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코스피 상장사의 '기부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매출과 영업이익 확대라는 호실적에도 기부 규모는 줄거나 미미한 수준에 그치는 '형식'만 갖춘 상장사가 상당수로 확인됐다. 또 상장사 셋 중 하나는 '지배구조 핵심지표' 준수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상장사들이 지역사회와 동반성장이라는 사회적 책임과 ESG 경영의 기본 책무를 사실상 방치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영남일보는 2028년 연결자산 1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의 ESG 공시 의무화 결정에 맞춰 지역 상장사의 최근 5년간 기부 내역과 지배구조 핵심지표 준수율을 전수 조사했다. 대상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지역 기업 42개사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코스닥 기업에 비해,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대형 상장사에 사회적 책임과 동반성장 역할을 더 엄격하게 물어야 한다는 취지다.
◆대구 시총 1위 기업의 '기부 그늘'
이수페타시스, 대성에너지 전경. 각 사 제공
대구 상장사 시가총액 1위 기업은 초고다층 인쇄회로기판(PCB) 전문기업 <주>이수페타시스다. AI와 반도체 글로벌 수요 증가로 지난해 3분기 시총 1위로 올라선 뒤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올해 2분기 말 기준 시총 규모는 8조4천억원대에 이른다. 대구 신산업의 상징이자 시총 1위인 이수페타시스의 기부금은 '제로' 수준이다. 2025년 사업보고서에서 확인한 이수페타시스의 지난해 기부금은 총 781만원이다. 이 기업의 작년 영업이익은 2천47억2천500만원으로 2024년 대비 100%대 증가율을 보였다. 2023년과 비교해도 비약적인 성장세다. 이를 바탕으로 한 영업이익 대비 기부금 비율은 작년 0.0038%로 100억원당 38만원을 기부한 셈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2022년 조사한 코스피 상장사의 평균 기부금은 영업이익 100억원당 1억7천만원으로, 2021년 대비 47.4% 증가했다. 상장사들이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며 영업익 대비 기부 비중을 높이는 전반의 흐름과도 상반되는 행보다. 이수페타시스 측은 "금전적 기부에 대한 비중을 크게 두지 않고 있다. 기부금 이외의 사회공헌활동에 충실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회사 측 해명에도 기부금의 절대적 규모는 매우 낮다. 기업의 경영전략과 ESG를 컨설팅하는 시앤피컨설팅 김준우 지속가능경영본부장은 "시총 1위 기업은 그 지역의 얼굴과 같고 상징성이 큰 리딩 기업이다. 그만큼 사회적 역할과 책임도 크다"며 "기부금 외의 활동을 종합 평가해야 하지만 절대적 기부금 규모가 너무 낮은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대구와 경북 일부 도시가스 에너지 사업에 독점적 지위를 갖는 대성에너지와 지주사 대성홀딩스의 기부금 추이도 역행한다. 영업이익 확대 등 호실적에도 기부금은 제자리 수준이다. 무엇보다 공공재 성격이 강한 만큼 타 업종보다 높은 수준의 이익공유가 지역사회에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비판 수위도 높다.
2025년 사업보고서 기준 대성홀딩스 기부금은 4천300만원이다. 2024년 1억2천300만원의 1/3 수준이다. 이 기간 영업이익은 232억9천800만원에서 280억6천300만원으로 약 20% 증가했다. 영업이익 확대를 바탕으로 김영훈 대표이사 회장이 수령한 연봉은 급여(32억2천300만원)와 상여금(8억8천만원)을 더한 40억7천300만원으로, 2024년(31억6천100만원) 대비 약 29% 상승했다. 대표이사 연봉 상승률이 영업이익 상승률을 웃도는 가운데 기부금은 오히려 줄인 것이다.
전년대비 48% 급증한 303억4천900만원의 영업이익을 낸 대성에너지의 지난해 기부금은 2억6천500만원으로, 영업이익 대비 기부금 비율은 0.87%다. 이런 비율은 타 지역과 비교가 된다. 부산도시가스는 연평균 영업이익(322억원) 대비 사회 기부금(6억6천만원)이 2%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부산시의회 지적을 받았다. 독점 구조로 시민 대상으로 막대한 이익을 내고도 사회 환원에 인색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인천도시가스는 작년 영업익(191억4천900만원) 대비 기부금(2억3천524만4천500원) 비율은 1.22%, 울산 및 양산 일부에 공급하는 경동도시가스는 작년 3억984만원을 기부금으로 냈다. 이익 대비 기부금은 0.94%. 대성에너지는 절대적 규모와 비율 모두 타 지역을 밑돌고 있다.
◆지배구조 핵심지표 준수율도 '낙제점'
대성홀딩스는 '지배구조 핵심지표' 준수율도 대구경북 상장사 평균에 미치지 못했다. 지배구조 핵심지표는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 △집중투표제 채택 △최고경영자 승계정책 △배당정책 연1회 통지 △주총 4주전 소집공고 △이사회 성별 다양성 △독립적 내부감사부서 △분기1회 외부감사인 회의 △주주권익 침해자 임원선임 방지 △내부통제정책 운영 등으로 구성된다. 기업이 주주 권리 보호, 이사회 독립성, 감사 기구 투명성 등 경영을 얼마나 투명하고 건전하게 하고 있는지를 투자자와 이해관계자에게 공개하는 일종의 성적표다.
대성홀딩스는 15개 지배구조 핵심 지표 가운데 4개 항목만 준수해 준수율이 26.7%에 그쳤다. 이는 대구·경북 코스피 상장사의 지배구조 핵심지표 평균 준수율 44.5%를 밑도는 수준이다. 상장사 지배구조 핵심지표 평균 준수율은 대구가 40.9%, 경북은 48.3%였다.
의무공시대상 41개사(iM금융지주 제외) 중 13개 기업 준수율은 10~20%대에 불과했고, 절반 이상은 50% 미만으로 지역 상장사 지배구조의 취약성이 데이터로 드러났다. POSCO홀딩스 100%, 한화시스템 86.7%를 나타내 대기업의 높은 준수율이 지역 상장사 평균을 끌어올린 상황이다.
ESG행복경제연구소가 6월 1일 기준 한국거래소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 비금융사 791개사를 대상으로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평균 준수율은 47.8%로 집계됐다. 대구는 전국 평균에도 한참 밑돈다.
대구경북 상장사들이 가장 취약한 부분은 이사회의 독립성 정도를 따져볼 수 있는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 여부로, 지역 41개 상장사 중 37개사가 미준수한 부분이다. 최고경영자 승계정책 미준수 상장사도 35개사에 달해 지역 상장사의 지배구조 취약성을 드러냈다.
이월드 전경. 영남일보 DB
이월드와 체시스, 티에이치엔, 세원정공, 제일연마, 우성머티리얼스가 15개 항목 중 2개만 준수해 13% 준수율에 그쳐 2028년 의무화되는 ESG공시를 앞두고 지역 상장사의 지표 관리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된다.
공시를 담당하는 이월드 총무부 관계자는 "재정이나 인력을 투입해 준수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지만 내부 사정을 고려하면 ESG경영 요건에 우선순위를 두기에 경영 현실상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어서 고민스럽다"며 "하지만 지배구조의 투명성이나 주주권리 향상을 위해 더욱 신경을 쓰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저조한 지역 기업의 ESG 지표는 기관투자자들의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가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 기업 가치 훼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준우 지속가능경영본부장은 또 "대구경북 상장사들이 수도권 기업에 비해 사회적 흐름이나 변화 요구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편"이라고 하면서 "준수율이 50%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상장사로서 문제가 될 수 있다. 기업 경영 활동과 지표 관리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ESG행복경제연구소 측은 "대구경북 상장사의 지배구조가 견제와 균형 기능에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윤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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