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인생은 짧은데 경험하고 싶은 것은 너무 많다. 역마살 팔자에다가 혈액형이 B형인 탓인지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를 좋아한다. 대한변호사협회장 임기가 끝날 무렵 연임하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다.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가 내외적으로 첨예하게 대립되는 변호사단체를 중도적 입장에서 원만하게 이끌었다는 평가에 더하여 딱히 경쟁자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민의 출발은 이 자리가 인생에서 얼마만큼 가치가 있는지였다. 길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변협회장 임기 2년은 100세 시대라고 하더라도 무려 인생의 2%나 차지한다. 연임까지 하면서 인생의 4%나 소비한다는 것은, "한번 사는 인생, 다양하게 살아 보자"는 평소 신념에 맞지 않았다. 조직 운영에 있어 원칙과 균형의 중요성을 배운 것으로 만족한 시간이었다.
경험의 노마드에 변화가 생긴 것은 SBS 시청자위원회에 참여하면서이다. 민감한 사안의 경우 회사하고는 물론이고 위원들 사이에서도 날 선 주장이 오가지만 감정의 앙금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공정하고 좋은 방송을 만들자는 목표가 같았기 때문이다. 이례적으로 재연임까지 할 정도로 방송의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는 것이 좋았다. 위원회와 회사 간의 긴밀한 소통과 건강한 긴장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를 제대로 배웠다.
종류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다양성을 찾을 수 있음을 경험한 때문인지 최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의 재연임 요청을 수락하였다. 규모가 큰 조직을 제대로 이해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이처럼 민간 영역에서도 상황에 따라 연임이 필요한데, 가장 크고도 중요한 조직인 국가의 운영을 총괄하는 대통령 임기는 헌법에서 무조건 5년 단임으로 묶여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 임기는, 4년에 중임 제한이 없던 1948년 제헌헌법부터 1962년 제3공화국 헌법 임기 4년에 1차 중임 가능, 1972년 유신헌법 임기 6년에 제한 없는 중임 가능, 1980년 제5공화국 헌법 임기 7년에 단임을 거쳐 1987년 현행헌법 제70조는 임기 5년의 단임제를 유지하고 있다.
연임을 반대하는 근거는 이를 허용하면 장기독재의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1987년 이전과 비교할 때 현재 대한민국 국민과 권력 구조는 민주적 성숙도에 있어서 상전벽해 수준이다. 외국과 비교해도 임기 4년에 1회 연임 가능한 미국, 5년에 1회 연임 가능한 프랑스와 독일 등 선진국은 4, 5년 임기에 1회 연임이 일반적이다.
교육, 연금, 노동, 사법 등 국가 정책은 장기적 관점에서 계획되고 추진되어야 한다. 5년 단임제 구조하에서 추진하던 개혁 작업은 대부분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심지어 실패하였다. 정부가 바뀌면 정책이 뒤집히고 이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국민의 몫이었다.
정책의 지속성과 책임정치 실현, 탄핵제도를 비롯하여 삼권분립에 근거한 절대권력에 대한 견제 시스템 존재, SNS를 비롯한 언론과 시민사회의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 기능, 전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국민의 투철한 민주주의 의식 등에 비추어 볼 때 이제는 과거의 틀을 벗고 대통령 연임 제한을 유지할 것인지 여부를 진지하게 논의할 시점이다.
물론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는 헌법 제128조 제2항의 정신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것도 국민의 선택인데 제한할 필요가 있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 맨다는 오해를 받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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