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받은 뒤에도 치료비와 간병비를 계속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피해자들은 치료·간병비 지원을 이어가겠다는 정부 방침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구체적인 배상 기준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데다 피해자 인정을 받기 어려운 현실은 여전하기 때문에 이번 대책이 '반쪽짜리'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영수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이 지난해 12월 24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실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종합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해배상금 지급 결정기준, 신청절차 마련
2일 기후에너지환경부(이하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에 대한 피해배상 체계를 확립하고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및 지원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전부개정안을 다음달 13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오는 10월 8일 시행될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에 맞춰 손해배상 신청 방법과 결정 기준, 배상 재원 분담 방안 등을 구체화한 것이다. 앞서 개정된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에선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참사'로 규정하고, 기존의 기업 책임 중심 '피해구제 체계'를 국가·기업이 함께 배상하는 체계로 전환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국가 역할을 강화하고자 기존 피해구제위원회는 국무총리 소속 배상심의위원회로 개편된다. 산하에 배상지원단과 전문위원회가 신설될 예정이다. 의료·법률 상담 등 피해자 지원을 전담하는 '가습기살균제피해관리센터'도 새로 설치된다.
배상 재원 확보를 위한 기업 분담 체계도 조정된다. 원료 사업자의 분담률은 현행 가습기 살균제 사업자가 납부하는 분담금의 25%에서 45%로 높아진다. 원료 사업자 분담률 상향은 가습기 살균제 제품 사업자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사안으로 알려졌다.
이번 개정안은 손해배상 결정기준과 신청절차를 한층 구체화했다. 우선,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사망한 경우 유족배상·장례비·위자료를 지급하도록 했다. 건강 피해를 입은 경우엔 치료비·간병비·휴업손해·장해배상금·위자료를 손해배상금으로 지급하도록 규정했다. 치료비·간병비는 손해배상을 받은 이후에도 별도 발생시 계속해서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환경부 환경피해구제과 손삼기 과장은 "치료비와 간병비는 과거 지출분과 향후 소요분을 합산해 산정하되, 피해자가 원하면 일시금으로 받지 않고 병원 진료 때마다 지급받을 수 있도록 선택지를 뒀다. 언제 건강 상태가 악화될지 모르는 피해자들의 불안감을 고려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피해 인정 문턱 여전"…피해자들 우려
지난해 12월 30일 영남일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태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하루속히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남일보DB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인 서영철(69·달성군 화원읍)씨가 산소 발생기를 착용한 채 앉아 있다. 서씨는 폐 기능 저하로 외출 시 산소 발생기를 항상 휴대해야 한다. 서영철씨 제공
피해자들은 손해배상 이후에도 치료비와 간병비 지원을 지속하겠단 방향에 의미를 두면서도, 구체적인 배상 기준과 미인정 피해자 대책이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대구 동구 방촌동에 거주하는 이태호(70·가습기살균제 피해권익보호회 대표)씨 가족은 2011년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이 알려져 정부가 사용 중단을 권고하기 직전까지 약 8년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이로 인해 이씨는 기관지확장증과 폐섬유화 증상을 겪고 있지만, 아직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상황.
이씨는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이런 지원 체계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면서 "4개 대학병원에서 기관지확장증 소견을 받았고, 폐섬유화 증상도 있다. 그런데도 올해 1월 피해 불인정 통보를 받았다. 다시 이의신청을 하고 추가 자료까지 제출해 현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피해자 인정 기준부터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교통사고처럼 바로 드러나는 문제가 아니다. 독성 물질 피해가 1년 뒤 나타날지, 10년 뒤 나타날지 알 수 없는데 노출 사실만 확인되고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은 제도 밖에 놓인다"고 했다.
2019년 '초고도 피해자'로 인정받은 서영철(69·달성군 화원읍)씨 역시 인과관계가 추정되는 질병을 시행령에 구체화할 것을 촉구했다. 서씨는 "미인정자가 아직 2천명 가까이 남아 있는 만큼 파생·전이질환도 배상 범위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시행령이 확정되기 전에 환경부 장관이 직접 법학·의학·노동경제학 전문가와 피해자들이 참여하는 공청회를 주재해야 한다"며 "배상 기준이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마련되려면 배상심의위원회 구성에도 피해자들이 원하는 인사가 포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4월말 기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청자는 8천79명이다. 이 중 피해 인정을 받은 사람은 75%가량인 6천11명이다. 대구에선 신청자 362명 중 267명이, 경북에선 신청자 309명 중 227명이 각각 피해를 인정받은 상황이다.
조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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