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신서혁신도시 전경. 영남일보DB
정부가 연내 발표를 약속했던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이 또다시 공수표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초 9월로 예고됐던 이전계획 발표가 4분기로 늦춰진 데 이어 최근에는 연내 발표조차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6일 국토교통부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4분기 중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 계획을 확정하고 2027년 선도기관 이전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일 국회에서 "수도권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 계획을 연내 확정하겠다"고 했고, 홍지선 국토부 장관도 지난달 2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11월 중 이전계획을 정리해 발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정부 안팎에서는 11월 발표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연내 발표마저 장담하기 힘들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전 대상 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데다 지방시대위원회 심의와 대통령실 보고 등 후속 절차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전을 검토하는 수도권 공공기관은 350여개다. 이 가운데 실제 이전 대상과 수도권 잔류기관을 가려내고 지역별 배치계획까지 마련해야 한다. 특히 지자체마다 유치를 희망하는 핵심 기관이 상당수 중복되는 데다 일부 공공기관과 노동조합은 지방이전에 반대하고 있어 조정에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더 큰 문제는 이전계획이 연내 확정되더라도 내년에 실제 이전이 가능하겠느냐는 점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9월 1일 발표한 2027년도 예산안에 공공기관 2차 선도이전 지원비로 1천810억400만원을 편성했다. 기관 이전비와 직원 정착지원비 등을 지원하기 위한 재원이다.
하지만 이전 대상 기관과 배치지역은 물론 기관별 이전 시기와 세부 소요액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이전기관과 지역이 정해져야 필요한 사무공간 규모와 임차료, 시설 이전비, 직원 이주 지원비 등을 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2027년 선도 이전을 위한 실질적인 준비는 구체화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단순히 이전기관과 지역을 지정한다고 끝나는 사업이 아니다. 기관별 이전계획을 수립하고 주무부처와 협의한 뒤 예산과 사무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임직원의 근무지 변경에 따른 노사협의와 이주 지원대책도 마련해야 하며, 사무실 이전에 필요한 전산망과 통신·보안시설 구축 등도 뒤따른다. 무엇보다 기관 규모가 크거나 금융·연구 등 특수한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은 업무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본점과 인력을 이전해야 하므로 준비 과정이 더욱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이에 정부는 청사 신축에 따른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민간 건물 임차 방식으로 2027년부터 선도 이전에 착수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이전 대상과 지역이 정해져야 필요한 사무공간을 물색하고 계약을 추진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연내 이전계획이 발표되더라도 남은 기간 기관별 계획 수립과 예산 배분, 사무공간 확보, 노사협의 등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내년 중 실제 이전이 시작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공공기관의 경우 법 개정이라는 또 다른 난관에 직면해 있다. 한국산업은행법과 중소기업은행법, 한국수출입은행법은 해당 기관의 본점 소재지를 서울특별시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 기관의 본점을 지방으로 이전하려면 관련 법률부터 개정해야 한다.
여기에 여야의 극한 대립까지 겹치면서 금융공공기관 이전을 위한 법 개정 전망에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5일 조작기소 특별검사법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자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돌입하고 장외투쟁을 예고했다. 여야 대립은 내년도 예산안 심사 일정을 둘러싼 갈등으로까지 번진 상태다.
정부가 발표 일정을 여러 차례 변경했다는 점에서는 기시감마저 느껴진다. 김윤덕 당시 국토부 장관은 지난 6월 늦어도 9월까지 이전계획의 구체적인 윤곽을 제시하겠다고 밝혔지만, 8월 들어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과 공론화 필요성을 이유로 발표 시점을 10~11월로 늦췄다. 이후 국토부는 9월 공식 발표를 통해 계획 확정 시점을 4분기로 다시 조정했다.
이를 두고 과거 정부에서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을 확약했다가 수차례 말을 바꾼 것과 유사한 행태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가 선거 이후 공공기관 추가 이전정책을 확정하겠다고 했으나, 선거가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후 "21대 국회가 시작되면 (새로운) 당 지도부와 정부가 협의해서 판단하고 결정할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부겸 당시 국무총리 역시 2021년 9월 "대통령과 시도지사가 만나면 공공기관 2차 이전 문제는 어느 정도 큰 가닥을 잡을 것이고, 연내 큰 틀의 방향이 잡힐 것"이라고 발언했다가, 2021년 10월 안동에서 열린 '대한민국 균형발전박람회'에 참석해 "대선국면에서 추가 이전추진은 매우 어렵다"고 말을 뒤집은 바 있다.
윤석열 정부도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을 국정과제로 채택했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토부는 2023년 상반기 이전 기본계획을 마련할 예정이었으나 지자체 간 유치 경쟁 과열 등을 이유로 발표를 연기했다.
우동기 당시 국가균형발전위원장 또한 2023년 7월 총선을 앞두고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하면 지역구 표심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며 2024년 총선 이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임기 중 2차 이전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 역시 공공기관 2차 이전을 핵심 균형발전 정책으로 내세웠지만 발표 시점이 거듭 늦춰지고, 내년 이전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계획도 확정되지 않으면서 결국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이 2028년 총선용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그간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은 선거와 맞물려 발표만 요란하게 하고 정작 실행 단계에서는 여러 이유를 들어 미뤄져 왔다"며 "정부가 연내 발표를 확약했지만 실제 이전이 이뤄질지 여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구경모(세종)
정부 세종청사 출입하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