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한국귀농귀촌치유산업진흥원 공동기획: 동양의 스위스 대구·경북 정원도시 프로젝트]

  • 구경모(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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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6-22 16:41  |  발행일 2026-06-22
제5회 경북 유교문화권역(안동·영주·예천)… 유럽 코츠월드형 ‘K-서원 가든’ 도약할까?
안동 하회마을 전경. <국가유산청 제공>

안동 하회마을 전경. <국가유산청 제공>

동해안이 '블루 가든'으로 비상한다면, 경북 내륙은 한국 전통 정원 미학의 정수인 '유교와 고택'을 자산화한 '화이트 가든 루프(White Garden Loop)'를 준비해야 한다. 안동, 영주, 예천 세 도시를 이어 K-선비 정신의 세계화와 백의(白衣)정원을 융합한 공간을 창조하자는 것이다.


모델은 영국의 코츠월드(Cotswolds)다. 영국 가드닝의 정수로 불리는 코츠월드는 지역 고유의 석조 건축물과 정원을 하나로 묶어 연간 2천5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세계적 명소다. 관광으로 인한 소비는 약 10억 파운드 이상(약 1조7천억 원)이며 관광 관련 일자리 창출은 2만3천여 개에 달한다.


경북지역 유교 문화권도 수백 년 된 고택과 서원이라는 강력한 건축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이를 정원과 음식, K-컬처로 융합할 경우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푸드테크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기원 서울대 푸드테크학과 교수는 21일 영남일보와의 통화에서 "선비 정신은 정적인 철학이 아니라 자연과 푸드, 인간이 교감하는 역동적인 삶의 방식"이라며 "안동의 서원 정원, 영주의 유교 경관, 예천의 정원과 음식 문화를 연결하는 '영남 선비 가든 로드'는 푸드테크를 세계에 알리는 핵심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안동, '하회와 서원의 철학정원'


안동이 보유한 세계유산인 병산서원과 도산서원은 그 자체로 완벽한 차경(借景)의 미학을 보여준다. 낙동강을 병풍 삼아 자연을 '빌려온 풍경(차경)'으로 끌어들이는 이 공간들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선비들이 자연과 인간, 학문과 삶의 통합을 실천하던 철학적 사색의 장이었다.


병산서원 만대루(晩對樓)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굽이는 그 어떤 인위적 조경보다 깊은 울림을 준다. 여기에 사계절 변화에 반응하는 야생화 정원과 선비의 독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사색의 산책로'를 덧입힌다면, 코츠월드의 돌담길 못지않은 감성의 길이 탄생할 수 있다.


하회마을 역시 마찬가지다. 강이 마을을 감싸 도는 물돌이 지형은 그 자체가 거대한 정원이다. 탈춤과 풍류, 양반 문화가 공존하는 이 공간에 전통 초화류 정원과 음식 문화를 결합한 '하회 가든 페스티벌'을 상시 운영한다면, 단순 관람형 관광을 넘어 머물고 싶은 체류형 문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안동시청 정원조성팀 정성훈 팀장은 "안동의 정원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걷고 머물며 선비의 호연지기를 느끼는 공간"이라며 "하회마을의 모래사장과 낙동강, 그리고 서원을 잇는 'K-선비 길'을 정원화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적 힐링의 정수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 영주, '소수서원과 선비경관 정원'


영주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을 중심으로 한 '교육과 치유의 정원'으로 가능성이 가장 높은 도시다. 죽계천 맑은 물소리를 따라 펼쳐지는 소수서원의 송림(松林)은 선비들이 마음을 비우고 도(道)를 구하던 공간이다. 수백 년 수령의 소나무들이 만들어내는 그늘과 바람, 물소리는 현대인들이 가장 목말라하는 '디지털 디톡스'의 원형을 제공한다.


정좌(靜坐)·다도(茶道)·서예(書藝) 등 선비의 일상 수련을 정원 체험 프로그램으로 구성하고, 계절마다 달리 피어나는 전통 화목류를 서원 담장 안팎에 조성한다면, 유럽의 '웰니스 투어리즘' 트렌드와 정확히 맞닿는 세계적 명소로 거듭날 수 있다.


여기에 부석사를 품은 봉황산 자락까지 연결한다면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진다. 무량수전 앞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소백산 능선을 바라보는 그 시선의 깊이는 코츠월드의 어떤 언덕 위 풍경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특히 죽계천의 물소리와 소수서원의 노송 군락은 영주만이 가진 독보적인 자산이다. <사>한국귀농귀촌치유산업진흥원 유상오 원장은 "영주는 유교의 '신령함'이 깃든 풍경을 가지고 있다"며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잇는 구간에 선비들이 시를 읊던 구곡(九曲)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구곡 정원길'을 조성한다면 체류형 관광의 핵심 거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예천, '회룡포와 물돌이 수변정원'


예천은 낙동강이 빚어낸 회룡포와 삼강주막 등 '물'과 '나루터'의 서사를 간직한 독보적인 도시다. 육지 속 섬을 만들어내는 회룡포의 물돌이 지형은 안동 하회마을과 더불어 한반도에서 보기 드문 자연의 조형이다.


회룡포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물돌이 풍경을 따라 수변 산책 정원을 조성하고, 계절별 수생식물과 강변 초화류로 물가의 색채를 입힌다면, 예천은 '보는 정원'이 아니라 '강물과 함께 흐르는 정원'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세계에 제시할 수 있다. 여기에 예천 곤충연구소와 연계한 생태 정원, 금당실 마을의 전통 송림과 연못 경관까지 더한다면, 예천의 정원 루트는 자연·문화·음식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완성형 체류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무엇보다 두 강줄기(내성천과 낙동강)를 따라 형성된 마을 숲과 정자를 연결하는 '수변 마을정원'을 만들자는 구상이 주목받고 있다. 강이 마을을 품고, 마을이 정자를 품고, 정자가 사람을 품는 이 중층적 공간 구조를 현대적 정원 네트워크로 엮어낸다면 예천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정원 문화 자산이 탄생한다.


예천의 경우 금당실마을의 돌담길과 소나무숲처럼 이미 완성된 정원요소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만큼, 보행 동선을 정비하고 계절마다 다른 수변 식물 경관을 연출하는 것만으로도 '강의 정원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농촌조경설계를 연구하고 있는 경희대 예술디자인대학장 김진호 교수는 "예천의 정원은 '이음'에 있다"며 "낙동강의 물줄기가 만드는 천혜의 경관을 정원 안으로 끌어들이는 '흐름'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관광객들이 발을 담그고 쉴 수 있는 친수형 정원을 통해 통과형 관광지에서 머무는 관광지로 변모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 경제적 파급 효과 2,300억 기대


한국귀농귀촌치유산업진흥원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세 지역을 연결하는 '화이트 가든 루프'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안동·영주·예천이 각각의 정원 콘텐츠를 완성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세 도시를 하나의 여행 경험으로 묶는 연결 체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세 도시를 순환하는 '선비 가든 루프 버스' 운행, 숙박·체험·음식을 묶은 'K-서원 가든 패스' 도입, 그리고 세 지자체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통합 마케팅 기구 설립 등이 과제로 꼽힌다.


코츠월드 역시 인근 소도시들이 수십 년에 걸쳐 공동 브랜딩과 인프라를 함께 구축하며 오늘의 명성을 만들어냈다.


진흥원은 안동·영주·예천 벨트가 완성될 경우 약 1천100억 원의 직접 소비와 2천300억 원 규모의 생산 유발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정원 관리 및 고택 큐레이터 등 전문 인력 수요가 급증하며 450여 명의 지역 맞춤형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영국의 사례처럼 민간 고택 소유주들과의 협력 체계 구축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진흥원은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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