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당 대립. 출처-게티이미지뱅크
1987년 민주화 이후 다당제 모습을 보이던 한국 정당체계는 1990년 '3당 합당'을 계기로 보수와 진보 양 진영으로 골격을 갖춘 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의 '고질병'이 된 거대 양당의 대립 구조가 이때부터 시작됐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 같은 대립 구조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 제도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권력구조에 의해 더욱 심화했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정책 경쟁보다는 오로지 '권력 쟁취'를 위한 제로섬(Zero-sum) 게임으로 변질됐고, 국회는 협치의 장이기보다 차기 권력을 잡기 위한 투쟁의 장으로 전락했다. 정당 이름은 수없이 바뀌었지만, 누가 정권을 잡든 여·야 대립이라는 매커니즘은 변함없이 지난 30여년간 한국정치의 발목을 잡아왔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촛불집회와 태극기부대로 지지자들이 명확히 양분되면서 대한민국은 정치뿐 아니라 국론까지 분열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국회가 상시적으로 마비되는 현상도 잦아졌다. 문재인정부 들어선 검찰개혁·부동산정책 등을 두고 여야가 극한으로 대립했고, 윤석열정부 역시 '여소야대' 정국이 지속되면서 정치는 실종됐다. 게다가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로 대한민국 정치 상황은 암흑기에 들어섰고, 최근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를 놓고 여야 간 실질적 내전 상태로 치닫는 모양새다.
문제는 정치가 극단으로 갈라지면서 폐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 상임위원장 단독 선출로 '반쪽국회'가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21대와 22대 국회 모두 여야가 원구성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상임위원장을 단독 선출하면서 수개월간 파행됐다. 야당은 반발했고 이로 인해 상임위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등 의사결정 기능이 마비되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했다. 법안·예산·감사 등이 이뤄지는 곳에서 진영 싸움만 난무하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갔다. 지역 정치권 한 관계자는 "현재 국회에서 '화약고'라 불리는 법제사법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경우 정상적인 상임위 운영이 실종된 지 오래"라며 "국회가 어디까지 망가질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고 토로했다.
상임위 파행으로 정책 입법 기회를 놓친 경우도 허다하다. 각종 상임위에 민생 법안들이 산적해 있지만, 여야 갈등으로 위원회가 파행되면서 논의할 기회조차 잃어버린 것이다. 실제 21대 국회가 마무리된 2024년 초 '특검법 정쟁'으로 인해 마지막 본회의에서조차 수백 개에 달하는 민생법안 처리가 미뤄져 결국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 건수는 2만7천여건으로, 각 상임위에서 계류 중인 법안(총 1만7천여건)이 60%를 웃돌았다. 지역의 대표적 법안이었던 고준위방폐장특별법은 21대에서 폐기돼 올해 3월에 겨우 처리될 수 있었다.
정부 예산안 처리도 어려움을 겪긴 마찬가지다. 예산안은 정쟁의 장기화로 단시간에 협의를 이루지 못했다. 정부·여당과 야당이 세제·복지·지역SOC 예산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5년 연속 예산안 통과 법정시한(12월2일)을 넘기기도 했다.
이에 양극단으로 분열된 정치 지형을 극복하고 정치적 다양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분출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소선구제를 폐지하고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중대선거구제는 한 선거구(지역구)에서 두 명 이상을 동시에 선출하는 제도다. 한 지역에서 1등만 뽑는 소선거구제와 달리 2·3등 후보도 당선될 수 있는 구조다. 현행 법에선 소선거구제(지역 253석)와 비례대표제(47석) 형태로 양당이 거의 의석을 독점하고 있다. 이는 3당 이상 출현하기 어렵고 지역 편중과 사표라는 부작용도 안고 있다.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정쟁 완화를 위해 다양한 정치세력이 국회에 진입해야 한다"며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영남일보와의 통화에서 "중대선거구제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대구의 경우 동서남북으로 나눠 한 선거구에서 국회의원 여러명을 배출하면 유권자들의 다양한 요구와 목소리를 담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대 엄기홍 교수(정치외교학과)는 5명 이상의 대선거구제를 언급했다. 엄 교수는 "중선거구제로 가게 되면 (한 지역구에서) 2명 또는 3명이 당선될 텐데 이럴 경우 어차피 기존 주요 정당이 다 차지하는 구조가 될 것"이라며 "기존 주요 정당의 기득권 유지밖에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존 구조를 타파하려면 5명은 뽑아야 한다. 이렇게 돼야 소수 정당이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며 "비례대표제를 강화하는 것도 좋다. 다당제가 되기 때문에 양극화는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재훈
서울정치팀장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
장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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