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친애하는 나의

  • 김보미 작곡가·예술기획자
  • |
  • 입력 2026-04-27 11:35  |  발행일 2026-04-28
김보미 작곡가·예술기획자

김보미 작곡가·예술기획자

대구는 볼 게 없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어릴 때는 그 말이 맞는 줄 알았다. 화려한 전시도, 거대한 랜드마크도 부족한 도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오래 살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이 도시에는 '볼 것' 대신 '남아 있는 것'이 많았다.


처음 지역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 건 남구 배나무샘골 전시관을 기획하면서부터였다. 예술가가 도시를 바꿀 수 있다는, 어쩌면 조금은 원대한 생각을 그때 처음 품었다. 실제로는 아주 작은 움직임들이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변화의 기미가 있었다.


작업실에서 혼자 음악을 만들던 시간을 벗어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색종이를 가위로 오리는 단순한 수업에서도 소녀처럼 웃던 할머니들의 표정을 보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감각을 마주했다. 작업실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예술이 사람에게 닿는 방식이었다.


복현1동 피란민촌의 이야기를 담은 프로젝트에서도 비슷한 순간들이 있었다. 주민들과 함께 글을 쓰고, 가사를 만들고, 마을의 노래를 만들었다. 처음 완성된 가사를 함께 읽던 날, 마을 공동체 회장님이 눈물을 흘리던 장면이 오래 남아 있다. 그 이후로는 수업이 이어질 수록 서로 더 가까워졌다. 어느 날은 방울토마토를, 어느 날은 대추를 한 봉지씩 사들고 오셔서 입안에 하나씩 넣어주시곤 했다. 그 마음을 어떻게든 예술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리는 음식이 많은데, 생각할 새도 없이 들어온 대추가 아삭하고 달았다.


달성 하빈들소리 공연에서 관객들과 즉석으로 함께 노래를 부르던 순간도, 수창동의 청춘맨숀에서 '당신의 가을에게'라는 이름으로 나무를 만들고 사람들이 나뭇잎 포스트잇을 붙여가던 장면도 떠오른다. 어느새 수많은 낙엽이 모여 하나의 가을이 완성되던 그 풍경을 나는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모인 장면들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었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 감정으로 남아 있다. 나는 그 많은 순간들을 친애한다.


기술이 빠르게 바뀌는 시대에 예술가는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기보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 사람인가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새로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쌓여 있는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는 이 도시의 따뜻함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그 안에 쌓여 있는 것들을 찾아내고, 오래 바라보는 쪽에 더 가깝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무엇이 부족한지를 묻기보다, 무엇이 이미 남아 있는지를 먼저 떠올린다. 애정하는 기억들을, 나는 계속 노래하고 싶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생활/문화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