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중 국립대구박물관 학예연구사
가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듣는 소리가 있다. 옆집 강아지 목줄에 달린 방울이 딸랑거리고, 놀이터로 뛰어가는 아이의 운동화에서도 작은 방울 소리가 난다. 무심코 지나치는 이런 작은 방울 소리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됐다.
오래전 발굴 현장에서 흙 속에 잠긴 작은 토기 하나를 조심스레 꺼내던 순간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잔을 살짝 기울이자 안에서 무언가 또르르 굴러다니는 소리가 났다. 놀라서 동료들과 눈을 마주쳤던 기억이 난다. 그 유물의 이름은 '방울잔'. 한자로는 영배(鈴杯) 또는 영부배(鈴付杯)라 부른다. 잔 아랫부분에 돌이나 흙으로 빚은 작은 구슬을 넣어 함께 구운 뒤, 흔들면 딸랑딸랑 맑은 소리가 나도록 만든 삼국시대 토기다. 둥근 몸체에 긴 목을 붙이고, 삼각형이나 네모난 구멍을 내어 안에서 울리는 소리가 밖으로 들리도록 만들었다. 아가리에는 돌대를 돌리거나 물결무늬를 장식하기도 했으며, 바닥은 평평하거나 굽다리를 붙인 것도 있다. 정확히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는 아직 알기 어렵다.
방울잔은 신라와 가야 지역에서 두루 확인되는 유물로, 대구에서도 여러 차례 얼굴을 내밀었다. 수성구 시지지구의 돌방무덤과 달성 구지면 내리 무덤들에서 방울잔은 다른 그릇들과 나란히 조용히 묻혀 있었다. 화려한 위세품이 즐비한 큰 무덤에서만이 아니라, 비교적 소박한 무덤에서도 함께 발견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방울잔의 소리가 꼭 높은 신분의 사람들만 누리던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주말이면 불로동이나 구암동 고분공원으로 산책 삼아 걷는 시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 봉긋한 흙무덤 어딘가에도 이런 방울잔 하나쯤 잠들어 있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익숙한 산책길이 조금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방울잔을 다룰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우리가 접하는 고대의 소리는 대개 '재현'이다. 옛 노래나 궁중의 음악도 문헌과 악보를 근거로 오늘날 다시 빚어낸 소리이지, 그 시절 원음 그대로는 아니다. 그런데 방울잔은 다르다. 지금 살짝 흔들기만 해도 들리는 소리는 1천600년 전 대구 사람들이 들었을 소리와 맞닿아 있다. 그림이나 조각은 원본을 눈으로 볼 수 있지만, 소리는 원본이 남는 일이 드물다. 방울잔은 그 몇 안 되는 예외다.
작은 방울잔 하나를 굳이 소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물관의 유물은 흔히 눈으로 보는 옛것이라 생각하지만, 방울잔은 조금 다르다. 그 생김새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소리까지 오늘의 우리에게 전해주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국립대구박물관 고대문화실에 가면, 유리 진열장 속에서 이 방울잔을 직접 만날 수 있다. 다음에 엘리베이터 앞에서 강아지 목줄이나 아이 운동화에서 작은 방울 소리를 듣거든, 잠시 그 오랜 이웃을 떠올려 보시길 바란다. 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늘 우리 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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