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열린 '제8회 한국헌법학자대회' 개회식에서 서보건 한국헌법학회장이 개회사를 전하고 있다. <정운홍 기자>
대구경북 행정통합이 지역의 몸집을 키우는 행정구역 개편을 넘어 대한민국의 권력구조와 지방분권을 다시 설계하는 헌법적 과제로 제시됐다. 특히 중앙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으로 옮기고, 분리된 광역자치단체를 통합해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내 헌법학계의 공론장 한복판에서 나왔다.
28일 오후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열린 제8회 한국헌법학자대회. '지속가능한 헌법국가의 미래'를 주제로 두 번째 기조발제에 나선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은 부산·울산·경남과 대구·경북, 광주·전남, 대전·충남·세종을 잇따라 거론했다. 그는 "분리된 광역지방자치단체는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순리"라고 했다.
성 전 총장은 행정통합을 지방분권의 연장선에 놓았다. 그는 "권력의 민주화는 중앙권력의 민주화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방권력의 민주화도 동시에 요구한다"며 중앙정부가 쥔 권한을 지방으로 대폭 넘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과 지방의 균형에 더해 지방 간 격차를 줄이는 작업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분리된 광역자치단체가 힘을 합쳐 수도권과 맞설 수 있는 경제·행정 규모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대구와 경북의 통합 논의가 지역 내부의 행정 효율성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 일극 체제를 완화하고 국가 공간구조를 재편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의미다.
앞서 첫 기조발제에 나선 김상환 헌법재판소장도 중앙과 지방의 관계를 미래 헌법이 풀어야 할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김 소장은 오늘날 헌법이 마주한 새로운 권력을 기술권력과 다층적 권력, 비상권력, 미래세대에 대한 '시간의 권력'으로 구분했다.
1987년 헌법이 국가권력 통제에 상당한 역할을 했지만 지금의 권력은 더 이상 중앙정부와 전통적인 국가기관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진단이다. 그는 "지방분권과 지역 차원의 자기결정 역시 헌정질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며 "미래의 헌법은 단일 국가만을 위한 닫힌 규범에 머물 수 없다. 위와 아래로 뻗어 있는 다층적 권력의 관계를 조직하고 조율하는 규범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했다.
김 소장이 중앙과 지방을 아우르는 새로운 권력질서의 원칙을 제시했다면, 성 전 총장은 이를 광역자치단체 통합이라는 구체적인 제도 개편으로 연결한 셈이다. 이날 대구경북 행정통합은 '통합이 필요한가'라는 찬반 논의를 넘어 '어떤 권한을 지방에 넘기고, 통합 이후의 자치와 대표성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헌법적 질문으로 확장됐다.
이날 대회는 '미래를 위한 헌법, 그 진단과 해법'을 주제로 29일까지 이어진다. 헌법학자와 법조인, 정부·연구기관 관계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지난 일곱 차례 모두 서울에서 열렸던 한국헌법학자대회가 지역에서 개최된 것은 처음이다.
첫 지역 개최지가 안동이라는 점에도 의미가 실렸다. 서보건 한국헌법학회장은 개회사에서 안동의 전통문화와 정신문화를 언급하며 인공지능, 지방소멸, 지방분권과 통합 등 급변하는 국가·사회 환경에 헌법이 어떤 답을 내놓을지 이번 대회의 핵심 질문으로 제시했다.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장도 "퇴계 이황이 학문을 닦았던 안동의 역사성을 짚으며 제도가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이론적 토대를 정교하게 마련하는 것이 헌법학자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조소영 중앙행정심판위원장은 "헌법은 시대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며 헌법의 가치가 재판 영역을 넘어 행정 현장의 권리구제 과정에서도 구현돼야 한다고 했다.
'제8회 한국헌법학자대회'에 참석한 헌법학자와 법조인, 정부·연구기관 관계자들. <정운홍 기자>
이번 대회에서는 미래헌법과 사회통합, 과학기술과 기본권, 갈등 극복을 위한 기본권 보장, 지방분권과 통합, 법치주의와 사법의 역할, 민주주의와 선거 등 6개 분과에 걸쳐 한국 헌정질서가 맞닥뜨린 과제가 논의됐다.
대구경북 행정통합의 법적 설계는 제4분과 '지방분권과 통합'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졌다. 김수연 제주대 교수는 대구경북 통합특별법안을 중심으로 '행정통합 특별법의 공법적 의의와 입법적 과제'를 발표했다.
통합 이후 더 어려운 문제로 꼽히는 주민 대표성도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이권일 경북대 교수는 지방의회 구성 과정에서 '1인 1표'로 대표되는 평등선거 원칙과 지역대표성이 충돌할 수 있는 문제를 분석했다. 김효연 고려대 연구교수는 지방분권을 지방소멸 대응과 연결해 헌법적 관점에서 살폈고, 정란 해군사관학교 교수는 인구감소지역의 정치적 대표성과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문제를 짚었다.
행정구역을 합치는 것만으로 통합이 완성되지는 않는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광역단체의 면적과 인구가 커질수록 권역별 이해관계도 복잡해지는 만큼, 통합 이후 주민의 정치적 의사를 어떤 방식으로 반영할지가 제도의 정당성과 지속 가능성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북도 역시 행정통합의 성패를 권한과 재정, 대표성의 제도화에서 찾고 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대신해 환영사를 한 황명석 경북도 행정부지사는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을 극복하려면 중앙의 권한과 재정을 지방으로 과감하게 넘기고 지역의 자율성과 책임을 확대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논의가 대구경북 행정통합을 비롯한 지역 혁신의 토대가 돼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경북도는 지난 6월부터 한국헌법학회와 '대구경북 행정통합 특별법 보완과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특별법의 심사와 향후 시행 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쟁점을 선제적으로 살피기 위해서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제시된 논의도 특별법의 입법 대응 논리를 보강하는 데 활용할 방침이다.
정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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