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청년 굿잡(GOOD JOB) 일자리 박람회'를 찾은 취업 준비생들이 현장면접을 보고 있다. 영남일보 DB
대구의 지속적인 청년 인구 유출은 더 이상 주거 보조나 단기 지원금 등 '복지 정책'의 한계로만 치부할 수 없다. 그 이면에는 지역의 산업 구조와 일자리 생태계라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본지는 <청년이 남는 도시의 조건–산업구조 전환과 지방 권한 강화로 대구의 미래를 재설계하다> 기획 연재를 통해 청년 유출 문제를 산업 생태계의 관점에서 재정의해 보고자 한다. 총 7회에 걸쳐 진행되는 이번 기획에서는 성공적인 산업 전환으로 청년 유입 도시로 거듭난 체코 브르노, 독일 라이프치히·드레스덴 현지 취재를 통해 '청년이 정착하는 생태계'의 조건을 심층 분석하고, 대구에 적용 가능한 실질적 대안과 이를 뒷받침할 지방정부의 자율적 권한 강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대구의 한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김현준(34)씨는 졸업 직후 일자리를 찾기 위해 수도권으로 향했다. 김포를 거쳐 현재는 판교의 한 IT 플랫폼 기업에 정착한 상태다. 나고 자란 대구에 정착하고 싶어 지역 내 일자리를 찾았지만 그가 원하는 '성장'을 충족시켜 줄 기업은 찾을 수 없었다.
김씨는 "대구에도 개발자를 채용하는 곳은 있지만, 대부분 전통 제조업 공장의 전산망을 유지·보수하거나 외주 하청(SI)을 받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며 "수도권에는 자체 서비스를 기획하고 최신 기술 트렌드를 주도하며 '개발자'로서의 커리어와 몸값을 높일 수 있는 테크 기업들이 몰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일할 곳'이 없는 게 아니라, 내 직무 역량을 키울 환경이 없다는 것이 대구를 떠난 가장 큰 이유"라고 꼬집었다.
지역 인재들의 탈(脫)대구는 개인의 선택을 넘어 오늘날 대구가 직면한 일자리 생태계의 구조적 위기를 대변한다. 청년들이 역량을 발휘하고 몸값을 높일 '무대'를 만들어주지 못한 도시에서 정착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성장 경로를 좇아 수도권으로 향하는 청년들의 행렬은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10년간 청년 7.4만 명 탈대구
자료는 통계청. 그래프=Gemini
대구를 덮친 '청년 엑소더스(대탈출)'의 현실은 수치로 직결된다.
통계청의 최근 10년(2016~2025년) 시도별 인구이동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대구시를 빠져나간 청년(19~34세) 누적 순유출 규모는 무려 7만4천483명에 달했다. 이는 인구 규모가 더 큰 부산(-7만3천333명)마저 웃도는 수치로, 전국 8대 특광역시 중 청년 유출 1위를 기록했다.
특히 '진짜 일자리'를 찾는 시기의 이탈이 치명적이었다. 10년간 대구를 떠난 청년 중 절반 이상인 3만9천142명이 본격적인 구직기에 접어든 20대 후반(25~29세)이었다. 반면 같은 기간 서울(+28만3천195명)과 세종(+4만8천477명), 인천(+3만6천732명) 등 수도권과 행정수도는 지방 청년들을 빨아들였다.
청년들이 대구를 떠나는 현상은 대구 전체의 고용 기반 축소와 맞물려 있다. 통상적으로 전체 일자리 파이가 쪼그라드는 고용 위축기에는,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해야 할 청년층의 '신규 채용'이 가장 먼저 직격탄을 받게 된다.
통계청의 '시도별 취업자 증감' 데이터를 보면 대구의 척박한 고용 현실이 드러난다. 지난 10년(2016~2025년)간 전국적으로 취업자가 259만 명 늘어나는 동안 대구는 전국 8대 특광역시 중 유일하게 3만 2천100명의 전체 취업자가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인천(+22만 명), 대전(+4만 명) 등 타 광역시는 고용 규모를 키웠고, 산업위기를 겪었던 울산(+2천500명)조차 고용을 늘린 것과 대조를 이룬다. 결국 일자리의 절대적인 파이 자체가 줄어드니 청년들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고, 청년이 떠나니 기업은 투자를 꺼려 고용 기반이 다시 위축되는 '일자리·인구 탈출의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고부가가치 산업의 부재
더 큰 문제는 그나마 남은 일자리의 질마저 청년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의 '시도별·산업별 취업자' 자료에 따르면 청년들이 선호하며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2대 신산업(정보통신업,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의 고용 비중은 2025년 기준 대구 전체 취업자의 5.4%에 불과했다. 이는 전국 8대 특광역시 평균(11.3%)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서울(17.6%)과 비교하면 3분의 1토막 난 수치다. 반면 지역 고용의 37%는 여전히 성장이 정체된 전통 제조업(18.3%)과 도소매·숙박음식 등 전통 서비스업(18.6%)에 묶여 있다.
제조업 중심의 일자리만으로는 청년 유출을 막을 수 없다는 경고도 나온다. 취업자의 31.3%가 제조업에 종사하는 '공업 도시' 울산시조차 지식·IT 산업 비중이 4.2%에 불과한 한계를 드러내며 지난 10년간 4만5천여 명의 청년 유출을 막지 못했다. 반면 2021년부터 청년 순유입 기조로 돌아선 대전의 경우 연구개발 등 지식/IT 산업 취업자 비중이 전체의 10.0%에 달해 비수도권 중 1위를 기록했다.
전통 산업의 굴레를 벗고 첨단 산업으로 생태계를 전환하지 않으면 대구 역시 울산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좁힐 수 없는 '임금 격차'
대구의 산업 구조가 왜 청년 유출로 직결되는지는 임금 통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통계청의 '산업·임금수준별 임금근로자' 자료를 살펴보면, 2025년 기준 청년층이 몰리는 '정보통신업'과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 종사자의 약 75%는 월 300만 원 이상의 고임금을 받고 있었다. 근로자 3명 중 1명(약 35%)은 월 500만 원 이상을 받는 직종이다.
그러나 대구 전체 취업자 중 이 두 산업에 종사하는 비중은 5.4%에 불과하다. 반면 근로자 절반(47.0%)이 월 200만 원 미만을 받는 '숙박 및 음식점업' 등 전통 서비스업과 보수적인 제조업에 대구 고용의 상당수가 묶여 있다. 산업별로 좁힐 수 없는 '임금과 보상'의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단순히 '당장 받을 월급'만의 문제가 아니다. 저임금 전통 산업에 고착화된 대구의 현실은 청년들에게 '성장 경로의 단절'이라는 더 큰 좌절감을 안겨준다. 이들은 대구를 떠나는 진짜 이유로 단순한 일자리 개수 부족이 아닌, '성장 경로의 단절'을 꼽는다.
서울에서 중국 드라마 '콘텐츠 소싱' 업무를 하는 회사에 취업한 김혜정씨. 본인 제공.
대구의 한 대학에서 중국어문학을 전공하고 통·번역 직무를 희망했던 김혜정(여·27)씨에게 대구는 지나치게 좁은 무대였다. 김씨는 "대구에서 선택할 수 있는 관련 일자리는 자동차 부품 공장이나 단기 통역 아르바이트가 전부였지만, 서울은 피부과부터 백화점, 콘텐츠 산업까지 어학 능력을 활용할 산업군이 넘쳐났다"고 했다. 현재 서울에서 중국 드라마 '콘텐츠 소싱' 업무를 맡고 있는 그는 "서울은 기업과 직종이 다양해 과감한 직무 전환 시도가 가능했다. 지금은 커리어 성장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해 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음악 산업 종사를 꿈꾸며 서울의 대학원으로 진학한 안신아(여·27)씨 역시 '경험의 격차'를 지적했다. 안씨는 "음악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페스티벌이나 기획사 주최 송캠프(Song Camp) 등 실무적 경험은 100% 서울에서만 이루어진다"며 지역에서는 커리어를 키워나갈 생태계 자체가 없다고 토로했다. '다양한 직종'과 '과감한 직무 전환'이 가능한 생태계가 대구에는 구축되지 않은 것이다.
◆수백억 쏟은 현금성 지원의 한계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구시는 청년 월세 지원 등 각종 현금성 보조 사업에 예산을 투입하며 이탈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실제로 대구시의 '2026년 청년정책 시행계획'을 보면 이러한 정책적 한계와 엇박자가 그대로 드러난다. 대구시는 청년 인구 유출의 핵심 원인으로 '양질의 일자리 부족'을 명시하면서도, 정작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며 내놓은 5대 영역 64개 과제는 '청년내일저축계좌', '청년문화예술패스' 등 파편적인 복지 정책을 나열한 수준에 그쳤다.
심지어 주거 핵심 대책은 월세 지원과 대출 이자 지원 등 단기적인 현금성 보조에 수백억 원의 예산을 쏟아붓는 방식이다. 청년들은 '내 커리어를 키울 일자리'가 없어 고향을 떠나는데, 지자체는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단기적 수당은 수도권이 제공하는 '기회와 인프라'를 대체하지 못한다.
김혜정씨는 "서울의 치열한 경쟁과 높은 주거비에도 불구하고 현직자가 참여하는 취업 특강 등 탄탄한 네트워킹 생태계와 풍부한 문화 인프라가 기회비용을 보상해 준다"고 말했다. 또 기업 유치를 넘어선 세밀한 '기업 문화 개선'을 요구한다. 김씨는 "탄력근무제나 재택근무 같은 유연한 복지 제도만 갖춰져도 청년들은 충분히 만족하며 다닐 것"이라며 보수적인 지역 기업 문화의 혁신을 촉구했다.
◆대구시 "점프업 기회 늘릴 것"
대구시는 다행히 이러한 현장의 지적을 인지하고 체질 개선을 예고했다.
조경동 대구시 청년정책과장은 "지금까지 청년 정책이 월세나 현금성 지원 등 정주 여건에 다소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청년 유출의 핵심 원인이 '양질의 일자리 부족' 등에 있음을 시 차원에서도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 과장은 "단순히 일자리 양을 늘리는 것을 넘어, 청년들이 대구에 와서 경력을 쌓고 상향 이직(점프업)할 수 있는 '성장 사다리'를 복원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며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이 2~3년 경력을 쌓고 근로 조건이 좋은 중견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기회를 늘리는 대책을 수립 중"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대구시는 최근 조직개편을 통해 청년정책과 내 '일자리팀'을 신설하고 시장 직속 청년특보를 임명하는 등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조 과장은 "디지스트(DGIST) 등과 연계해 수요자 문제 해결 중심의 실무형 AI 인재 양성 교육을 신설해 바로 취업과 직결시키고, 민간기업에는 실패해도 돌아갈 길이 있는 '창업 휴직 제도' 도입을 권장할 계획"이라며 "경제·산업 부서와 적극 협업해 중소·중견·대기업, 그리고 창업까지 이어지는 전반적인 커리어 성장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복지 지원을 넘어 지역 실정에 맞춰 '특화된 산업 정책과 기업 유치'로 지자체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구만의 강점을 살린 '고부가가치 특화 생태계'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
박수열 영남대 교수(경제학)는 "금융을 비롯한 모든 핵심 인프라가 수도권에 블랙홀처럼 집중된 상황에서, 지자체가 단기적인 지원금을 조금 푼다고 청년 유출의 물꼬를 되돌릴 수는 없다"며 "파편적인 소규모 정책 몇 개로는 벼랑 끝에 몰린 대구 고용시장에 어떤 표시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박 교수는 이어 "일자리가 없어 우수 인재가 유출되고, 인재가 없으니 기업은 투자를 꺼리는 악순환이 고착화됐다"고 진단하며, "단순한 일자리 개수가 아니라 대구텍, 메가젠임플란트처럼 탄탄한 고용을 보장하는 우량 중견기업을 육성하고 앵커(선도)기업을 유치하는 데 지자체의 모든 권한과 역량을 집중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3월11일 대구 수성구 대구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열린 청년이음데이 면접 행사에서 구직자들이 면접을 준비하고 있다. 면접에 참여한 구직자는 국민취업지원제도와 구직자도약패키지 등 취업지원 사업에 상담 후 참여할 수 있다. 이윤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김지혜
현상의 이면을 짚어내는 지혜로운 기자가 되겠습니다.이나영
디지털팀 이나영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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