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붉은 사과, 푸른 회복-청송의 가을이 다시 익어간다

  • 정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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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0-20 06:00  |  발행일 2025-10-19
정운홍기자

정운홍기자

지난 17일, 청송읍 월막리 용전천변, 축제장 한가운데에 서 있던 리프트가 서서히 올라갔다.


그 위에는 윤경희 청송군수가 있었다. 안전모를 쓴 군수는 직접 사과 조형물을 달며 축제 준비 현장을 점검했다. 군민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손뼉을 쳤다. 그들의 얼굴에는 "이제 정말 가을이 왔다"는 안도감이 비쳤다.


불과 몇 달 전, 이곳의 풍경은 전혀 달랐다. 3월 대형 산불로 청송의 산림이 잿더미가 되었고, 일부 과수원도 피해를 입었다. 불길이 걷히고 나서야 남은 건 검은 재와 허탈함뿐이었다. 그러나 군민들은 멈추지 않았다. 불탄 땅을 갈고, 다시 묘목을 심으며 "다시 푸르게, 다시 붉게"라는 다짐을 현실로 바꿔왔다.


그 다짐이 곧 제19회 청송사과축제의 주제다. 오는 29일부터 11월 2일까지 닷새 동안 용전천 일원에서 열리는 이번 축제는 청송사과의 수확을 기념하는 동시에, 산불 피해 이후 지역 공동체의 회복을 알리는 무대다.


행정의 주도 아래 준비된 행사가 아니라, 군민이 직접 참여해 꾸려가는 '회복의 축제'다. 윤 군수가 리프트에 올라 사과를 단 것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다. 축제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행정적 점검이자, 군민과 함께 '다시 시작하겠다'는 약속의 제스처다.


그 상징성 때문에 현장을 지켜보던 이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과 한 알의 붉음은 단지 수확의 색이 아니라, 상처를 견딘 사람들의 회복의 색이기도 하다. 청송의 사과밭은 여전히 농민의 손끝에서 자란다.


산불 이후 군민들은 농지와 도로, 마을의 경계를 다시 세우며 공동체를 복원했다. 올해 수확된 사과는 그런 회복의 결실이자, 청송이 여전히 '사과의 고장'으로 불릴 수 있는 이유다. 행정은 인프라를 복구하고, 주민은 삶을 일으켰다. 그 협력의 결과가 이번 축제의 무대 위에 녹아 있다.


이번 청송사과축제는 단순한 관광 행사가 아니다. '푸르게'는 자연의 회복을, '붉게'는 사람의 회복을 상징한다. 축제장은 그 두 색이 만나는 곳이다. 공연과 체험, 직거래 판매가 어우러지는 현장은 지역 경제의 숨결이자, 군민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청송의 사례는 작은 농촌 지역이 어떻게 재난을 극복하고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지를 보여준다. 산불 피해의 흔적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 상처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리를 희망의 무늬로 덧칠하며 살아간다.


청송의 가을은 올해도 붉다. 그 붉음은 단지 사과의 색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불탄 산이 다시 푸르게 물들 듯, 청송의 사람들도 다시 제 길을 걷고 있다. 축제는 며칠이면 끝나겠지만, 회복의 서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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