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AI(왼쪽)와 진단 대결을 펼치고 있는 곽재혁 신경과 전문의. <대구시의사회 유튜브 '메디톡톡' 화면 캡처>
AI(인공지능)의 진단 능력이 의사의 축적된 임상 경험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20여년간 환자를 돌봐 온 현직 베테랑 의사와 최신 의료AI 간 맞대결을 담은 유튜브 영상이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영상에서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한 듯 희귀질환을 척척 짚어내며 의사를 긴장시켰다. 하지만 복잡한 의학 시험에서는 베테랑의 직관을 넘지 못했다. 특히 환자의 마음을 다독이려는 의사의 '따뜻한 배려' 앞에서는 AI도 어김없이 한계를 드러냈다.
대구시의사회는 최근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곽재혁(49) 신경과 전문의와 의료AI 간 대결을 다룬 '메디톡톡 EP.02' 영상을 공개했다. AI의 발전 수준을 가늠해 보자는 취지로 기획된 이 대결은 2개 라운드(병명 추론과 객관식 의학시험)로 나뉘어 진행됐다. 먼저 1라운드에서 AI는 생각보다 엄청난 실력을 드러냈다. 10년 전 이세돌 바둑기사를 상대로 보여준 알파고를 보는 듯 충격적이었다.
주어진 문제는 건강검진 중 간 수치 이상이 발견돼 병원을 찾은 26세 여대생의 파편화한 초기 질환 정보를 바탕으로 병명을 추론하는 것이었다. '술은 하나요' '기저질환 있나요' 등 AI와 곽 전문의는 병명 파악을 위한 질문을 던지는 등 팽팽한 신경전을 펼쳤다. 승부는 싱겁게 끝났다. AI가 '듀시엔 근이영양증 보인자 근병증'이라는 희귀 유전질환을 단숨에 도출해낸 것.
2라운드 객관식 문제 풀이에서는 인간의 저력이 빛났다. 의사 국가고시 및 전문의 기출문제로 구성된 총 10문항에서 곽 전문의가 60점을 기록하며 AI(50점)를 누르고 판정승을 거뒀다. AI가 방대한 의학논문을 학습했음에도 실제 진료현장의 복합적인 변수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데는 한계를 보인 것이다. 오랜 임상 경험이 한 수 위였음을 보여준 결과로 평가된다.
<그래프=생성형 AI>
대결 직후 인터뷰에서 곽 전문의는 단편적인 승패의 결과보다 AI가 지닌 근본적인 맹점에 주목했다. 방대한 지식을 뽐내는 AI가 정작 현실에서는 치명적인 '오독(誤讀)'을 범하고 있다는 것. 그는 "요즘은 환자들이 먼저 AI로 증상을 검색하고 처방약까지 알아서 오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 비뇨기과에서 의뢰받은 한 환자의 일화를 꺼냈다.
환자 병증은 스트레스가 주원인이었다. 다만 의료진은 '정신과적 요인'이라는 직언이 자칫 환자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신경성'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환자가 이 단어를 그대로 AI에 검색하면서 벌어졌다. AI는 인간의 언어에 담긴 섬세한 배려를 읽어내지 못한 채 '신경성 방광염'이라는 단어 자체만 곧이곧대로 해석했다. 그 결과 단순 스트레스성 질환자에게 뇌전증 등에 쓰이는 '항경련제'를 추천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곽 전문의는 10년 전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9단 간 세기의 대국을 소환하며 AI에 대한 맹신을 경계했다. 그는 "당시 이세돌 9단이 'AI가 평소에 너무 잘하니까 지금 둔 수가 실수인지 아닌지조차 모르겠다'고 했던 말이 뇌리에 남는다"며 "의료AI 역시 뛰어난 성능 이면에 이 같은 치명적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어 반드시 인간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맞대결 소감을 묻자 곽 전문의는 기술의 진보를 겸허히 인정했다. 그는 "프로그램이 고도화할수록 데이터 연산과 지식 싸움에서 인간이 AI를 이기기는 점차 힘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다만 환자의 미세한 감정선을 살피고, 상처받지 않도록 우회적으로 설명하는 섬세한 소통은 인간 의사만의 고유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다가올 미래는 AI가 진료실을 장악하는 게 아니라 인간과 AI가 조화를 이루는 시대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그는 "앞으로는 AI가 기본 데이터를 분석하고, 의사가 최종 판단과 소통을 전담하는 '협진' 형태의 의료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의 초기 정보를 바탕으로 질환을 맞히는 1라운드 '병명 추론 대결'의 진행 방식을 설명하는 그래픽 화면.<대구시의사회 유튜브 '메디톡톡' 캡처>
1라운드 '병명 추론 대결'에서 환자의 가족력 등 추가 정보를 파악하며 의료AI와 팽팽한 진단 대결을 벌이고 있는 곽재혁 신경과 전문의. <대구시의사회 유튜브 '메디톡톡' 화면 캡처>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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