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일반이적죄는 형법상 '외환의 죄'의 한 유형이다. 외환(外患)이란 나라 밖에서 오는 환난, 즉 전쟁이나 법익 침해 등 외세로부터 위협을 뜻한다. 그러니 외환죄는 '외국(또는 적국)과 연관하여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 특히 군사적 안전을 해하는 범죄'를 통칭하는 죄다. 일반이적죄는 이 외환죄의 하부 개념으로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하거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준 자'를 처벌토록 했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전 대통령이 6월12일 일반이적죄로 징역 30년형을 선고받았다. 내란죄 무기징역에 이은 또 하나의 장기형이다. 법원은 계엄 선포 전 여러 차례 평양에 무인기(드론)를 침투시킨 걸 이적행위로 인정했다. 비상계엄 선포 요건인 국가 비상 상황을 만들려고 고의로 북한의 도발을 유도했다고 보았다. 이로써 그는 국군통수권자 때 일로 '외환죄 유죄'를 받은 첫 인물이 됐다.
#전쟁 직전까지 간 '평양 무인기'
평양 무인기 사건은 비상계엄 두 달 전인 2024년 10월11일 세상에 드러났다. 북한은 그날 중대 성명을 발표, 한국이 최근 잇달아 평양에 무인기를 보내 '삐라'를 살포했다면서 관련 사진들을 공개했다. 북은 "군사적 공격수단으로 간주하는 무인기의 심야 침투는 명백한 주권 침해"라며 "대한민국은 전쟁이 날 수 있는 도발을 중지하라. 자기 국민 목숨을 놓고 위험한 도박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튿날 북한 김여정은 "한국의 무인기가 다시 발견되면 끔찍한 참변이 날 것"이란 담화를 냈다. 국방부는 이에 "우리 국민 안전에 위해를 가한다면 그날이 바로 북한 정권의 종말이 될 것"이란 맞대응 성명을 내놓았다. 순식간에 남북 긴장이 고조됐다. 북한은 전방 포병부대에 즉각 사격 준비 태세를 지시했다. 국방성 노동당 등은 잇따라 성명을 내 '처참한 괴멸' '멸살' 등 엄포를 놓기 시작했다.
10월15일 정오 북한은 경의선과 동해선 남북 연결 도로를 폭파했다. 1시간 후 합참은 이에 맞서 MDL 이남에서 대응 사격을 했다. 접경지역엔 끊임없이 총성이 울렸다. 북한은 140만 청년이 입대 복대 신청을 했다며 전쟁 불사 의지가 불타오른다고 보도했다. 서울서는 한·미·일 차관이 모여 대북한 경고 성명을 발표했다.
# 끝까지 '확인해줄 수 없다'
이때까지도 무인기를 띄운 주체는 명확히 알려진 게 없었다. 처음 우리 군은 "북에 무인기를 띄운 사실이 전혀 없다"라고 하다 "확인해줄 수 없다"란 입장으로 돌아섰다. 북한도 애초 '한국 군부가 주범이건 공범이건'이라고 하는 등 군이 그 주체가 아닐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당연히 국내에선 탈북자 등 민간단체가 무인기를 띄웠거나 북한에서 자작극을 벌인 것이란 얘기들이 흘러나왔다.
그러던 19일, 북한은 평양서 추락한 무인기와 한국 국군의 날 행사에 선보였던 동종의 무인기 사진을 함께 공개했다. 27일에는 아예 추락한 무인기를 분해해 얻은 비행 항적과 좌표, 남한 내에서의 비행 이력 횟수 등도 공개했다. 백령도에서 이륙한 무인기가 서해 상공을 날아 남포를 거쳐 평양을 돌아 귀환하는 비행 계획과 평양 상공에서 끊긴 실제 경로가 지도 위에 선명히 그려져 있었다.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할 증거였다. 그럼에도 군은 '확인 불가' 입장만 고수했다. 11월7일 기자회견을 한 윤 전 대통령도 외신기자의 관련 질문을 받자 불쾌한 듯 "적반하장식 주장에 일일이 대응할 가치가 없다"라고 대답했다. 이런 기조는 계엄 선포와 해제 이후에도 이어졌다. 계엄 사태 직후인 12월8일 드론사령부 컨테이너에서 난 화재가 증거인멸 아니냐는 의혹에도 군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 안타깝고 서운하고 분한
지금은 기억도 흐릿한 무인기 사건을 상세히 복기한 이유는 자명하다. 안타깝고 서운하고 분하게도 이 사건에 관한 한 우리 정부나 군이 북한보다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무인기 실체에 관한 진실은 북한이 말했다. 우리 당국자들은 본점을 흐리고 얼버무리며 국민이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게 했다. 국가 존립의 기본인 신뢰, 그것도 자국민에 대한 신뢰를 여지없이 뭉개버린 것이다.
재판부도 그 점을 분명히 했다. 윤 피고인에 대한 양형 이유에서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은) 계엄선포권을 쓰기 위해 '일부러' 국가비상사태를 만들려 한 것"이라며 "국토방위 등 정당한 목적으로만 대통령이 군사력을 사용할 거란 국민의 기본적 믿음을 배신한 사건"이라고 했다. 국군통수권 계엄선포권 등 엄중한 대통령 권한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마음대로' 사용했다고 질타한 것이다.
재판부는 무인기 작전에 동원된 군인들도 대통령의 사적(私的) 목적에 이용됐다고 개탄했다. 무인기 침투 심리전을 전개한다는 군사작전의 외형을 씌워 계엄 명분 만들기에 군을 동원한 결과 군상관 명령의 적법성, 정당성에 대한 신뢰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이에 불필요한 군사력 소모, 국민과 군의 안전 위험 증대와 함께 군사 기밀이 누출돼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이 침해되었다'고 판시했다. 한마디로 해선 안 될 작전을 세우고 지시하고 실행했다는 것이다.
이번 재판은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됐다. 사건 관련 국가기밀이 많았기 때문이다. 판결문도 전문이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전해진 몇몇 군 내부 증언은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다. "북이 무인기 침투를 발표하자 'V (대통령)'와 국방부 장관이 박수치며 좋아했다" "대통령이 무인기를 더 보내라고 했다" "소음이 큰 드론으로 낮게 비행해 일부러 북한에 들키라고 하는 것 같았다"…
# '일부러' '고의로'가 주는 불쾌감
'일부러'와 '고의로'는 재판부 판결문에도, 또 군 내부의 증언에서도 자주 나오는 단어다. 대통령이 고의로 북한 도발을 유도했고, 일부러 무인기를 추락하게 했을지 모르며, 또 일부러 북한에 들키기를 바란 것 같다는 증언들은 모두 한 가지 사실로 귀착된다. 대통령이 지극히 사적 목적, 제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 생명을 담보로 전쟁 도발을 일으킨 것 같다는 더럽고 불쾌한 진실이다.
윤 전 대통령이 2023년부터 김용현 여인형 등 고교 선후배들과 자주 '비상 대권'을 얘기했고 2024년 6월에 이미 드론 작전사령관에게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지시했다는 것은 이제 사실로 밝혀졌다. 국정 발목잡기나 하는 야당 때문에,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고 국민을 계몽하려고 계엄을 했다는 윤 전 대통령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내란죄에 이은 외환죄 유죄는 그가 어떤 견제도 받지 않는 '독재 대권'을 쥐려고 전쟁도 불사한 진짜 반국가세력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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