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의 세상만사] 병아리와 계란후라이

  • 전영
  • |
  • 입력 2025-08-25 08:26  |  발행일 2025-08-25

국민 외면받는 진흙탕정치


스스로 깨고나올 결단필요


새로운 정치세상 열기위한


세대간 정당간 권력교체는


장강의 물결같은 자연이치



#1. 김금희의 소설 '첫 여름, 완주'에서 주인공 손열매는 돈을 갚지 않고 사라진 선배 고수미의 고향마을을 찾는다. 그곳에서 합동장의사 겸 매점을 운영하는 수미 어머니의 집에 머문다. 여름 한 철을 매점 알바생으로 지내는 열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앞날을 걱정하는 열매에게 양계장 할머니는 "그렇게 심각할 필요 없어. 인생은 독고다이, 혼자 심으로 가는거야. 닭알도 있잖여? 지가 깨서 나오면 병아리, 남이 깨서 나오면 후라이라고 했어"라고 말한다.


올 여름 시작과 함께 6·3일 대통령 선거부터 윤석열·김건희 부부 구속 수감, 8월15일 광복절 특사, 국민의힘 전당대회 등 정치적 이슈가 휘몰아쳤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다툼이라면 좋겠는데 누가 권력을 잡고 누군가를 없애겠다는 진흙탕 싸움질이다.


제 잘난 맛에 고취된 정치의 민낯이 드러난 시간이었다. 장관 후보자 몇 명이 낙마했다. 시간이 촉박하다보니 검증에 헛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갑질논란 등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도 정부여당은 임명을 강행하려 했다. 윤석열 부부를 둘러싼 의혹들이 드러나고 있지만 여전히 모르쇠다. 조국 전 대표 등의 '유권무죄' 광복절 특사에도 여당은 "여론이 나쁘지 않다"며 자기 최면을 걸었다. 국민의힘은 찬탄과 반탄의 수렁에 빠져 자멸할 듯 하다.


스스로 깨고 나오면 생명이 되지만, 남이 깨트리면 죽음이다. 국민 눈높이와 어긋난 불합리와 불공정이라는 틀을 스스로 깨고 나오지 못하는 2025년 여름의 대한민국 정치는 계란후라이도 될 수 없다.


#2.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영화 '레토'는 1980년대 사상검열과 록음악이 금지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USSR) 시절의 고려인 2세 로커, 빅토르 최(Viktor Tsoi) 이야기다. 빅토르 최를 이끌어 주는 열정적인 선배 로커 마이크와 그들은 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고민한다. 성장해가는 빅토르 최를 보며 마이크는 떠나야 할 때를 안다. 그렇게 여름은 한 사람을 성장시키고 한 사람을 떠나 보냈다. 영화 제목인 '레토'는 러시아어로 여름이다.


여름은 가을의 결실을 위한 계절이다. 정치에도 뜨거운 여름이 필요하다. 국민의 뜻과 염원을 담은 정치인들의 신념과 열정이 하나로 뭉쳐져 국가발전을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여름이 그런 시간이었다. 남녀노소 모두가 민주화를 외쳤고, 그 뜻을 큰 나무같은 어른들이 이끌었다. 권력에 대한 욕구가 아니라 독재에 대한 저항의 여름이 민주화라는 결실을 맺게 했다. 영화에서 빅토르 최나 마이크도 유명 가수가 목표가 아니라 소련정권에 대한 저항의 신념을 음악에 담은 것과 같다. 실제로 1991년 소련은 무너졌다.


2025년 여름의 대한민국 정치는 불안정하다. 권력을 쫓는 불나방만 있을 뿐, 신념을 가진 정치인은 없다. 상대도 감싸 주었던 '큰 어른'들과 그들의 정치 신념을 이어간 사람들처럼, 새로운 정치환경을 만들고 새 인물을 키우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민심을 얻지 못한 권력은 자멸한다는 것도 부정한다. 대한민국이 더 이상 정체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치는 변해야 한다. 바뀐다는 것은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 내며 흘러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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