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정부 대리해 론스타 분쟁 완승…고향 대구의 공익정신 실천한 것”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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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28 16:54  |  수정 2026-04-28 18:30  |  발행일 2026-04-28
■대구출신 김준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13년 걸친 지리한 국제 소송전
체중 크게 줄 만큼 힘들었지만
국민에 좋은 결과 안겨줘 다행

사회 기여하는 사람이 되어라
부모 가르침따라 변호사 선택

대구경제 전국 꼴찌 듣고 충격
고향 발전에는 기꺼이 나설 것
대구출신 김준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소송에서 완승하기까지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법무법인 태평양 제공>

대구출신 김준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소송에서 완승하기까지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법무법인 태평양 제공>


우리나라 사법 사상 소송가액이 가장 높았던 사건은 무엇일까.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6조원대 배상책임(ISDS)이 대표적이다. 2012년 시작된 사건은 지난해 말 대한민국의 완승으로 막을 내렸다. 대구 출신으로, 13년에 걸친 론스타 소송을 승리로 이끈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준우 변호사는 "론스타 사건은 정부를 대리하는 성격인 데다 소송과정에서 거물급 인사들의 언급이 많아서 정치적 민감성이 극도로 높았다. 개인적으로 5Kg 이상 빠질 만큼 힘들었지만 국민들께 좋은 결과를 안겨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밝은 웃음을 지었다.


◇집념의 변호인 '론스타 킬러'


1990년대 초, 김 변호사는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대 외교학과에 입학했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에 무표정한 얼굴, 단답형 말투가 특징인 그를 향해 선배들은 "저 녀석 진짜 무섭다"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최근 서울 종로구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만난 김 변호사에게선 더 이상 예전의 딱딱하고 무서운 이미지를 찾을 수 없었다.


"글쎄요, 어쩌면 위장 보호막이었을지 모르죠. 속으로는 순하고 여린데 낯선 타지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일부로 경직된 모습을 보여준 것 아닐까요."


선배들이 일찌감치 간파한 촉이 맞았을까. 김 변호사에겐 무시무시하게도 '론스타 킬러'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관련 분쟁에서 수차례 승전보를 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얻었다. 단순히 한 번의 승소를 하기 보다 론스타라는 거대 자본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수조 원대 공세를 펼칠 때마다 논리적으로 방어하고, 격파해왔다.


한국 법조사에서 '론스타' 사건은 매우 상징적이고, 비중있는 이슈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2012년 한국 정부의 부당한 개입으로 외환은행 매각이 지연되어 손해를 보았다며 6조원대의 배상을 요구했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한 첫 번째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S)이었다.


10년에 걸친 지리한 싸움 결과 재판부는 2022년 한국 정부에게 약 2천800억원의 배상을 하라고 판결했다. 나쁘지 않은 결과였지만 변호인단은 그것마저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끝까지 가보자"며 취소 신청을 선언했을 때만 해도 '쓸데없는 예산 낭비가 아니냐'며 안팎의 비판은 거셌다.


김 변호사와 동료들은 차근차근 취소 준비에 착수했다. 판정문 글자를 하나하나 뜯어보며 허점을 찾아냈다. 소송 전략상 밖으로 내비칠 수는 없었지만, 내부적으로는 "해볼 만하다"는 승부 근성이 끓어올랐다. 결과는 대승리, 정부의 배상 책임 '0', 소송비용도 론스타가 책임지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대한민국이 국제법 무대에서 명실상부 강국으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국제중재는 단심제가 원칙이라 취소될 확률이 아주 낮습니다. 솔직히 저희는 우리가 이길 거라 확신하고 있어 놀랍지 않았지만 다른 법조인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결과였죠. 법조계 후배들한테 "형, 이거 어떻게 된거야?" 하는 전화를 꽤 받았답니다."


김 변호사와 론스타의 인연은 깊다. 태평양 소속으로 론스타와 관련된 사건만 4~5건을 맡았다. 국내소송부터 국제중재까지, 그는 론스타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저격수'로 성장했다.


"론스타 이전에는 우리 사회가 사모펀드에 대해 잘 몰랐죠. 이들이 어떻게 자금을 모으고, 어떻게 이익을 실현하며, 정치적 의사결정에 어떻게 개입하는지 등 론스타 사건을 통해 우리나라도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그동안 만났던 공무원들이 과장급에서 장관급으로 올라가는 세월 동안 저도 함께 나이를 먹었네요."


◇영남사람들 '선공후사' 정신


"영남 사람들에게는 특유의 '공동체' 마인드가 있다는 걸 서울에 와보고 나서 느꼈습니다. 경북 양반가 선비들이 강조하던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이랄까요? 변호사를 선택한 것도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라기보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전문직이라는 점이 컸습니다."


그의 단단한 직업윤리 밑바닥에는 고향 대구와 부모님의 가르침이 흐르고 있다. 버스 운전을 하며 자식들을 키워낸 아버님과 정 많은 어머님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공동체와 상생하는 삶의 자세는 법무법인 내 '북한 팀' 활동으로도 이어졌다. 2005년,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시절부터 통일 문제와 탈북민 지원 사업에 매진했다. 언젠가 올 통일 이후의 세상을 준비함으로써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는 후문.


공익을 향한 여정은 가정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아내는 시민 운동가 겸 공익 변호사로 활동한 더불어민주당 김남희 의원이다. 부부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사내 커플 1호로 시작해 지금은 각자의 위치에서 사회를 바꾸고 있다. 아내가 시민단체 참여연대 활동을 거쳐 정치권에 입문할 때도 그는 기꺼이 '서포터'를 자처했다.


"저희 부부는 서로 독립적인 사회인으로서 존중합니다. 아내가 정치한다고 했을 때 저는 '나쁜 짓 하고 살기는 이제 글렀다'며 웃어넘겼죠. 저희는 서로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활동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정치인의 남편으로 사는 것이 때론 피곤할 수도 있지만, 그 역시 사회를 위한 비용이라 생각합니다."


◇수도권 집중은 국가적 위기


고향 대구의 열악한 경제상황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10년도 더 된 것 같아요. 명절에 고향을 갔는데, 아버지께서 '대구 경기가 전국 최저'라는 말을 하셨죠. 경제가 안좋아졌다는 거라면 몰라도 전국에서 가장 안좋다는 게 말이 되나 하고 처음에는 믿지 않았어요. 굉장한 충격이었어요."


그는 언젠가 나이가 들면 고향으로 내려가 대구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마음도 살짝 내비쳤다.


"수도권 집중 현상은 이제 국가적 위기입니다. 대구도 단일 도시의 한계를 넘어 구미, 포항 등과 연계된 광역 경제권을 형성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동문회에 가보면 예전의 활기를 잃어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국제중재에서 쌓은 경험이 고향 발전에 조금이라도 쓰일 곳이 있다면 기꺼이 나서고 싶습니다."


50세,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넘긴 김 변호사는 미래 세대에게 미안함과 당부의 말을 동시에 전했다.


"저희 세대는 성장하는 시대에 희망을 품고 살았지만, 지금 청년들은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열립니다. 제가 '국제중재'라는 생소한 분야에 맨몸으로 부딪혀 길을 냈듯, AI와 새로운 기술이 지배할 미래에도 부딪히고 깨지는 개인의 도전은 반드시 가치를 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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