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보건의 사라지는 경북 북부, 청송·영양 농산촌 의료 “빈사 상태”

  • 정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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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19 17:08  |  발행일 2025-08-19
보건지소 의사 공백 심화… 고령 주민들 만성질환 관리 ‘적신호’
경북 영양군 입암면 보건지소에서 공중보건의가 진료를 보고 있다.<정운홍기자>

경북 영양군 입암면 보건지소에서 공중보건의가 진료를 보고 있다.<정운홍기자>

의대생들의 현역병 입대 급증으로 공중보건의(공보의) 인력이 줄어들면서 경북 북부 농·산촌 지역에 심각한 의료공백이 나타나고 있다. 영양군과 청송군이 대표적인 피해 지역이다. 공보의 부족이 장기화되면서 주민들은 요일별 순회 진료를 기다리거나, 멀리 대도시 병원을 찾고 있는 실정이다.


영양군은 수비·입암·석보·일월·청기 등 5개 보건지소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현재 진료를 담당하는 공보의는 단 1명뿐이다. 이 의사는 일주일 동안 4개 지소를 번갈아 진료하며 악전고투하고 있다. 보건소 소속 2명 중 한 명도 매주 수요일이면 수비면 지소로 출장을 나가야 하는 실정이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영양군엔 10명의 공보의가 근무했다. 하지만 현재는 5명으로 반토막났다. 내년에는 이 가운데 4명이 전역을 앞두고 있어 사실상 '공보의 절벽'상태에 놓이게 된다.


영양군에서 근무하는 공보의 A씨는 "입대한 공보의보다 전역자가 2배가량 많다"며 "이 추세라면 의료취약지 주민 건강을 지키기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청송군의 공보의 상황도 매한가지다. 2018년까지만 해도 21명이던 공보의는 올해 14명에 불과하다. 내년엔 이 중 6명이 전역한다. 특히 소아과·재활의학과 전문의는 충원이 사실상 불가능해 지역 보건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청송군은 6개 보건지소 중 안덕면과 진보면에 공보의가 배치돼 있다. 하지만 다른 면으로 순회 진료를 나가고 있다. 한의사가 근무하는 주왕산면과 부남면 주민들의 경우, 약을 처방받기 위해 일반의가 있는 다른 지소나 청송군보건의료원을 찾는 실정이다.


영양군에선 고령 주민들이 만성질환 약을 제때 타지 못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공보의가 보건지소에 오는 날을 기다려야 하지만, 차량 이동이 어렵거나 날짜를 놓치면 약 공급이 끊기기도 한다.


영양군 주민 B씨는 "한 달에 한 번은 진료를 보고 혈압약과 당뇨약 등을 받아간다. 그런데 농번기에는 날짜를 맞추기도 어렵고, 보건지소에 의사가 오는 날을 깜빡하면 며칠 간 약을 먹지 못하는 일도 발생한다. 나보다 나이 많은 어른들은 더 힘드실 것"이라고 했다.


수비면에 사는 또 다른 80대 주민도 "버스를 놓치면 지소에 가도 의사가 없는 날이 많아 약을 제때 못 받는다"며 "읍내까지 가기엔 너무 멀고 힘들다"고 토로했다.


올해 경북 전체 신규 공보의는 43명에 그쳤다. 영양군은 이 중 1명만 배정받았고, 울릉군에는 9명이 배치됐다. 내륙 산간지역은 사실상 후순위로 밀린 셈이다.


청송의료원 관계자는 "농촌에선 공보의 한 명의 부재가 곧 의료공백으로 인식된다"며 "순회 진료로 겨우 버티고 있지만 주민 건강권 침해는 불가피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현역병은 18개월에 월급 165만원을 받지만 공보의는 36개월에 206만원 수준"이라며, 복무기간 불균형과 처우 문제 해결 없이는 의사 인력난을 막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의무사관학교 신설을 검토하고 있으나, 지역 의료계는 "새 제도를 기다리기 보다 당장에 기존 공보의 제도의 정상화가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영양군의 공중보건의는 "지금은 순회 진료로 버티고 있지만, 내년 이후 전역자가 쏟아지면 3~4년 안에 더 큰 의료공백이 올 것"이라며 "정부가 지역의 절박한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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