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라이온즈 18년. 7.끝] 백인천 감독

  • 입력 1999-03-16 00:00

'풍운의 사나이' 백인천 감독이 사령탑을 맡은 것은 삼성의 완전한 세대 교체 신호탄이었다. 백 감독은 취임하자마자 선수들에게 "근성이 약하고, 개인플레이가 많다" 고 질타했다. 백 감독은 역대 어느 감독보다도 자신에 차 있었고, 삼성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백 감독이 표방한 세대교체는 노장선수 퇴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수 들의 정신 재무장도 포함돼 있었다. '이기겠다'는 확고한 의지 없이는 좋 은 자질을 갖춘 선수가 아무리 많아도 한국시리즈 제패는 불가능하다는 것 이 백 감독의 지론이었다. 백 감독이 합숙소내 금연지시를 어긴 좌타자 김 실과 팀의 간판이었던 강기웅, 동봉철을 다른 구단으로 트레이드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였다. 백 감독은 대신 무명선수들을 대거 발굴했다. 연습 생 신화를 일군 최익성과 김한수, 김태균, 정경배, 신동주 등 지금도 팀에 서 주전을 꿰차고 있는 선수들을 일약 스타로 키워냈다. 그만큼 백 감독은 선수를 보는 눈과 조련술이 뛰어났다. 취임 첫해인 96년 백 감독은 시즌 초반 바람을 일으켰으나, 투수력 부재 로 역대 최악인 6위에 그치는 수모를 당했다. 팀의 쌍두마차인 김상엽과 박충식이 부상으로 각각 3승1패와 8승2패만을 기록, 백 감독에게 실망만 안겨 주었다.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고 결심한 백 감독은 97시즌에는 팀전력 강화를 위해 트레이드에 많은 신경을 쏟았다. 백 감독은 그러나 '뜨거운 감자' 투 수 김상엽을 LG 포수 김동수와 맞바꾸려던 계획이 대구팬들과 구단측의 반 대로 무산된 뒤, 감독으로서 자신감을 잃어 가기 시작했다. 철저한 승부사 였던 백 감독은 97시즌에 마운드 열세를 딛고 젊은 선수를 주축으로 공격 야구 바람을 일으키며 선전했으나, 시즌중 고혈압으로 쓰러져 일선에서 물 러나야 하는 운명을 맞았다. 조창수 감독대행체제의 삼성이 그해 4년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룬 것도 백 감독이 심어 놓은 '근성야구' 덕분이었다. 타격의 달인 백 감독 시절 삼성타선은 화려한 꽃을 피웠다. 삼성은 공격 부문에서 세운 기록중 절반이상을 이때 수립했다. 이승엽, 양준혁, 신동주, 김한수, 정경배, 김태균으로 이어지는 타선은 다른 팀에겐 공포의 대상 이었다. 삼성은 시즌 최다홈런(165개), 경기 최다홈런(11개), 팀 최다홈런 (9개), 팀 연속경기 홈런(15경기), 홈 연속경기홈런(18경기), 시즌 최다타 점(669점), 팀 최다타점(26점), 시즌 최고 장타율(0.462), 시즌 최고출루 율(0.367) 등을 기록, '타격의 전설'을 만들어 냈다. 타격 천재 이승엽은 97년 홈런왕(32개)에 오르며 페넌트레이스 MVP까지 거머쥐었다. <최영호기자 cy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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