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기 대구시체육회장
고요를 깨는 휘슬 소리, 시시각각 변하는 스코어보드, 그리고 터져 나오는 관중의 함성. 우리는 공 하나가 만들어내는 '희로애락'의 서사시에 열광하고, 때로는 함께 눈물 흘린다. 이는 단순한 여가 활동이나 신체 단련을 넘어, 인간의 삶과 사회를 가장 압축적으로 비추는 거울이자 가장 원초적인 언어이기 때문이다. 경쟁과 협력, 승리의 환희와 패배의 아픔, 인간 한계에 대한 숭고한 도전과 그것을 뛰어넘는 감동까지 스포츠는 인간이 만든 가장 본능적이면서도 정제된 '삶의 축소판'이다. 그 기원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깊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에서 선수들은 신에게 경의를 표하며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통한 인간 존재의 완성을 노래했다.
당시의 경기가 신성한 제의였다면, 현대의 스포츠는 제도화와 상업화의 옷을 입었다. 하지만 그 본질에 흐르는 인간다움의 정수와 열정은 시대를 관통하며 여전히 유효하다. 무엇보다 스포츠는 메마른 일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에너지원이다. 이른 아침 상쾌한 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조깅, 친구들과 땀 흘리며 즐기는 축구 한 판, 퇴근 후 요가를 통해 흐트러진 몸과 마음을 정돈하는 시간. 이러한 행위는 단순히 칼로리를 소모하는 육체적 활동을 넘어선다. 오롯이 자신과 마주하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능동적 명상이며, 일상의 피로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삶의 리듬을 회복하는 귀중한 통로가 된다. 나아가 스포츠는 강력한 사회적 접착제 역할을 한다.
언어, 인종, 문화의 장벽은 경기장 안에서 무력해진다. 같은 팀을 응원하는 순간, 우리는 국경을 초월해 '우리'라는 강렬한 연대감을 경험한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기간 동안 지구가 하나의 관심사로 들썩이는 모습은 스포츠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 이는 '다름'을 넘어 '같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가 발현된 것이다. 함께 기뻐하고 안타까워한 기억은 단순한 추억을 넘어 공동체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개인의 성장 서사에서도 스포츠는 빼놓을 수 없는 스승이다. 특히 청소년기에 스포츠는 인내, 협력, 정정당당함의 가치를 교과서가 아닌 몸으로 체득하게 하는 살아있는 교육 현장이다. 중요한 것은 승리 그 자체가 아니라, 한계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과 태도다. 쓰라린 패배를 통해 겸손을 배우고, 자신의 약점을 분석하며 다시 일어서는 법을 익히는 것이야말로 스포츠가 가진 진정한 교육적 힘이며, 학교 체육과 생활 스포츠가 인격 형성의 거울이 되는 이유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공정하게 경쟁하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는 경험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필요한 덕목과 책임감을 자연스럽게 길러준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 구도와 승리 지상주의는 선수의 인권을 위협하고, 과정의 가치를 폄훼하며 스포츠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 결과만으로 모든 노력을 평가하는 냉혹한 현실은 스포츠를 삶의 균형을 깨뜨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포츠를 통해 억눌렀던 감정을 건강하게 분출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유대감을 확인하며, 자부심을 느낀다. 한 선수의 투혼이 절망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단 한 경기의 극적인 승리가 침체된 사회 전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기적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해왔다.
결국 스포츠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또 다른 언어이자, 우리가 끊임없이 되새겨야 할 삶의 철학이다. 거대한 스타디움에서 동네의 작은 공터에 이르기까지, 그곳에서 펼쳐지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통해 우리는 오늘도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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