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에서] 두꺼운 물감에 쌓인 기억…우손갤러리 대구, 유키마사 이다 ‘Inner Garden’

  • 권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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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8-26 17:53  |  발행일 2026-08-26
‘이치고이치에(一期一會)’ 바탕으로 기억과 시간, 존재 탐구
할머니 초상·자화상·반 고흐 연작 등 선봬
대구·서울·경주서 서로 다른 구성의 전시
지난 20일 우손갤러리 대구에서 만난 유키마사 이다는 신작을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심정을 자화상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권혁준 기자

지난 20일 우손갤러리 대구에서 만난 유키마사 이다는 "신작을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심정을 자화상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권혁준 기자

우손갤러리가 최근 일본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유키마사 이다의 국내 첫 개인전을 27일부터 오는 10월31일까지 대구와 서울에서 동시에 연다.


대구의 'Inner Garden'은 인물화와 반 고흐 연작, 풍경화 등 대형 회화를, 서울의 'See You Tomorrow'는 10년 넘게 이어온 'End of today' 연작을 선보인다. 경주 오아르미술관에서도 지난 23일부터 'Remembering You-기억의 행위'가 진행 중이다. 세 전시는 기억과 시간을 공통 화두로 삼으면서도 장소마다 다른 작품과 매체로 작가의 작업세계를 보여준다.


지난 20일 우손갤러리 대구에서 만난 유키마사 이다는 반 고흐가 그린 밀밭에 머물면서 작업했다고 말했다. 권혁준 기자

지난 20일 우손갤러리 대구에서 만난 유키마사 이다는 "반 고흐가 그린 밀밭에 머물면서 작업했다"고 말했다. 권혁준 기자

1990년 일본 돗토리에서 태어난 이다는 도쿄예술대학 대학원에서 유화를 전공했다. 두껍게 쌓은 물감과 격렬한 붓질로 기억과 시간, 존재의 순간을 그려왔다. 작업을 관통하는 개념은 '일생에 단 한 번뿐인 만남'을 뜻하는 '이치고이치에(一期一會)'다. 10대 후반 묘비 제작소에서 죽음을 가까이에서 본 경험과 인도 여행에서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과 풍경을 마주한 기억이 바탕이 됐다.


우손갤러리 대구 1층에서는 작가가 작업해온 인물화들을 만날 수 있다. 역사적 인물과 지인을 주로 그려왔다면 이번에는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재작년 세상을 떠난 할머니와 아버지의 지인이자 자신에게 멘토 같은 존재인 로버트 신돌프 등을 그렸다.


유키마사 이다 작. 우손갤러리 대구 제공

유키마사 이다 작. 우손갤러리 대구 제공

지난 20일 우손갤러리 대구에서 만난 이다는 할머니의 초상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함께 보냈지만 어떤 형태로도 남길 수 없는 시간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초상에서 얼굴은 선명하게 재현되지 않는다. 형태 위에 물감을 거듭 쌓고 밀어내면서 형상을 흐트러뜨린다. 얼굴은 두꺼운 물감 사이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오간다. 그는 "기억은 이미지이지만 계속 변화한다"며 "기억을 붙잡으려 할수록 결국 녹아내리고 사라진다"고 말했다.


1층에는 대구 전시를 위한 신작 자화상도 걸렸다. 이다는 "많은 신작을 준비하면서 힘든 순간들이 있었고 그 심정을 담고 싶어 자화상을 그렸다"며 "어떤 마음으로 이번 전시를 마주해왔는지 알 수 있었던 작업이다. 그림을 그리는 고통과 창작의 고통이 잘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작품을 만드는 일은 가혹하고 즐거운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분이 제 작품을 봐주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저를 구원해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유키마사 이다 작. 우손갤러리 대구 제공

유키마사 이다 작. 우손갤러리 대구 제공

2층에는 프랑스에서 제작한 풍경화와 반 고흐 연작이 자리한다. 영국에 작업 공간을 둔 이다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고흐를 그려보라는 제안을 받은 뒤 도버해협을 건너 프랑스 오베르쉬르우아즈를 찾았다. 고흐가 생애 마지막 시기를 보낸 이곳에 일주일가량 머물며 고흐가 그린 밀밭을 아침과 낮, 일몰 등 서로 다른 시간대에 그렸다.


이다는 "같은 풍경과 같은 시점을 바라봤지만 고흐의 그림과 제 그림은 전혀 달랐다"면서 "야외에서는 1분, 1초마다 색이 바뀌고 바람이 불며 빛이 변한다. 아무것도 노리지 않았는데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는 상태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제 작업은 '작위 없는 무작위의 영역'이 무엇을 가져오는가를 실험하는 방향으로 깊이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유키마사 이다 작. 우손갤러리 대구 제공

유키마사 이다 작. 우손갤러리 대구 제공

반 고흐 연작은 고흐의 얼굴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자화상과 해바라기, 밀밭 등 그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한 화면에 중첩한다. 그는 "고흐는 실제 얼굴보다 자신이 남긴 이미지로 기억되는, 그림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경주 오아르미술관 전시는 내년 3월14일까지 이어진다. 대구 전시가 대형 회화에 집중한다면 경주에서는 '기억'을 주제로 회화·조각·영상 등 50여 점을 5개 섹션에 걸쳐 선보인다. 가족과 친구, 이방인의 초상과 피카소의 '게르니카',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를 재해석한 작품, 'End of today' 연작, 그림을 불태우며 생성과 소멸을 묻는 첫 영상 작업 등을 만날 수 있다. 또 이다가 지난 3월 경주 대릉원과 왕릉군 등을 둘러보며 받은 인상과 기억을 옮긴 '스케치북에서' 연작의 신작도 처음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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