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책임제’라는 데자뷔… 고환율·고물가에 관치(官治) 통할까

  • 구경모(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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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2-22 17:09  |  발행일 2025-12-22
정부, 물가 상승에 품목별 책임제’ 부활
‘물가 안정이냐 전시 행정이냐’…458개 품목 책임관 배치 논란
과거 사례 비추어도 불안한 정부의 선택
근본적인 경제 체질 개선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


이재명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이재명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고환율로 인해 수입물가와 체감물가가 동시에 들썩이자 정부가 '관치의 칼'을 빼들었다. 품목별 담당자를 지정해 가격과 수급을 관리하는 '물가 책임제'를 재가동하기로 한 것이다. 시장 원리에 따라 결정되는 물가 문제를 행정 관리 대상으로 다루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전 정부들 역시 물가 불안 국면마다 품목별 책임 관리 체계를 도입했지만, 가격 안정으로 이어진 사례는 많지 않았다.


기획재정부는 소비자물가를 구성하는 458개 전 품목을 대상으로 물가안정책임관을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각 부처 차관이 소관 품목의 가격·수급을 점검하고 책임지는 방식으로 △농·축산물은 농림축산식품부 △수산물은 해수부 △전기요금은 기후에너지환경부 △석유류는 산업통상부가 담당하는 식이다. 전 품목을 지정할 경우 소관 부처는 10곳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만큼 최근 물가 불안에 대응하는 정부의 강한 위기감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4% 상승해 두 달 연속 올해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자주 구매하는 품목 위주로 구성돼 체감 물가에 가까운 생활 물가지수는 2.9% 오르면서 1년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여기에다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세도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환율은 지난 17일 장중 1천482원까지 치솟으며 8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2월 월평균 환율은 1~19일 기준 1천472.49원으로 지난 7월 이후 6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고환율은 수입 원자재와 소비재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는데, 특히 밀가루·식용유 등 수입 의존도가 높은 가공식품과 의약품, 전자제품 등에서 가격 인상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재명 대통령의 물가 관련 발언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물가 때문에 국민들의 고통이 큰데, 유가 인상과 연동돼서 물가 불안이 다시 시작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언급했으나, 지난 4일 용산 대통령실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는 "물가 안정이 민생 안정의 핵심"이라며 "관계부처들은 주요 민생 품목의 수급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물가 안정을 위한 정책 수단을 선제적으로 동원하라"며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정부의 물가 책임제 재추진은 이같은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지만, 과거 사례를 돌아보면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이명박 정부 시절 '물가관리 실명제'는 쌀·배추·돼지고기 등 50개 필수품을 대상으로 담당 공무원을 지정해 가격을 관리했으나, 성과가 미미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도 2023년 물가 불안 국면에서 '범부처 특별 물가 안정체계'를 가동했지만, 국제 원자재 가격과 환율 변동 등 대외 요인을 극복하지 못해 한계를 드러냈다. 단기적인 안정 효과는 있었으나, 장기적으로 물가 흐름을 바꾸는 데 실패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일각에서는 과거 실패 사례를 알면서도 비슷한 방법을 도입하려는 것은 결국 지방선거를 앞두고 책임을 피하기 위한 전시성 행정이라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적으로 물가 안정은 정권의 지지율과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이라며 "458개 품목에 책임관을 두겠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고, 차관 한 명이 수십 개 품목의 수급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결국 '정부가 이만큼이나 전방위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전시성 행정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근본 처방이 더욱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미국보다 낮은 데다 저성장이 고착화되면서, 환율 상승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만큼 경제 체질 개선과 성장 동력 확보 없이는 물가 안정도 어렵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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