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수경 사회에디터
아침에 일어나면 눈곱도 떼지 않은 채 하는 일이 있다. 아파트 16층 베란다에서 도로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나름 질서 있게 차량과 보행자들이 움직이는 걸 확인한 뒤 출근을 준비한다. 사회적 법규 틀에서 안정감 있게 변화하는 건 늘 대환영이다.
우리 정치권만 보면 속에 천불이 난다. 눈을 맞추고 싶은 사람들만 챙긴다. 팬덤층이 득세하면서 정치를 망친 여파다. 헌법에 명시된 검찰청을 78년 만에 우선 폐지된 게 대표적 사례다. 일단 눈엣가시를 없애놓고 보자는 식이다. 정부와 여당이 밀어부친 검찰청 폐지의 명분은 수사(중대범죄수사청)와 기소(공소청)의 분리다. 권력만 바라보는 정치검사들이 진보 진영에 더 혹독하게 칼날을 휘두른 것에 대한 응징이다. 지금은 일부 검사가 일할 공소청에 보완수사(요구)권을 줄지 여부가 쟁점이다.
상대적으로 경찰은 큰 칼을 차게 됐다. 모든 수사를 책임진다. 견제가 불가피해졌다. 경찰이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긴급체포했던 게 압권이다. 수갑을 채운 명분이 선거법·공무원법 위반 혐의라서 더 놀랐다. 체포영장을 발부해준 법원도 사족은 달았지만 곧잘 풀어줬다. 경찰은 머쓱해졌다. 벌써 정치경찰 예행연습을 한다는 핀잔을 들을 만 하다.
국가 질서유지의 마지막 보루인 '법원'까지 휘청거린다. 대법원장은 '대선개입(파기환송)'을 했다며 연일 여당에게 사퇴압박을 받고 있다. 대법관 증원, 4심제 카드도 대법원엔 위협적이다. 궁금하다. 과연 대법원이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했어도 지금 여당(당시 야당)은 '대선개입'을 외쳤을까. 아닐 것이다.
1954년 제정된 형사소송법이 뿌리째 흔들리다 보니 온 나라는 어수선하다. 검찰 손발을 꽁꽁 묶으려던 정부와 여당은 아이러니하게도 '3대 특검'엔 검사들을 요긴하게 활용한다. 검사 상당수는 1년 뒤엔 수사를 못하고, 돌아갈 고향(검찰청)도 사라지는데 말이다.
전 정부의 불통과 무능에 대노한 국민들은 이재명 정부에 대한 기대감은 크다. 아직 헛점이 많아 보인다. 강성 지지층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보수층엔 아예 등을 돌렸다. 여야 관계는 철천지 원수가 됐다. 민생고 해결 통로는 막혀 있고, 일자리 창출에 앞장 서야 할 기업에겐 가혹한 처벌 잣대만 하나 둘 늘어난다. 관세협상 묘수 찾기, 환율상승 관리는 언감생심이다. 당장 내년 3월부터 전국이 통합돌봄(의료·요양)체제로 전환하지만 준비는 미약하다. 한탕주의에 함몰된 국내 일부 청년들은 섣불리 캄보디아행을 택했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언제까지 '내란 타령'만 할 텐가. 내년 6·3 지방선거 때까지 이 모드로 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소통 전략을 대수술해야 한다. 입버릇처럼 내뱉는 개혁은 속도에만 천착하지 말고 안정감을 같이 추구해야 한다. 디테일을 챙기며 공감대 확산에 더 눈을 돌려야 한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은 보수성지로 불리는 대구에 '동네공약'을 제시했다. 꽤 신선했지만 '고갱이'는 눈에 띄지 않았다. 대구 전체의 핵심사업을 그냥 분류한 수준이었다. 이미 추진 중인 사업도 담겼다. 재탕, 삼탕인 셈이다. 정부와 여당은 시민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다. 충분한 정책적 자양분 확보를 위해서다. 협의를 통한 질서 있는 개혁과 체감형 공약이 정치적 앙금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나마 현 정부와 여당이 여론에 민감한 건 불행 중 다행이다.

최수경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