 유래 신경 영양 인자)'와 'NT-3(뉴로트로핀-3)'가 신경세포 간 시냅스(Synapse) 연결을 튼튼하게 만든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이 신경영양인자들은 신경세포가 분비되어 이웃 신경세포와의 연결을 강화하고 정보를 효율적으로 주고받도록 돕습니다. 마치 서로의 성장을 돕는 '협력자'처럼요. 신경세포들이 이처럼 끊임없이 소통하고 연결될 때, 우리의 뇌는 학습하고, 기억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합니다. 즉 건강한 뇌는 활발한 소통이 만들어낸 결과인 것이죠.


두 번째 이야기는 1994년 '셀(Cell)'지에 발표된 시무스 오라일리(Seamus O'Reilly) 교수님의 종양 성장에 관한 논문입니다. 외과의사들 사이에는 이런 속설이 있었습니다. "크게 자란 종양을 제거하면, 숨어 있던 다른 암세포들이 깨어나 몸 곳곳에 퍼져 다발성 종양을 일으킨다." 이 관찰을 바탕으로 과학자들은 거대 종양이 어떤 물질을 분비해 다른 암세포 성장을 억제하고 자신에게만 영양분을 집중시킨다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오라일리 교수님 논문은 이것이 사실임을 밝혀냈습니다. 거대 종양은 자신의 성장을 위해 '안지오스타틴(Angiostatin)'이라는 물질을 분비합니다. 안지오스타틴은 강력한 제어 장치처럼, 작은 암세포들이 새로운 혈관을 만들어 성장하려는 시도를 막아버립니다. 즉, 거대 종양은 자신에게만 에너지와 영양분을 집중시키며 다른 암세포들을 억누르는 '독재'를 행사하는 셈입니다. 이는 암세포의 영악한 생존 전략이지만, 결국 몸 전체는 병들고 생명을 잃게 됩니다.


이 두 세포 모습과 우리 사회도 좀 닮지 않았나요? 건강한 사회는 BDNF를 분비하며 시냅스를 강화하는 뇌와 같습니다. 구성원 간 소통을 강화하고 상생을 돕는 긍정적인 조언, 건설적인 비판은 사회의 '시냅스'를 튼튼하게 만드는 'BDNF'와 같습니다. 이런 소통은 다양한 목소리로 더 나은 아이디어를 만들고, 함께 성장하는 길을 열어줍니다. 반대로, 병든 사회는 자신에게만 자원과 기회를 집중시키며 일방적으로 나아가는 거대 종양과 흡사합니다. 다른 이들의 목소리나 성장을 억누르는 '독설'이나 '억압'은 '안지오스타틴'처럼 사회 전체로 퍼져 건강과 활력을 좀먹을 것입니다. 이런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좋을지 몰라도, 결국 지속 가능한 사회 발전을 가로막습니다.


함께 사는 사회가 더 나아지려면, 우리는 상대를 제압하려는 '암세포의 전략'이 아니라, 서로의 성장을 돕는 '신경세포의 협력'을 선택해야 하겠죠. 소통이 강화되고 건강한 사회의 시냅스가 형성될 때,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고 안전하게 오갈 수 있으니까요. 그 속에서 서로 존중하는 마음과 진심 담긴 조언이 'BDNF'처럼 흐른다면, 우리는 비로소 함께 성장하는 사회를 만들고, 우리 자녀들에게도 그런 건강한 사회를 물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향기박사는 두 논문을 떠올리며 고민합니다. 'BDNF' 같은 조언을 건네는 신경세포가 되어 건강한 뇌로 살 것인지, 아니면 '안지오스타틴' 같은 독설을 전파하며 자신만 키우려는 종양으로 살 것인지. 영남일보 독자 여러분은 각자의 자리에서 'BDNF'를 분비하며, 건강한 소통으로 시냅스를 강화하여 모두 살만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는 분들이라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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