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소현 'Part 12'
아트스페이스펄은 오는 25일까지 박소현 작가의 아홉 번째 개인전 'Big but Bit'을 개최한다.
박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베트남 무이네의 협곡 풍경을 모티브로 삼은 신작 회화 10여 점을 선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전시작들이 모두 한 장의 디지털 사진에서 비롯됐다는 것인데, 회화의 구성에 있어 '부분과 전체'의 관계성을 심도 있게 탐구해 눈길을 끈다.
박 작가의 작업은 회화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 디지털 이미지를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이는 작가가 디지털 이미지 작업을 하던 중 발견한 우연한 착시에서 비롯됐다. 그는 사진이나 드로잉 이미지를 극도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눈으로 보기에는 단색으로 보여야 할 부분에 미세하게 여러 색깔의 '색감 있는 픽셀'이 혼재돼 나타나는 현상을 포착했다.
박 작가는 이를 '확대 과정에서 오는 색의 반전'으로 정의하고 자신의 작업으로 확장했다. 이는 단순한 디지털 노이즈의 재현을 넘어, 인간의 눈이 인지하는 현실과 디지털 기기가 기록하는 정보 사이의 간극을 탐색하는 행위로 이어진다.

박소현 'Part 14'
전시명 'Big but Bit'은 이러한 작업의 개념을 직접적으로 대변한다. 박 작가는 캔버스 화면을 아무리 크게 확대해 광활한 풍경처럼 보이게 하더라도, 결국 그것은 원본 사진 데이터의 아주 작은 '일부분(Bit)'에 지나지 않는다는 존재론적 개념을 강조한다.
캔버스를 채우는 방식도 독창적이다. 박 작가는 사각형의 픽셀 형태를 기계적으로 옮기는 대신, 무수히 많은 미세한 붓질과 섬세한 선의 반복과 중첩을 통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엄청난 노동과 시간이 요구되는 이 과정을 통해, 캔버스 표면은 마치 미세하게 진동하거나 움직이는 듯한 독특한 질감을 획득한다.

대구 동구 아트스페이스펄에서 박소현 작가 개인전 'Big but Bit'이 열리고 있다.<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이번 전시작의 주요 레퍼런스는 박 작가가 2019년 가족여행 중 한 장의 사진으로 담았던 베트남 무이네 지역의 협곡이다. 박 작가는 이처럼 개인적 장소의 사진을 집요하게 확대함으로써, '전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그는 "우리가 보는 사물이나 풍경은 사실 원본의 아주 작은 부분들(Bits)이 모여 잠시 만들어낸 '덩치(Big)'에 불과하며, 절대적인 전체가 될 수는 없다"고 설명하며, 세상의 모든 것이 우리가 국한된 시야로 보는 조각일 뿐임을 역설한다.
박소현 작가는 "이번 작업을 통해 페인팅에 대해 심도 있게 고찰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페인팅과 관련한 밀도있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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