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규 시인
좁은 계단이 통로로 길게 연결되어 있는 그 길의 끝에 커피숍이 있었다. 계단의 입구에 들어서자 그곳은 이미 커피 향으로 자욱했다. 소박한 집기들과 블라인드의 그림자가 분위기를 이루고 있는 호젓한 카페였다. 다소 부족한 듯하지만 부족해서 오히려 정겨운 공간이었다. 다섯 명의 시인이 둘러앉았고 오래전 사람들의 근황까지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면서 카페는 가을의 정취로 무르익고 있었다. 음악처럼, 조금 쓸쓸하거나 허전함이 깔려있는 11월의 분위기를 공유하면서 시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시간을 향유하거나 짐짓 비껴가기도 했다. 깊은 찻잔 속에 가득 고인 검은 시간의 그 깊은 심연 속으로 가만히 시선을 묶어두거나 발을 밀어 넣기도 하면서. 고요했지만 적막했고, 가슴속에서 뭔가 울컥 차오르는 과도한 낭만에 젖기도 하는 호젓한 오후였다.
누군가 패티 김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을 흥얼거리기도 했고 누군가 릴케의 시구절을 낮게 읊조리기도 했다. 잠시 못물 같은 정적이 흘러갔다. 통제할 수 없는 시간과 계절의 흐름과 낡고 오래된 기억 속에 모두가 흠뻑 젖어 있었을 때, 뜨겁던 커피가 싸늘하게 식고 있었을 때, 원로 시인 한 분의 나직한 목소리가 찻잔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세월은 한 달을 헐어도 금방 사라지고 없어져…' 한 달을 헐다니! 오만 원, 백만 원도 아니고 한 달이라는 시간을 헐다니. '일 년을 헐어도 금방 사라지는걸요.' 누군가 잔뜩 주눅 든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썰물 같은 세월이 나비처럼 고요히 한 생애를 빠져나가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시간은 엄연한 실체이고 삶을 지배하는 운명의 큰 축이다. 시간을,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답고 슬프고 긴 문장이다라고 했던, 지난날의 나를 불러내지 않더라도 지금도 시간은, 내가 침잠하고 소멸하고 전진하게 하는 가장 아름답고 슬프고 긴 문장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이제 조금 더 깊게, 조금 더 쓸쓸하게, 낭만과 허무를 주머니 가득 채워 넣고 빈손을 비비며 가을 속 깊숙이 걸어 들어갈 것이다.
이 시간이 영원하다면 시는, 시인은, 존재했을까. 삶의 결핍이 예술의 동력이라면 시간이 주는 근원적인 결핍은 시인에게, 에토스적인 대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스를 수 없고 제어할 수 없는 영원한 대상인 운명을 향해 최상의, 혼신의 언어를 헌사하는 사람이 시인이다. 세월을 '헌다'라고 한 발랄한(?) 표현 때문에 조금 숙연해졌다가 조금 유쾌해졌다가, 카페를 빠져나왔다. 마치 일 년을 다 헐어 쓰고 남은 11월처럼, 일 년의 끝자락에 서 있는 별나고 여린 감성의 시인들처럼 카페의 좁은 계단은 쓸쓸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내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아침에 눈을 뜨면, 값없이 와준 오늘 하루가 얼마나 벅찬 선물인지 느끼게 된다. 계절의 쓸쓸함이야 인간이기에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닌가.
환한 가을 햇살 속으로 들어가면서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이 문득 마음에 꽂힌다. '당신은 내게 할 말이 없나요, 아직도 나는 할 말이 많은데…' 슬프고 아름답고 긴 문장인 시간에게 아직도 나는 할 말이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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