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훈
최근 이재명 정부에서 새롭게 취임한 A장관을 만났다. 대화 말미에 그는 갑자기 대구·경북(TK) 기자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이야길 듣곤 생각이 많아져 그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그는 국무회의 상황을 전했다. 당시 내년도 주요 신산업과 투자방향 등에 대해 타 부처 보고가 이뤄졌다고 한다. 전국 각 지역에 대한 설명이 이뤄졌을 때 마지막에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말을 꺼냈다고 한다. "대구·경북은요?"라고.
이후 A장관이 무슨 내용인가 싶어서 자료를 들여다 봤더니, 실제로 지역만 관련 산업 내용이 없었다고 한다. 회의 후 A장관도 해당 부처에 물어봤더니 답변이 "TK는 올라온 게 없었다"고 했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크게 어려운 내용도 아닌데 TK 지역은 신청을 안 했기에 의아하다고 했다.
A장관 지역언론의 기자에게 "TK 출신인 이 대통령이 그만큼 지역을 챙기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기자는 달라지지 않는 대구시와 경북도의 모습 때문에 한숨을 쉬었다.
사실 대통령실까지 갈 것도 없다. 최근 TK의 한 공무원은 관련된 법 개정 문제에 대해 해당 광역단체의 서울본부가 아닌 기자에게 문의하며 "의원실과 만나달라"고 했다. TK 중 어떤 서울본부는 대통령 취임 100일이 다 되어가는데 정부 주요 인사들의 연락처조차 확보 못해 지역 기자들에게 수소문하는 모습도 보였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국비 사업 발굴을 잘 못한다. 잘못하는 걸 수도 있다. 핵심 문제는 정치 권력에만 기대어 크게 노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정말 오래된 생각이다. 지역 의원실의 보좌진과 서울에 있는 지역 기자들의 공통된 생각이기도 하다. 당장 영남일보에만 해도 기자를 비롯해 예산확보 과정에서 지역에서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에 대한 비판 기사나 칼럼이 여럿 있다.
이렇게 비판하면 또 '계엄'이나 '지자체장 공백' 같은 이런 변명을 할 것 같다. 좋다. 그러면 시간을 8년 전으로 거슬러 가보자. 2017년 당시 TK공무원들은 '멘붕'에 빠졌던 때를 기억할 것이다. 당시 문재인정부의 탄생으로 중앙정치권과 소통창구 찾기가 갑자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정부 9년여 동안 지역 공무원들은 예산을 위해 '한두다리만 건너면' 됐다. 더욱이 정권의 핵심인사가 포진한 지역적 배경을 바탕으로 '힘있는' 국회의원들이 해결사 역할을 해줬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5년여 동안 어려움만 겪다, 3년을 다시 즐긴 뒤 또 같은 상황이 닥치니 새로운 일처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호남을 배우자"는 말이 떠오른다. 과거 집권여당이 아니었던 호남 지역 공무원들이 '발로 뛰며' 중앙정치권에서 자생력을 키웠다. TK 공무원들이 소위 '대접'을 받는 동안 타 지역에선 여당 및 정부에게 설움과 구박을 받아가며 지역 예산을 위해 노력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런 문제의식은 꽤 오랜 기간 지속된 문제다. 실제로 2018년 지방선거 직후 열린 예산간담회에서 당시 이철우 경북도지사 당선자는 "예산은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지역에서 공무원들이 열심히 준비해서 따는 것"이라면서 "호남이 경북에서 정권을 잡았을 때 많이 발전을 한 것을 벤치마킹하겠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공직자의 1시간은 5천200만 시간의 가치가 있다'고 했다. 지역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1시간이 대구경북 520만에게는 520만시간 이상의 가치일 수 있다. 제발 복지부동·무사안일에서 벗어나자. 우리는 그만큼 한가하지 않다.

정재훈
서울정치팀장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