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메일] 한국 스포츠의 뿌리, 전국체육대회가 나아갈 길

  • 박영기 대구시체육회장
  • |
  • 입력 2025-10-27 06:00  |  발행일 2025-10-26
박영기 대구시체육회장

박영기 대구시체육회장

매년 10월 열리는 전국체육대회는 한국 스포츠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상징적 무대다. 올해로 106회를 맞은 부산 전국체전은 지난 23일 7일간의 열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대구선수단은 육상 등 50개 전 종목에 참가하여 지난해보다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다.


전국체전은 단순한 종합 스포츠 대회를 넘어,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 사회의 변화와 발자취를 함께해 온 살아 있는 스포츠 역사라 할 만하다. 그 기원은 1920년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체육회가 민족의 단합을 목표로 개최한 전조선야구대회가 바로 전국체전의 뿌리다. 당시 스포츠는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체력 및 정신 수양을 통해 독립 의지를 다지는 저항이었다. 광복 이후 1945년 대한체육회 창립과 함께 '전국체육대회'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면서, 전국체전은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의 종합 스포츠 축제로 자리 잡았다.


전국체전의 가장 큰 성과는 세대와 지역을 아우르며 한국 스포츠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학교 운동장에서 꿈을 키운 유망주들이 체전을 통해 발굴되었고, 이들 중 상당수는 올림픽·아시안게임·월드컵 등 국제 무대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활약했다. 88서울올림픽의 성공, 2002월드컵 4강 신화의 이면에도 전국체전을 통해 다져진 선수층과 지역 기반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전국체전이 단순한 경기 대회가 아니라 한국 스포츠 성장의 뿌리였음을 잘 보여준다.


체전은 또한 지역 균형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개최 도시마다 체육 인프라가 확충되고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스포츠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었다. 체전은 선수들만의 무대가 아닌 국민 모두가 즐기는 스포츠 문화의 축제가 되었으며, 사회적 가치를 생활 속에 안착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전국체전은 지난 100년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 무엇보다 엘리트 중심의 구조가 여전히 강하다. 지역 간 경기력 불균형과 외부 선수 영입은 지역 인재 육성의 의미를 흐리고 있으며, 단기 성과 위주의 선수 관리가 만연하다. 학령인구 감소와 생활체육 참여율 변화는 대회의 참가 기반을 위협하고 있다. 또한 개최 비용 문제도 심각하다. 시·도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경기장을 신축하거나 보수하지만, 대회 이후 뚜렷한 활용 방안이 없어 재정 낭비 논란이 반복된다.


이제 전국체전은 단순히 과거의 전통을 이어가는 대회가 아니라, 한국 스포츠의 새로운 길을 여는 무대가 되어야 한다.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첫째, 운영 개선이 필요하다. 대한체육회와 시·도체육회는 이미 전국체육대회 운영 개선을 위한 TF팀을 만들어 쿼터제 도입 방안을 연구했다. 올림픽 종목 28개를 필수 참가로 하고, 대한체육회 선택 5개 종목, 개최 시·도 선정 5개 종목을 더하는 '올림픽 종목 중심 쿼터제' 도입이 전국체전위원회에서 통과되었지만, 중앙 종목 단체의 반발로 여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둘째,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을 잇는 가교로서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선수 발굴의 장이면서 동시에 일반 시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적 성격을 확실히 해야 한다. 전국체전이 선수들만의 경연장이 아닌, 국민 모두가 참여하고 소통하는 장이 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확장된다. 셋째, 지역사회와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개최 도시가 단순히 일회성 이벤트 공간에 머물지 않고, 대회 이후에도 체육 인프라가 지역 사회의 자산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체전으로 지어진 시설들이 사후 관리에 소홀해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넷째, 젊은 세대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 마련이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에 맞게 온라인 중계, SNS 기반 홍보 등 새로운 세대가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는 문화적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때, 그 미래는 더욱 확고해질 것이다.


이제 한국 스포츠의 뿌리, 전국체전이 다시 한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전통의 무게를 넘어 혁신의 에너지를 담아낼 때, 국민과 함께하는 진정한 스포츠 축제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