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기다리다’와 ‘기다려주다’

  • 오영희 시인·대구문인협회 낭송위원장
  • |
  • 입력 2026-11-01 17:11  |  수정 2026-11-01 17:40  |  발행일 2026-11-02
오영희 시인·대구문인협회 낭송위원장

오영희 시인·대구문인협회 낭송위원장

약속 시간에 늦은 날이었다. 숨이 찼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문자를 보냈더니 답이 왔다. "하루도 기다려줄 수 있어요. 평생도 기다려줄 수 있어요." 물론 농담이었다. 그런데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툭, 내려앉았다. 오랜만에 깊은 숨이 쉬어졌다. 고작 한 줄의 답장에 나는 왜 그토록 안도했을까.


한참 뒤에야 알았다. 내 안에는 설날 아침 문간에 서 있던 아이가 있었다. 새 형부가 처음 인사 오던 날에도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아이는 골목 끝을 보다가 발끝을 보았다. 조마조마했다. 명절에도, 생일에도 아이는 늘 기다리는 쪽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른이 되어서도 약속 장소에 먼저 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이 유난히 힘들었다. 이유도 모른 채 그 문간이 나를 따라다녔던 것이다. 그날의 답장은 반백 년 만에 그 아이가 들은 대답이었는지도 모른다.


'기다리다'와 '기다려주다'. '주다' 한 글자, 한 끗 차이다. 기다리는 것은 내 시간을 견디는 일이다. 기다려주는 것은 내 시간을 상대에게 내어주는 일이다. 철학자 시몬 베유는 온전한 주의는 곧 기다림이며, 그것이 가장 순수한 사랑의 모습이라고 했다. 재촉하지 않고, 그 사람이 그 사람으로 올 때까지 마음을 비워 두는 것. 그러니 기다려준다는 말은 시간의 약속이 아니라 존재의 허락이다. 늦어도 괜찮다고. 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도 된다고.


같은 기다림인데 하나는 상처가 되었고 하나는 안도가 되었다. 차이는 방향에 있다. 기다림이 허공으로 흩어질 때 그것은 결핍이 되고, 나를 향해 올 때 그것은 선물이 된다. 오래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긴지, 그 끝에 누군가 와 주는 일이 얼마나 귀한지. 그래서 오래 기다려본 사람의 "기다려줄게"는 더 깊다. 상처가 자리를 바꾸면 품이 되는 것이다.


요즘 나는 강의실에서 대답을 망설이는 학생 앞에서, 첫 무대를 앞둔 낭송가 앞에서 한 박자 늦게 말한다. 마음이 상해도 서둘러 풀려 하지 않는다. 감정이 저절로 지나갈 때까지 가만히 머금는다.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던 아이가 이제야 제 마음을 기다려주는 어른이 되었다.


시월이 가고 십일월이 온다. 계절도 우리를 재촉하지 않는다. 나는 십육 년을 품어 온 일 하나를 기다려주고 있다. 해낼 수 있다고, 조금만 더 기다려주자고 나에게 말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바란다. 구순의 어머니가 조금만 더 나를 기다려주시기를.


기다리는 일과 기다려주는 일 사이, 한 끗. 오늘 무언가를 재촉하고 있다면 한 글자만 보태 보자. "기다려줄게." 그 말이 오래 문간에 서 있던 것들을 방 안으로 들여 줄 것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생활/문화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