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가동 5주년을 맞은 영풍 석포제련소의 폐수 무방류 시스템(ZLD·Zero Liquid Discharge)이 국내 제조업 전반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ZLD은 작업 공정에서 발생하는 폐수를 외부 하천으로 배출하지 않고 전량 정화해 공정용수로 재사용하는 친환경 수처리 설비다. 수질 오염원을 원천 차단함으로써 생태계 보호와 하천 수질 개선에 기여한다. 특히 단순한 배출 기준 준수나 배출량 저감을 넘어 '폐수 제로'를 실현해 중공업·제련 업계의 ESG·친환경 공정 전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30여 년간 비철금속 제련 분야에서 현장과 기술을 두루 경험한 임노규 영풍 석포제련소장(57)을 만나 영풍의 친환경 경영에 대해 들어봤다.
임노규 영풍 석포제련소장이 폐수 무방류 시스템(ZLD)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영풍 제공
◆세계 최초 '무방류 시스템' 5년… "환경에 대한 소명 다할 것"
영풍 석포제련소는 2021년 5월 30일, 세계 제련소 중 최초로 폐수 무방류 시스템을 도입해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오염물질 배출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영풍의 과감한 결단은 국내 제련업계는 물론 수처리 기술 도입을 고민하던 다른 기업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임 소장은 "영풍의 무방류 설비는 연간 약 4천t을 처리할 수 있는 구조로, 이 중 1천톤은 예비 설비로 두고 하루 평균 2천~2천500t에 달하는 폐수와 지하수를 100% 처리해 공정에 재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풍이 도입한 '상압 증발 농축식' 무방류 시스템은 공정 폐수를 정수 처리한 뒤 100℃ 이상의 고온으로 끓여 수증기를 포집하고, 이를 다시 깨끗한 물로 회수해 공정용수로 재사용하는 구조다. 수자원 보호와 수질오염 방지, 자원순환형 공정 구축이란 세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설비 구축에만 460억 원이 투입됐고, 매년 80억~100억 원에 달하는 운영비가 소요되지만 영풍은 이를 기업의 '환경적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영풍의 무방류 시스템은 최근 ESG 경영을 고심하는 지방자치단체와 산업단지 관계자들의 필수 벤치마킹 코스로 자리 잡았다.
임 소장은 "이 설비를 운영하는 것 자체가 기업 입장에서는 큰 비용이지만 저희에겐 환경에 대한 책임이 있다"면서 "무방류 시스템 가동 이후 낙동강에서 취수하는 수량 자체가 획기적으로 줄었고, 이는 수자원 재이용을 넘어 지역사회와 환경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굳건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 5천400억 원 투입한 환경 혁신…돌아온 수달과 산양
영풍의 환경 개선 노력은 수처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영풍은 2019년 '환경개선 혁신계획'을 수립한 이후, 2025년까지 5천400억 원(누적)이라는 천문학적인 재원을 투입해 수질·대기·토양 등 환경 전 영역에 걸친 대대적인 쇄신 작업을 전개해 왔다.
대표적으로 질소산화물(NOx) 저감을 위한 오존 분사시설 도입 및 산소공장 증설, 비산먼지 방지시설 설치, 실시간 배출 모니터링 체계(TMS) 구축 등을 완비했다. 특히 제련소 앞마당뿐만 아니라 석포면사무소, 안동댐 세계물포럼기념센터 전광판, 영풍 홈페이지를 통해 인근 대기질 정보를 투명하게 실시간으로 공개하며 주민들의 신뢰를 높였다.
그 결과 2022년 이후 제련소 하부 낙동강 수계에서 각종 중금속이 검출 한계 미만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주변 대기질 또한 전국 최고 수준의 청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임 소장은 "과거의 과오를 깊이 반성하고 개선하기 위해 전 임직원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현재 제련소 주변에 멸종위기종인 수달과 산양이 서식할 만큼 생태계 회복의 긍정적 신호가 뚜렷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낙동강 최상류에 위치한 사업장으로서 환경 책임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ESG를 단순한 규제 대응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과 연계하고 데이터 기반의 투명성을 확보해 리스크 관리 체계로 내재화하겠다"고 덧붙였다.
◆ 조업정지 시련 딛고 '전화위복'… 2026년 1분기 흑자 전환 성공
임노규 영풍 석포제련소장이 스마트 제련소 구축과 ESG 경영 실천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영풍 제공
지난해 60일간의 석포제련소 조업정지는 뼈아픈 시련이었다. 그러나 영풍은 이 위기를 설비 안정성을 근본적으로 점검하고 생산 효율을 높이는 '재도약의 준비기간'으로 삼으며 전화위복의 기회로 이끌어냈다.
임 소장은 "조업정지 기간 동안 실시한 대대적인 보수와 정비 작업이 이후 공정 안정성을 크게 향상시키는 기반이 됐다"며 "작년 하반기부터 원료 다변화에 맞춘 공정 고도화를 지속 추진 중이며 전해공정 전력 원단위 안정화 등을 통해 수익성 개선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노력은 경영 성과로 증명됐다. 영풍은 2026년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 8천511억 원, 당기순이익 208억 원을 달성했다. 별도 기준으로도 매출액 3천816억 원, 영업이익 274억 원을 기록하며 당당히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실적 개선의 일등 공신은 석포제련소를 중심으로 한 제련 부문이었다. 특히 아연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Value-added byproducts)의 가치를 극대화한 전략이 주효했다. 전기동, 은 등 유가금속의 시장 가격 상승 흐름을 타며 이익 폭을 넓혔고, 글로벌 공급 불안정으로 가격이 치솟은 황산 역시 향후 추가적인 수익원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임 소장은 "이제는 단순히 아연을 많이 생산하는 양적 성장보다,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얼마나 가치 있게 활용하느냐가 핵심 경쟁력"이라며 "희귀금속은 국가 전략 자산으로서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핵심 소재의 상용화 기술과 회수율을 더욱 높여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 AI·신재생에너지 품은 ESG 경영, '인구소멸 역행'의 주역으로
석포제련소는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스마트 제련소 구축과 ESG 경영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장 안전을 위해 인공지능(AI) 공정안전관리 시스템을 도입, 이동형 CCTV 영상을 AI가 실시간 분석해 위험 요소를 즉각 감지한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고위험 구역은 드론과 계측센서로 정밀 점검한다.
내부 업무 전반에는 생성형 AI 기술인 '제미나이 엔터프라이즈(Gemini Enterprise)'를 전격 도입했다. 방대한 데이터를 신속히 분석해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공정제어시스템(DCS)의 데이터 접근성을 현장 실무자까지 확대해 실시간 공정 최적화를 실현하고 있다. 임 소장은 "안전은 성과보다 앞선 최우선 가치"라며 사전 예방 중심의 현장 관리를 거듭 강조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2050 넷제로(Net Zero)' 행보도 구체화되고 있다. 최근 풍력발전 전문기업 유니슨과 손잡고 석포제련소 인근 산악지역에 풍황계측기를 설치해 데이터를 수집 중이다. 향후 이를 바탕으로 추가 풍력 및 태양광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개발사업과 'Micro Grid 에너지 혁신지역 건설사업'을 지역 주민들과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대목은 지역사회와의 상생 성과다. 봉화군은 소멸위험지수가 매우 높은 지역이지만, 제련소가 위치한 석포면은 실거주 인구 2천500명을 유지하고 있다. 봉화군 내에서 가장 젊은 (평균 연령 52.2세) 마을을 자랑하는 이른바 '인구소멸 역행 마을'이다. 제련소를 중심으로 형성된 직간접 고용과 연간 500억 원 규모의 지역 경제 순환 효과 덕분이다.
영풍은 최근 수년간 체육관 건립, 축구장 조성, 석포단편영화교실 및 공모전 운영 등 지역 문화·체육 행사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주민과 구성원 등 모든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며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지역사회 참여 정책'을 제정하기도 했다.
임노규 소장은 끝으로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석포제련소는 지난 수십 년간 국가 산업을 지탱해 온 임직원들의 희생과 현장 경험이 집약된 소중한 자산입니다. 앞으로도 '사람이 중심이 되는 제련소', 그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지속 성장하는 제련소'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겠습니다. 안전, 환경, 소통이라는 '신뢰와 상생'의 가치를 품고,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친환경 스마트 제련소로 한 단계 더 도약하겠습니다."
박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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