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한 민둥산이 '영일만 기적'으로
2천400만 그루 나무가 품은 사연들
까마귀 닮은 검은 바위 마을 '오도'
오만 사람 닭살 돋게 하던 봄날
묵은봉에 올려놓은 홍반장 순임호
꼭두의 병원 문 앞에 펼쳐 모래밭
2300만년 전 주상절리 위로 피어난
연인의 애절한 '사랑해'와 '두려워'
'오도(烏島)'는 '까마귀처럼 까만 섬'이란 뜻이다. 마을 앞바다에 검은 바위섬이 까마귀처럼 모여 있어 생긴 이름이다. 마을 뒷산은 묵은봉(舊烽山)이다. 예부터 불려온 정식 이름이라는데, 봉화가 있었거나 경계가 됐던 산인가보다. 높이는 고작 126m 남짓하지만, 숨이 턱 막히는 장쾌한 조망을 가졌다.
그 봉우리에 배 한 척이 놓여 있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서 두식이 올려다 놓은 배다. 혜진이 공진에 머물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리고 혜진과 두식이 영원히 함께하기로 했을 때, 두 사람은 이곳에 있었다.
"늘 이렇게 잔잔하지만은 않을 거야. 풍랑도 있을 거고, 태풍이 불어 닥치는 날도 있을 거야." "비 좀 맞으면 어때. 바람 좀 불면 어때. 우리가 같이 한 배를 탔는데."
2007년, 한국 사방사업 100주년을 기념해 조성한 것이 오도리 '사방기념공원'이다. 전국 유일의 공원이며 우리 근대의 시간과 그 모든 노고에 대한 기억이다.
◆사방기념공원
묵은봉 아래에 '사방기념공원'이 있다. 사방사업은 '국토의 황폐화를 방지하고 산사태 등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토를 보전'하기 위한 일련의 작업을 뜻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우리의 전 국토는 황폐해졌다. 산들 대부분은 형편없는 민둥산이었고 큰비만 내리면 무너졌다.
1970년대 초반, 정부는 전국토를 푸르게 만들기 위한 녹화사업을 추진했다. 오도리 지역은 사업 초기인 1975년부터 5년간 360만 명이 투입됐다. 옹벽을 쌓고, 떼를 붙이고, 2천400만 그루의 나무를 이곳 묵은봉 기슭에 심었다. 사방사업 후 전 세계가 놀랐다. '영일만의 기적'이라고도 했다. 오도리는 사방사업을 단기간에, 성공적으로 이뤄낸 대표적인 지역이었다.
이후 자연적 혹은 인위적으로 훼손된 자연을 복원하기 위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실시한 특수산림생태복원 지역이 묵은봉을 중심으로 아주 넓게 형성돼 있다. 그리고 2007년, 한국 사방사업 100주년을 기념해 조성한 것이 오도리 '사방기념공원'이다. 전국 유일의 공원이며 우리 근대의 시간과 그 모든 노고에 대한 기억이다.
공원은 크게 사방 관련 자료를 모아놓은 실내 전시실과 실제 시공 현장을 재현한 외부 공원으로 구성돼 있다. 주차장에서 언덕길을 오르면 드넓은 잔디광장에 다양한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고 하늘을 담은 잔잔한 수공간이 펼쳐진다.
사방사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재현돼 있는 산지사방 전시장을 지나면 억새밭이 손짓하는 바람의 언덕이다. 드라마 '스프링 피버'에서 옻닭을 먹고 옻이 오른 선재규(안보현)에게 윤봄(이주빈)이 연고를 발라주던 장소가 사방기념공원의 잔디밭이다. 봄의 손길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선재규가 벤치를 번쩍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던 장면, 옻닭은 저들이 먹었는데 오만 사람 닭살 돋게 만들었던 그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2023년 MBC드라마 '꼭두의 계절'에서 사방기념공원은 '영포공원'으로 등장한다. 갑자가 사라진 꼭두(김정현)와 꼭두를 찾아다니던 한계절(임수향)이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꼭두가 무사였던 전생의 한 장면을 떠올린 곳이기도 하다.
사방기념공원에서 묵은봉 정상까지 가는 길은 두 가지다. 산허리를 조곤조곤 돌아 오르는 완만한 임도는 750m, 바람의 언덕에서 계단으로 곧장 오르면 400m다. 특히 일직선으로 오르는 계단은 아찔한 풍광을 선사한다. 뒤돌아보면 바다가 성큼 다가와 있어 계단이 바다로부터 걸어 나오는 듯하고 쑥쑥 자라난 나무들의 우듬지 사이로 오도리의 집들이 보였다가 이내 바다와 하늘뿐이다. 정신을 붙잡으려 몇 단을 놓친 것 같긴 한데, 계단은 355개 정도 된다.
정상에 닿기 전 전망대와 관해루가 있다. 고려시대 오도리 일대는 '관해도'라 불렸다고 한다. '바다를 조망하는 섬'이다. 예나 지금이나 아침 해가 떠오르는 풍광이 아름답기로 이름나 있다. 작은 어촌마을이었던 관해도는 뒤로는 곤륜산이 영일만을 바라보며 아침 해가 떠오르는 절경이 아름답기로 이름났다고 한다. 관해루에서 몇 미터만 가면 묵은봉 정상이다. 벤치만 놓여 있던 묵은봉에 지금은 두식의 배가 있다.
"진짜 배가 있네. 누가 언덕 위에다가 배를 올려놨대?" 갯마을 차차차 1화에서 공진에 머물기로 결심한 혜진은 홍반장을 찾아 올라온 이곳에서 처음 배를 보았다. 그리고 혜진과 두식의 마음이 점점 깊어질 즈음 이곳에서 혜진이 물었다. "아니 근데 왜 이렇게 높은데다 올려놨어?" "평생을 바다에서 지낸 친구라 공진구경 실컷 하라고 올려놨어. 사실 이거 우리 할아버지 배였거든." 사실 두식은 두려웠다. 부모님, 할아버지, 선배. 사랑하는 사람들의 계속된 죽음이 두식의 마음속에 상처를 만들었고 그렇게 쌓이고 쌓인 상처는 어느덧 죄책감이 됐다. 혹시 나 때문일까, 내가 사랑해서일까 라는 죄책감의 크기만큼 두려움 또한 컸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또 내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두식이 이곳에 배를 올려둔 것은 "떠나가지 못하게, 움직이지 못하게, 잡아두고 있는 거야."
갯마을 차차차의 마지막 장면은 혜진과 두식의 웨딩촬영이다. 마을 사람들의 극성에서 도망쳐 둘은 묵은봉까지 달려왔다. "이 배 이름이 순임호였어?" "우리 할머니 함자야." "할아버지가 진짜 사랑꾼이셨다. 그런 것 좀 배우지. 이 배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거면 나 여기다가 쪼그맣게 윤혜진이라고 써 주면 안 돼?" "어, 안 돼. 앞에다가 써 줄게. 대문짝만 하게." "알았어. 내가 맨 앞에서 홍반장 가는 길을 활짝 열어줄게."
두 사람이 손잡고 공진을 향해 달려 갈 때 멀리 보이던 수평선은 참 찬란했다. 호미곶이 아슴푸레하다. 남서쪽으로는 굴렁굴렁 이어지는 숲의 덩어리가 장중하고 동북쪽으로는 청진리 항구에서 조사리 너머의 곶들까지 해안선이 평화롭다. 저 아래 오도리 마을이 환하다.
오도리에는 2300만년 전 화산이 터지면서 흘러나온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주상절리가 있다. 겉으로는 3개 또는 4개로 나눠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커다란 주상절리다.
◆오도리
오도리는 조용하고 한적한 갯마을이다. 작은 간이 해수욕장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반짝거리고 너른 바다에는 오도라는 이름을 선사한 검은 바위섬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섬은 그저 섬이 아니다. 2300만년 전 동해가 열릴 때, 화산이 터지면서 흘러나온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주상절리다. 겉으로는 3개 혹은 4개의 작은 섬으로 나뉘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거대한 주상절리 구조가 연결된 형태다.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를 보이는데, 바다와 맞닿은 동쪽은 파도의 강한 침식작용으로 평평한 파식대가 형성돼 있고 침식이 상대적으로 약한 서쪽은 다양한 각도의 경사진 주상절리가 분포해 있다.
이처럼 한 장소에서 다양한 주상절리의 단면과 구조를 동시에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드문 사례다. 자연이 빚어낸 기하학적 구조와 수천만 년의 시간이 만든 저 풍경은 국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오도리 해수욕장에는 몇 년 전부터 작은 카페와 식당이 촌을 이루며 입소문을 탔다. 2023년에는 드라마 '꼭두의 계절'의 배경이 되며 더욱 관심을 끌었다.
오도리 간이 해수욕장은 아는 사람만 알음알음 찾아들던 해변이다. 몇 년 전부터 아기자기한 카페와 식당, 민박들이 촌을 이루며 입소문이 났고, 2023년에는 드라마 '꼭두의 계절'의 주 촬영지로 등장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꼭두의 계절'은 전생에서 현생으로 이어진 두 연인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에 코믹 요소가 더해진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다. 꼭두는 99년마다 인간에게 천벌을 내리러 이승에 내려오는 사신으로 제 잘난 맛이 존재의 이유다.
계절은 3류 의대를 나와 세상에 치이느라 자존감이 바닥인 인간 여자 의사다. 꼭두는 계절을 만나 사랑하고 생전 처음 두려움을 느낀다. 내 가난한 마음을, 내 살인의 역사를, 내 남다른 정체를 계절이 알까봐 두려워진다. 계절은 나만의 특별함을 알아보고 응원하는 꼭두를 만나 사랑하고, 그가 세상에서 사라질까, 나 혼자 세상에 남겨질까봐 두려워진다. 두 사람에게 '사랑해'와 '두려워'는 동의어다.
오도1리 포항 동해안 연안녹색길. '오도(烏島)'는 '까마귀처럼 까만 섬'이란 뜻이다. 마을 앞바다에 검은 바위섬이 까마귀처럼 모여 있어 생긴 이름이다.
드라마에서 오도리는 영포마을이다. 오도1리의 해뜨는 오도펜션은 계절이 왕진의사로 취업하게 되는 '달려간다 의원'으로 나온다. 병원 주인은 꼭두다. 그래서 꼭두와 계절이 함께 있는 병원 장면이 아주 많다. "어려우면 하지 마. 쉬운 것만 하기 에도 인생은 짧아." 때로 사신 꼭두의 대사는 마음을 가볍게 해 주는 힘이 있다.
병원 문 앞에 곧장 모래밭과 바다가 펼쳐진다. 꼭두는 저 모래밭의 벤치에 앉아 쫑알거렸다. "사랑 참 허망하구나." 인생은 쉬운 것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사랑은 허망한 것만도 아니다. 그래서 꼭두와 계절은 두려움을 극복하며 사랑을 완성한다.
해변에서 보는 오도섬은 고래의 꼬리지느러미 같다. 마음만 먹으면, 오도리에서는 언제나 고래를 볼 수 있다.
글=류혜숙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포항시청>
박관영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