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병원 전경. 경북대병원 제공
보건복지부 이관 후 첫 경북대학교병원장 인선이 또다시 '그들만의 밀실 선출'로 전락할 위기다. 연간 1천100억 원의 적자 늪에 빠진 상황에서 지역 의료망을 총괄하는 수장을 뽑는 중차대한 인선이지만, 정작 병원 구성원과 대구·경북 주민들은 후보가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깜깜이 공모'가 되풀이되고 있다. 정견발표회 등 최소한의 검증 절차를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다.
◆ 복지부 이관 첫 인선… 여전한 '그들만의 리그'
국립대병원 설치법(제14조)에 따르면 국립대병원장은 공개모집을 거치며, 이사회가 후보자 2인을 추천해 보건복지부장관이 최종 1명을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후보 표결권을 쥐고 있는 이사회는 경북대총장을 이사장으로 해 현 병원장, 의대·치대 학장, 칠곡경북대병원장 등 대학 내부 보직자와 보건복지부·기획재정부·교육부의 국장급 당연직 공무원 등 11명의 관료, 현직 간부 위주로 채워진다. 특히 정부의 국장급 이사들은 대리 참석하거나 학내 구조에 깊이 개입하지 않는 것이 통상적이다.
반면, 병원의 실제 이용자인 지역 시민단체, 환자 단체, 병원 노동조합 등이 추천하는 외부 인사 지분은 전무하다.
◆ 경영계획서도 비밀…서울대병원은 온라인 정견발표 시도
이번 신임 병원장 공모 접수는 9월4일까지 진행되지만, 정작 병원의 주인인 구성원, 지역민은 어떤 후보가 어떤 비전으로 응모했는지 알 길이 없다. 후보자들이 제출해야 하는 △병원 경영계획서 △공공의료 강화 방안 등은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법적 강제력이 없더라도 후보자의 비전을 검증할 최소한의 정견발표회, 공청회 같은 기초적인 공론화 절차가 병원 자체적으로 추진될 법도 하지만 시도조차 없었다. 경북대병원 구성원들과 대구·경북지역 환자들은 무지의 상태에서 신임 원장을 맞이해야 하는 구조다.
이러한 깜깜이 선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서울대병원이 앞장선 사례는 있다. 지난 2022년 8월,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협의회가 차기 병원장 입후보자 5명이 참가하는 온라인 정견 발표회를 전격 개최했다. 밀실에서 이뤄지던 추천 검증 과정을 전체 교수, 의료진에게 투명하게 공개해 후보자들의 경영 비전과 공공성 방안을 직접 따져보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160여 명의 교수가 참석해 질의를 던졌고, 깜깜이 병원장 인사 관례를 깨기 위한 자발적 시도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경북대병원을 비롯한 나머지 국립대병원들은 '밀실 선출'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한 구성원은 "국립대 특성상 조직의 이슈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관례를 깨는 시도 자체가 터부시돼 있다"고 귀띔했다.
◆ '학내 카르텔' …적자 시기에도 경북대 연수원에 75억 투입
이같은 폐쇄적인 이사회 구조가 낳은 병원장 선출의 폐해는 고스란히 환자, 병원 구성원들에게 돌아갔다. 실제로 지난 2020년 포항시 구룡포에 건립된 '경북대·경북대병원 인재원' 사업 당시 독립법인인 경북대병원이 총사업비 150억 원 중 절반에 달하는 75억 원의 막대한 예산을 출연했다. 경북대병원은 당시 누적 적자 폭이 수백억 원에 달해 병원 내부 구성원들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해 있었다. 이 때문에 이사회 내부에서조차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잇따르며 건립 비용 출연 안건이 한 차례 '보류' 처리되기도 했다. 그러나 경북대의 지속적인 요구 속에 이사회는 끝내 기여금 75억 원 투입안을 통과·강행했다.
이처럼 경북대병원 고유의 회계 재정이 본교의 연수원 건립에 투입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학총장이 이사장을 겸임하고, 학내 보직자 중심의 이사회가 외부 견제 기능 없이 안건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킬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 1천100억 적자 경북대병원 VS 7천억 잡은 부산대병원
특히 대구·경북 거점 상급종합병원인 경북대병원은 의정 갈등의 장기화로 인해 역대 최악 수준의 재정난을 겪고 있다. 지난 6월 공개된 지역 5개 상급종합병원의 2025년 경영 실적에 따르면 경북대병원은 지난해 의료수익 3천618억원, 의료비용 4천551억원을 기록해 933억원의 의료손실을 냈다. 칠곡경북대병원도 의료수익 4천410억원, 의료비용 4천577억원으로 167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두 병원의 의료손실 규모는 합쳐 1천100억원에 달했다.
경북대병원 주요 보직자는 "올해 상반기 적자가 200억 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하반기까지 포함하더라도 500억 밑에서 적자 수준이 결정돼 전년보다 나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의정사태 여파 탓에 경영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북대병원이 적자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동안 이웃 동남권의 부산대병원은 대형 호재를 맞았다. 최근 총사업비 7천65억 원 규모의 메디컬센터 건립 사업이 정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것이다. 같은 의정 갈등 속에서도 부산대병원이 대규모 정부 지원을 끌어내며 의료 격차를 벌리는 동안 경북대병원은 폐쇄적 구조에 안주, 인프라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 필수의료 수장 뽑는데… "검증 절차·이사회 개혁 시급"
특히 이번 인선은 내년 제정이 추진되는 '필수의료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있어 차기 병원장의 무게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특별법이 시행되면 경북대병원장은 단순한 개별 병원 경영자를 넘어서게 된다. 대구·경북 권역의 필수·중증 의료 전달체계를 총괄 지휘하는 '지역 의료 수장' 역할을 맡게 된다. 막대한 정부 예산 지원과 함께 지역 보건의료 네트워크 구축의 전권을 쥐게 되는 만큼, 정책적 통찰력과 강한 리더십이 핵심 자질로 꼽힌다.
익명을 요구한 칠곡경북대병원 구성원은 "법과 절차에 따라 '악법도 법'이라며 순응하는 게 국립대병원 직원들의 분위기"라면서도 "공정하고 개방적인 병원장 선출을 위해선 상위기관의 개입이 우선돼야 한다. 경북대 총장 선거는 대학 자율성과 투명성을 위해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되돌아간 반면, 병원장 선출은 여전히 11명 이사회의 '간선제'에 갇혀 있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송정흡 전 경북대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병원장 공개모집에 후보가 접수를 해도 병원에선 이를 구성원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직원들, 환자들이 누가 병원장에 나오는지, 그들이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전혀 모른다"면서 "밀실 투표를 걷어내고 지역민과 병원 구성원이 함께 검증하는 투명한 선출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국립대병원 개혁의 첫 단추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런 방식으로 선출된 병원장은 병원경영, 직원들의 처우 개선보다 이사회만 의식하게 된다. 자신의 비전을 구성원들 앞에서 발표하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최소한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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