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군구 재정점검 시리즈] 재난예비비, 매년 편성·집행 0원… 안 쓰는 안전예산, 어디로 가나

  • 김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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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6-09 20:56  |  수정 2026-06-09 21:23  |  발행일 2026-06-09
대구시·8개 구군 5년 결산 분석… 매년 수십억 편성하고 결산은 ‘0원’ 반복
안 쓴 재난예비비는 일반 세입으로 환류
시민단체 “재난 명분 예산이 살림돈으로 흘러가는 구조”
재난 목적 예비비 편성은 수십억 집행은 0원 <AI이미지 생성>

재난 목적 예비비 편성은 수십억 집행은 0원 <AI이미지 생성>

기후위기로 폭염·집중호우 등 재난 위험이 일상화하고 있지만, 대구시와 다수의 기초지자체에서 매년 편성해 온 '재난목적예비비'의 결산상 집행 실적은 사실상 '0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수년째 같은 상태가 반복되고 있다.


재난예비비는 회계연도가 끝나면 자동으로 불용 처리돼 다음 해 일반세입(순세계잉여금)으로 흡수된다. 즉 '재난 대비'라는 명분으로 잡아둔 안전예산이 결국에는 지자체의 일반 살림돈으로 흘러간다는 의미다. 재난을 빌미로 한 예산의 과다 편성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자체 측은 "실제 재난 대응은 일반예비비와 재난관리기금 등 다른 재원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해명하지만, '재난목적'으로 별도 항목까지 만들어 매년 수십억원씩 편성해 온 예산이 한 푼도 쓰이지 않고 일반세입으로 환류되는 구조가 정상적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 5년간 편성, 5년간 '0원'


영남일보가 행정안전부 지방재정365와 각 지자체 예산·결산 자료를 분석한 결과, 대구시와 8개 구·군은 최근 수년간 재난목적예비비를 꾸준히 편성해 왔지만, 결산상 집행 실적은 거의 없거나 전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먼저 2024년 대구시는 재난예비비 20억원을 편성했지만, 결산상 집행액은 '0원'이었다. 대구시는 2025년과 2026년에도 각각 20억원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해당 연도 결산 집행 내역은 이듬해 8월에 공개된다.


미집행은 일선 구·군도 마찬가지다. 2024~2026년 매년 20억원을 편성한 대구 중구의 2024년 집행액은 '0원'이었다. 북구는 2024년 25억원에서 2026년 3억원으로 축소했지만, 2024년 집행실적은 역시 0원이었다. 이외 2023~2024년 결산서를 확인한 결과, 상당수 지자체에서 실제 집행 실적이 잡히지 않았다.


지난해 대구 북구 노곡동 침수 피해 지역 상가에서 주민들과 공무원들이 전날 침수된 가전제품과 집기류를 세척하고 분류하며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다. 노곡동 일대는 전날 집중호우로 주택과 상가 다수가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영남일보 DB>

지난해 대구 북구 노곡동 침수 피해 지역 상가에서 주민들과 공무원들이 전날 침수된 가전제품과 집기류를 세척하고 분류하며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다. 노곡동 일대는 전날 집중호우로 주택과 상가 다수가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영남일보 DB>

재난예비비는 태풍·폭염·혹한 등 예측하기 어려운 재해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예비비로, 지자체가 일반예비비와 별도로 편성할 수 있도록 허용된 재원이다. 지방재정법상 일반예비비는 예산 총액의 1% 이내로 상한이 정해져 있는 반면, 재난예비비의 편성 규모는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갈수록 대형화·복합화 양상을 띠는 재난 추세를 고려하면, 재난예비비를 여유 있게 확보해 둘 필요성 자체는 분명하다.


문제는 '여유분'이 실제 재난 대비 활동에 거의 쓰이지 않은 채 누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쓰지 않을 것을 사실상 알면서도 큰 규모로 편성하고 연말에 불용 처리해 일반세입으로 흘려보내는 관행이 굳어지고 있다. 시민이 낸 세금으로 마련된 안전예산이 재난 대비라는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일반 재정의 보조 재원으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재난 대응은 다른 재원으로 한다?


대구시는 예비비를 "예측할 수 없는 재난이나 긴급 지출에 쓰는 예산"으로 정의하며, 폭염처럼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사안은 본예산이나 중앙정부 교부세 등을 통해 대응한다고 설명했다. 대구시 재난안전실 관계자는 "재난예비비 집행률이 낮다고 해서 재난 대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지난해 북구 노곡동 침수 피해 대응 때는 재난예비비 8억8천만원을 실제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재난 대응 재원은 재난목적예비비 외에 일반예비비와 재난관리기금 등으로 분산돼 있다"며 "재난목적예비비는 말 그대로 긴급할 때를 제외하고는 사용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의회 승인도 필요하고 잘못 쓰면 감사 대상이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 대구시가 지난해 재난관리기금 106억5천700만원을 집행한 사실이 '2025년도 재난관리실태 공고'에서 확인됐다. 주요 사업은 지하차도 자동 차단시설 설치 12억원, 집중호우 피해 도로시설물 복구 5억원, 의사 집단행동 대응 재난관리 5억1천600만원 등이다.


여기서 두 재원의 회계 구조 차이가 드러난다. 재난목적예비비는 1년짜리 일반회계 예산으로, 안 쓰면 불용 처리돼 일반세입으로 환류된다. 반면 재난관리기금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67조에 따라 매년 법정 의무로 적립되는 별도 기금이다. 평상시 예방 사업까지 폭넓게 쓸 수 있고 미사용분은 다음 해로 이월 누적된다. 대구시 관계자가 앞서 인용한 100억원대 집행은 모두 재난목적예비비가 아니라 재난관리기금에서 나왔다.


문제는 재난관리기금이 100억원대 사용처를 매년 찾아내는 동안, 같은 시기 재난예비비는 '쓸 일이 없다'는 이유로 0원에 가깝게 방치되는 비대칭이다. 같은 재난을 다루는 두 재원이 한쪽은 활발히 굴러가고 다른 한쪽은 매년 불용되는 구조라면, 재난예비비를 매년 수십억원씩 별도 항목으로 잡아 두는 행정 관행 자체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연일 강타한 폭설로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한 대구경북지역. <영남일보 DB>

연일 강타한 폭설로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한 대구경북지역. <영남일보 DB>

통계서 사라진 81억원 '특이 사례'


특이한 사례는 달서구다. 지방재정365 공시상 달서구의 재난목적예비비는 2024~2026년 모두 '0원'으로 잡혀 있다. 그러나 영남일보가 달서구 예산서를 직접 확인한 결과, 재해·재난 대응 성격의 예산은 지난해 81억원, 올해 33억원 규모로 일반예비비 체계 안에서 운용 중이었다. 지방재정365의 'RD14' 지표는 재난목적예비비를 별도 항목으로 편성한 경우에만 집계하기 때문에, 일반예비비 하위 항목으로 묶인 달서구 예산은 통계에서 통째로 빠진 것이다. 통계상 '0원'이지만 실제로는 81억원인 셈이다.


달서구청 유상표 예산팀장은 "재난목적예비비는 산불·태풍 등 법령상 재난 상황에만 사용할 수 있지만, 일반예비비는 재난을 포함해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며 "예비비 규모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굳이 재난목적예비비를 별도 항목으로 둘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사용하지 않은 예비비는 연말 불용 처리된 뒤 순세계잉여금으로 넘어가는 구조여서 예산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달서구를 제외한 대구시 본청과 나머지 구·군은 모두 재난목적예비비를 별도 항목으로 편성하고 있다. 이처럼 같은 광역 안에서도 회계 분류 방식이 제각각이라 통일된 잣대로 재난예산을 비교·감시하기 어려운 구조다.


◆반복적인 낮은 집행률은 점검 대상


전문가들은 반복적인 낮은 집행률 자체를 점검 대상으로 본다. 경북대 하혜수 교수(행정학부)는 "재난목적예비비는 재난 발생 시 쓰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재난 대비 활동에도 활용할 수 있는 예산"이라며 "수요가 전혀 없는데 매년 상당 규모를 편성하지는 않는다. 항목을 편성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용 가능성을 예상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하 교수는 특히 대구가 폭염 등 기후재난 위험이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도시라는 점을 들어 "편성 취지에 맞는 적극적 활용이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재난 자체가 크지 않아 사용하지 않았다는 시와 구청의 설명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라며 "단순 집행률 숫자만 볼 게 아니라 실제 재난 상황과 대응 사업을 함께 봐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우리복지시민연합 은재식 사무처장은 "재난예비비는 시민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예산"이라며 "수년간 사실상 전액 불용 수준이 반복된다면 예산 편성 취지와 실제 행정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은 사무처장은 "반복적으로 집행률이 0%에 가까운 상황이 이어진다면 시민들은 편성 목적과 실제 운영 사이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서 "재난이 일상화하는 시대에 '쓰이지 않는 안전 예산'이 지자체 재정 운용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그 회계 구조부터 투명하게 제시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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