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비영리 창업 커뮤니티 해커도조에서 이용자들이 각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올해 국내 주식시장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코스피가 크게 오르며 자본시장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다만, 최근에는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상승 폭을 일부 반납했다.
주식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자본시장의 성장을 지역경제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대구경북에서 창업한 기업이 성장자금을 확보하고, 대학의 연구 성과와 기술이 사업화로 이어지며, 지역 인재가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것이다. 자본시장의 성장이 지역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생태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영남일보는 이번 기획 시리즈를 준비하며 미국의 금융교육, 지역사회 투자, 창업 지원, 바이오산업 육성 등 다양한 사례를 현지 취재했다. 기관마다 지원 방식은 달랐지만 자본, 기술, 인재를 연결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실리콘밸리의 해커도조(Hacker Dojo)와 조인트벤처 실리콘밸리(Joint Venture Silicon Valley)도 마찬가지였다. 두 곳 모두 창업가들의 자발적인 교류와 기업·대학·투자기관 간 협력이 지역경제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 실리콘밸리 해커도조 내부에 게임기와 탁구대 등 휴식시설이 마련돼 있어 자유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정지윤기자
◆회원들이 직접 만드는 창업 커뮤니티 '해커도조'
지난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해커도조(Hacker Dojo). 건물 내부에는 게임기와 당구대가 놓여 있었고, 벽면에는 화려한 그림이 그려져 있어 자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창업가와 개발자들이 모여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공간도 곳곳에 마련돼 있었다. 공간별로 갖춘 장비도 다양했다. 팟캐스트 제작실에는 녹음 장비가 있었고, 시제품 제작 공간에는 여러 대의 3D 프린터와 산업용 레이저 커터가 설치돼 있었다. 현미경과 오실로스코프, 납땜 장비 등 전자제품 개발에 필요한 장비도 갖춰져 있었다.
이곳에는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부터 회사를 운영하는 창업가, 대기업에 재직 중인 개발자까지 모인다. 낮에는 구글 등 글로벌 IT기업에서 일하고 퇴근 후 해커도조에서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 해커도조에는 회원들을 위한 팟캐스트 제작실과 납땜 장비 등 다양한 장비를 갖추고 있다. 정지윤기자
2009년 설립된 해커도조는 비영리 기술 커뮤니티다. 회원들이 공간과 장비를 공유하고 교육과 창업 프로그램도 직접 운영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티아나 메이 칼데론(Tiyanna Mae Calderon) 해커도조 커뮤니티 부매니저는 "회원들은 공간을 이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교육과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만든다"면서 "우리가 제공하는 것은 공간이지만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은 회원들이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회원 수는 최대 179명이다. 연간 400회 이상의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린다. 창업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사업 모델로 발전시키는 'Startup Mix & Pitch', 창업가들이 서로의 목표를 점검하는 'Founders Friday' 등이 대표적이다.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개발, 3D 프린팅, 전자장비 제작 등 기술 교육도 진행된다.
미국 실리콘밸리 해커도조에서 이용자들이 노트북과 컴퓨터를 활용해 작업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해커도조에서 새로운 기술을 배워 창업기업의 핵심 인재로 성장한 사례도 있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던 한 참가자는 해커도조 모임에 참석한 뒤 개발을 배우기 시작했다. 현재는 법률문서 초안 작성을 돕는 AI 스타트업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일하고 있다.
해커도조 이용자이자 이사회 자문위원인 마크 스토퍼(Mark Stofer)씨는 실패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이곳의 강점으로 꼽았다. 그는 창업 아이디어 발표 행사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개했다가 심사위원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은 경험을 소개했다. 마크씨는 "심사위원들이 제 아이디어를 강하게 비판했지만 모두 함께 웃고 배웠다"면서 "이곳에서는 '안전하게 실패하는 법'을 배운다. 사람들은 실패를 통해 성장한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의 비영리 창업 커뮤니티 해커도조(Hacker Dojo)D의 퀴 디아즈(Qi Diaz, 왼쪽) 사무총장과 티아나 메이 칼데론(Tiyanna Mae Calderon) 커뮤니티 부매니저가 인터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퀴 디아즈(Qi Diaz) 해커도조 사무총장은 창업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발적인 참여라고 강조했다. 그는 "커뮤니티는 건물을 짓는다고 성과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 자주 만나 신뢰를 쌓고 돕기 시작할 때 의미있는 결과물이 만들어진다"면서 "정부만으로도, 기업이나 대학만으로도 커뮤니티를 만들 수 없다. 여러 주체가 함께 움직여야 하고 무엇보다 인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디아즈 사무총장은 대구경북과 같은 지역도시가 실리콘밸리의 방식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그는 "실리콘밸리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강점을 찾아야 한다"면서 "대구가 로봇산업에 강하다면 그 분야를 더 발전시키고 인재들이 모여 배우고 도전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러셀 핸콕(Russell Hancock) 조인트벤처 실리콘밸리(Joint Venture Silicon Valley)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통해 실리콘밸리의 성장 요인과 지역경제 발전 방안에 대해 인터뷰 중이다. 정지윤기자
◆ 자본·기업·인재를 연결하는 '조인트벤처 실리콘밸리'
실리콘밸리의 지역경제 싱크탱크인 조인트벤처 실리콘밸리(Joint Venture Silicon Valley)는 지역 성장의 핵심 조건으로 자본, 인재, 기업, 대학 간 협력을 꼽았다. 이 기관은 정부와 기업, 노동계, 대학 등이 참여해 설립됐다. 5개 카운티와 60개 이상의 도시로 구성된 실리콘밸리의 경제·사회 현황을 분석하고 지역 문제의 해결 방안을 논의한다. 러셀 핸콕(Russell Hancock) 조인트벤처 실리콘밸리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지속 가능한 혁신 생태계는 하나의 요소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투자와 인재, 기업과 대학 등 여러 요소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면서 "실리콘밸리도 모든 요소가 연결돼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강조했다. 핸콕 CEO는 "캘리포니아에서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실패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면서 "실리콘밸리에서는 출신 배경보다 아이디어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어떤 성과를 만들어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벤처캐피털과 대학의 역할도 주요 성장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기업이 성장하려면 자금이 필요하고 벤처캐피털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대학 역시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산업과 기업에 연결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미국에서는 기업의 성장 단계에 따라 다양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NC IDEA는 초기기업에 상환 의무나 지분 요구 없이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NCBiotech는 연구개발과 민간투자 사이의 자금 공백을 메운다. Plug and Play는 스타트업을 투자자, 대기업, 글로벌 시장에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핸콕 CEO는 외부 인재와 자본의 유입도 강조했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우수 인재들이 모두 캘리포니아 출신인 것은 아니다. 전 세계에서 인재들이 모여든다"면서 "외부 인재와 자본을 받아들이고 다른 도시와 국가에도 연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경제의 현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작업도 강조했다. 조인트벤처 실리콘밸리는 매년 지역의 산업과 고용, 소득, 교육, 주거, 교통 등을 분석한 '실리콘밸리 인덱스(Silicon Valley Index)'를 발간하고 있다. 핸콕 CEO는 "개인의 경험이나 직관만으로는 지역의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면서 "기업과 인재가 늘고 있는지, 주택과 교통 문제는 어떤지 실제 데이터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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